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 박옥수
  • 승인 2012.09.08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면…

▲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누가복음 15장에 탕자 이야기가 나온다.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다 허비하고 돼지치기가 되어 돼지우리에서 지내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주려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아버지 집을 생각했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리고 탕자는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둘째 아들을 기다리다가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다. 그때 탕자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에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아버지 집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말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말하고, 그 뒤에 있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는 그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랬는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에

탕자가 아버지의 마음을 보기 전에는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실 거야. 나를 쫓아내실 거야’라고 생각했다. “너,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다 버렸어? 이 나쁜 놈아! 내가 가지 마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하고 꾸짖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면 “내가 아버지의 아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품꾼으로
일하게 해주시고 밥만 먹게 해주십시오. 이제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해도 됩니다.” 하고 말하려고 했다.
탕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나서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이고, 아버지의 마음에 너무 큰 안타까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탕자는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과 다른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탕자가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아버지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오랫동안 살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 채 산 것 자체가 이제는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움이 되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만났다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먹는 것을 먹고 돼지와 같이 뒹굴면서 아버지 집이 너무 그립고, 아버지 집에 있는 음식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 품꾼들도 밥을 먹는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께 돌아가자.’
그가 굶주림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바로 가지 못하고 머뭇머뭇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거야. 나를 미워하실 거야. 나를 책망하고 쫓아내실 거야.’
탕자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아버지를 그런 분이라고 여겼다.
아버지의 마음과 동떨어진 채 살던 탕자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아버지한테서 받은 재산을 허비하고, 떨어지고 돼지 똥이 묻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더럽고 냄새나는 몸에 굶주려서 바짝 마른 얼굴로 아버지를 대했을 때,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 것인가? 탕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마침내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탕자는 ‘내가 아버지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어. 그러니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실 거야. 책망하고 내쫓으실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시다가 먼저 보고 달려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고 조금도 꺼리는 기색 없이 그냥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둘째 아들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것이다.

▲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만난 탕자

‘아! 아버지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도 몰랐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거기까지는 말했지만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란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끌어안고 울고 있기 때문에 … . 탕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을 만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내 생각으로 아버지를 판단했구나 …탕자는 뉘우쳤다.

더럽고 추한 인간을 큰 긍휼로 감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탕자가 어떤 말을 하든지와 상관없이 아버지가 말한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둘째 아들은 자기 모습과 상관없이, 자신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자기를 뜨겁게 사랑해주는 아버지를 느끼고, 아버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거나 만나지 못하고 탕자처럼 자신의 추측으로 ‘하나님은 이러실 거야’ 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악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게 하실 만큼 큰 하나님의 사랑! 그렇게 말은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보고 만나본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르면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거야. 내가 너무 잘못했기 때문에 나를 버리실 거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둘째 아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나는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번씩 하나님의 마음을 만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면 달라진다. 늘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기만 하는 더럽고 추한 인간을 큰 긍휼로 감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우리는 감격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
그래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것처럼, 나도 드물게 한번씩 하나님의 마음을 만난다. 성경을 읽다가, 기도를 드리다가 … . 나 같은 인간, 아무 쓸모가 없는 인간, 내 주위에 나보다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버려두고 나를 택하신 하나님! 내가 복음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허물 투성이고 부족함 투성이였는데도 나를 도우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앞에 길을 여시고, 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마다 내 마음에 한없는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지고 기뻐진다.
탕자가 만난 아버지의 마음, 또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의 마음, 똑같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잊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