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새가 되어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서
  • 김양미
  • 승인 2012.11.08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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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쉽게 내세요.”
2011년 10월, 최형호 형제는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다. 자가용은 혼자 비행하지만 사업용은 승객을 태우고 다녀야 하기에 자가용 과정보다 훨씬 엄격했다. 지상학술 과정도 공부해야 할 내용이 훨씬 깊이가 있고 많아졌다. 그런데에다 비행 교육이 1년이 넘어가면서 숙식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자 교육생들이 교육 기간을 단축하자고 건의했다. 하루에 8시간 수업하던 것을 12시간씩 해서 기간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최형호 형제는 못 따라가는데, 하루에 공부해야 할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것이다.
영어로 강의를 듣고, 영어로 된 책을 공부하고, 영어로 된 시험을 치고. 그렇게 스무 번 이상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최형호 형제에게는 너무나도 어렵고 긴 시간이었다.
보리스 교수의 강의를 알아듣기가 힘들다. 옆에서 이진범이 도와주었다. 공부가 부담스럽지만 통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된다. (2011년 10월 11일 일기 중에서)

첫 시험에서 최형호 형제만 떨어졌다.
날씨는 쾌청한데 시험은 너무 못 봤다. 내게는 버겁고 어렵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이 어려운 때가 지나가길…. 나는 자주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에서 힘을 얻는다. (2011년 10월 19일 일기 중에서)

다음날 재시험을 치는데, 그의 실력으로는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최 형제는 자신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상학술 담당 교수가 시험 결과를 훈련원장인 보리스 교수에게 보고하자, 보리스 교수가 “문제를 쉽게 내세요.” 하고 말했다. 담당 교수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미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규칙을 아주 엄격히 적용하는 보리스 교수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어쨌든 시험 문제는 쉬워졌고, 최형호 형제는 합격했다.
한번은 주관식 시험을 보았다. 객관식 문제는 영어 문장이 다 해석이 안 되어도 대략 이해하면 풀 수 있지만 주관식 문제는 어떻게 해볼 길이 없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나름대로 답을 적었다. 얼마 후 채점이 끝나 시험지를 돌려주는데, 다른 학생들이 쓴 답지에는 점수를 깎기 위한 채점이 되어 있고, 최형호 형제의 답지에는 점수를 주기 위한 채점이 되어 있었다. 최형호 형제가 받은 점수는 정확히 커트라인인 70점이었다.
스무 번 가량의 시험을 다 통과하고 마지막 시험 때였다. 전 과목이 범위인 종합 시험이어서 최형호 형제는 굉장히 초조했다. 한 과목 시험은 배운 내용을 바짝 외워서 볼 수 있었지만, 전 과목을 어떻게 다 준비한단 말인가! 좋은 항공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최고의 점수를 받으려고 하는 학생들에 비하면 부끄럽지만, 그는 70점을 목표로 잡았다. 어려운 과목은 포기하고 쉬운 과목만 공부하는 작전을 짜고, 초스피드로 문제들을 외웠다. 다행히 시험에 공부한 내용이 나와서 그 문제들은 다 맞았지만, 시험을 마치고 점수를 예상해보니 64~68점 사이였다. 최형호 형제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점심 때 식당에서 시험관 교수가 최형호 형제를 보고 “오늘 시험 잘 쳤습니까?” 하고 묻는데, 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했다. 담당 교수의 얼굴도 굳어졌다. 오후에 시험 결과가 나왔다. 담당 교수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로 들어오는데, 평소에 잘 웃지 않던 사람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오면서 “최 선생님, 합격입니다!” 하고 말했다. 모든 학생이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최형호 형제의 점수는 78점이었다.
학술 시험이 모두 끝났다. 최근 받은 점수는 99점, 70점, 94점, 96점, 그리고 최종 점수 78점. 교수님들이 기뻐해 주셨고, 학생들도 다 기뻐했다. 비로소 학생들이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고 나를 같이 수료할 동료로 대해준다. (2011년 11월 14일 일기 중에서)

