[설교] 우리 짐을 지고 십자가로 가신 예수님
[설교] 우리 짐을 지고 십자가로 가신 예수님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3.02.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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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7편(마지막 편)

구약시대에 안식일이 되면 일하지 않고 쉬었던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모든 짐을 벗고 쉬게 된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와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쉼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의 내용을 7회에 걸쳐 소개한다. 

 

성경을 읽으면, 처음에는 우리 생각으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불러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가서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와라. 내가 먹고 네게 마음껏 축복하리라.” 했습니다. 에서가 곧 활을 가지고 사냥하러 갔습니다. 그때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둘째 야곱을 불러서 “야곱아, 염소 새끼를 한 마리 가져와라. 내가 그걸로 요리를 해줄 테니 아버지께 가져가서 복을 받아라.” 했습니다. 결국 야곱이 복을 받고, 열심히 사냥해서 요리를 만들어 들고 간 에서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왜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은 복을 받고 거짓된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복을 받은 사람들은 38년 된 병자, 소경, 세리 삭개오, 사마리아 여자, 그리고 간음한 여자 등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십일조를 내고 안식일을 지킨 제사장들, 서기관들은 다 예수님에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으면 ‘하나님은 나하고 너무 다르시다!’라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기에, 올바른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내 생각을 전부 버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회개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 곧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때부터 사탄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사탄은 우리 속에서 늘 더럽고 악하고 음란하고 가증한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면 삐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도둑질했습니다. 뉘우칩니다.” 하는 것도 회개지만, 근본적인 회개는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기에 자기 생각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죄 속에서 태어나 일어나는 생각 자체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것도 악하지만,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훔치고 싶은 마음, 음란한 마음, 거짓된 마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 마음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막 8:3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번은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가셨는데, 그의 딸이 숨이 끊어지고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울지 마라. 잔다.” 하셨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죽었는데 잔다고 하시니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자신이 걷지 못한다는 생각을 믿으면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려면 우리 생각과 판단을 버려야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사야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릇 행하여 각각 자기 길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셨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아도 그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셨으면, 죄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넘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지만 그 죄가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의 삯인 사망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7백 년 전에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계시로 어떤 분이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분이 누구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죽어가고 있을까?’ 그때 하나님이 계시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그 광경을 보며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예수님이 찔리신 것은 우리 허물 때문이고, 예수님이 상하신 것은 우리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모든 죄의 벌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우리가 안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너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씻어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으면 괴로워하고, 반대로 헌금이나 기도를 많이 하고 착한 일을 했으면 뿌듯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죄에 대해 뭐라고 하시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볼 때 잘했으면 괜찮은 줄 알고 잘못했으면 근심합니다. 자신의 모습에 따라 기뻐했다 슬퍼했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에 대해 ‘착하다, 악하다, 죄를 많이 지었다’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착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실 때 죄가 있으면 더럽고, 내가 악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실 때 죄가 없으면 깨끗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성경에서 찾아보면 깜짝 놀랄 만큼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린도전서 6장 10~11절입니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0~11)
여기에서 죄를 짓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씻어져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그 죄가 다 씻어져서 거룩해지고 의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미래에 의로워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며, 언젠가 거룩해질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씻어졌고, 이미 거룩함과 의로움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면 문제가 됩니다. 성경에서 ‘너희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해지고 의로워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분명히 판결하시기를, “너는 죄를 지었다. 그러나 씻어졌다!” 하셨습니다.

 칭의稱義했는가, 실제로 의로운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다. 그러나 내 아들 예수가 네 죄를 위해 대신 죽었기 때문에 그 죄가 다 씻어졌다. 그래서 네가 거룩하고 의롭다.” 하고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이 판결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판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큰소리칩니다. “나는 의인이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스르고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그 죄가 예수님에게 넘어갔고,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걸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죄인인데 하나님이 의롭게 봐주셨다며 칭의稱義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인인데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입니다. 죄인은 죄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칭의하실 것 같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지 않고 그냥 의롭다고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못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아 우리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씻어진 것을 보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5절에서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경건치 않은 사람인데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의 벌을 받아 모든 죄를 씻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믿습니다. 
‘내가 도둑질했는데 어떻게 의로워?’ ‘내가 간음했는데 어떻게 의로워?’ 
‘내가 남을 미워했는데 어떻게 의로워?’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지 정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믿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정확히 모른 채 자기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씻는 일을 인간에게 맡길 수 없어서 ‘내가 다 할게’ 하며 인간은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넘기셨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 괴로움, 슬픔 모든 것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우리 죄의 벌을 예수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다시 벌을 받아야 할 죄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로 하여금 죄 짐을 다 벗고 쉬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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