“최 선생님이 비행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사업용은 비행도 자가용에 비하면 많이 까다로웠다. 비행 고도 등 벗어나면 안 되는 한계치가 더욱 좁아졌다. 최형호 형제가 담당 교수에게 “이렇게 힘든 조종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교수는 “계기비행도 못 한다고 했지만 지나왔잖아요. 이것도 되는 날이 있을 거예요.” 하고 격려했다.
처음 비행 때 최형호 형제는 정해진 고도 범위를 자꾸 벗어났다. 실력이 점점 좋아지기는 했지만 향상되는 실력보다 진도가 더 빨라서 힘겹게 따라가야 했다. 역시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런데 하루는 담당 교수가 “최 선생님은 계기를 빨리 못 봐서 그렇지, 눈으로 보고 하는 비행은 아주 잘합니다.” 하고 말했다. 특별히 착륙할 즈음에는 계속 칭찬했다. 최 형제는 처음에 담당 교수가 자기를 위로하는 줄 알았다가, 사리가 분명한 교수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열 번쯤 듣자 ‘내가 비행을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늘 힘겹게 따라가던 그로서는 처음 가져보는 생각이었다.
비행 훈련 중에 아주 특별한 하루가 있었다. 그날 최형호 형제가 10미터 정도의 상공에서 착륙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강한 힘에 눌려서 비행기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오키나와 일대에서 종종 발생하는 ‘윈드 시어(wind shear)’라는 기상 현상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하강기류가 형성돼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부는 현상이다. 최형호 형제는 옆에 탄 교수가 훈련을 위해 비행기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든 줄 알았는데, 윈드 시어였던 것이다. 최 형제는 비행기의 추락을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당기면서 착륙을 시도했다. 강한 하강기류와 최대한 조종간을 당기는 힘 사이에서 비행기는 아주 부드럽게 활주로로 들어섰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에는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생기는 충격으로 기체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고, 그 충격과 흔들림은 비행기에 탄 사람이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누르는 바람의 힘과 올라가려는 비행기의 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비행기 바퀴가 언제 활주로에 닿았는지도 모르게 비행기가 착륙했다.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상황에서 환상적인 착륙을 이뤄낸 것이다. 자가용 비행 시험 때 경험한 이후 처음 경험하는 완벽한 착륙이었다. 옆에 있던 담당 교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훈련원에서 최형호 형제가 비행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한번은 점심을 먹으로 갔는데, 한 비행 교수님과 지상학술 교수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학생이니까 다른 곳에 앉으려고 하는데, 함께 밥을 먹자는 거예요. 내가 옆자리에 앉자 비행 교수님이 학술 교수님에게 ‘최 선생님이 우리 비행훈련원에서 비행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학술 교수님은 나를 많이 도와준 분이었는데, 도와준 보람이 있다며 웃었어요. 또 한번은 항공대에서 수석을 한 학생이 시뮬레이션 비행 연습을 하러 와서 나를 보더니 ‘선생님이 비행을 잘한다는 사실을 항공대 학생들도 다 안다’고 하는 거예요.”
며칠 후, 바람이 몹시 세게 부는 날이었다. 바람이 초속 15노트 이상 불면 비행 훈련을 중지하는데, 초속 19노트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최형호 형제를 담당한 교수는 울진 비행훈련원에서 최고의 조종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최형호 형제에게 ‘이런 날에도 비행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며 비행을 나가자고 했다. 두 사람만 비행에 나선 것이다. 울진 교육훈련원을 이륙해 양양 비행장으로 가서 착륙을 시도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착륙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관제사가 말했지만, 담당 교수는 해보라고 했다. 비행기가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는 가운데 최형호 형제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무사히 착륙했고, 다시 이륙해서 울진으로 돌아왔다. 그 일 후로 교육생들은 최형호 형제를 더욱 대단하게 생각했다.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복음을 전했어요. 전에는 전도하고 싶어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나와 가까이하려는 학생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 솔로(solo) 비행에 성공한 교육생을 축하하는 담당 교수와 그의 가슴에 윙(wing)을 달아주고 있는 최형호 형제. 처음에는 최형호 형제를 무시하던 교육생들도 나중에는 그와 함께하는 것을 기뻐했다.

 

조종석 유리창 뒤쪽에 있는 바퀴를 보고 싶었다
사업용 단발비행기의 최종 시험일. 이륙하기 전에 시험관이 엄격한 시험 기준을 읽어주는데, 최형호 형제는 계기를 보며 그 기준 안에서 조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무사히 통과하고 마지막 착륙 단계만 남겨두었다. 착륙은 세 단계를 통과해야 했다.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착륙하고, 두 번째는 다시 이륙해서 하늘을 한 바퀴 돈 후 플랩*이 고장났다는 가정 하에 플랩을 사용하지 않고 착륙해야 했다.
세 번째는 다시 이륙한 후 엔진이 고장났다는 가정 하에 착륙 직전에 파워를 끄고 착륙해야 했다. 무동력 상태에서 조종사의 모든 기량을 동원해서 착륙해야 하는 것이다. 고도가 낮으면 활주로에 못 미쳐서 비행기가 맨땅에 들이박게 되고, 고도가 높으면 비행기가 활주로 밖으로 나가버리게 된다. 활주로에 50미터 가량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데, 바퀴가 그 안에 닿아야 합격이다.
시험이 있던 날에는 바람이 몹시 세게 불었다. 한 학생은 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시험을 거부했지만, 최형호 형제는 자신이 그렇게 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여겨 그냥 시험에 임했다. 두 번째 착륙까지 무사히 마치고, 세 번째 과정에서 마지막 착륙자세를 만들어놓고 보니까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서 합격 지점을 벗어날 것 같았다. 보통 비행기의 고도를 낮출 때에는 포워드 슬립(forward slip)이라는 기술을 쓰는데, 최형호 형제는 자신도 모르게 책에서만 보고 훈련원에서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전투기처럼 비행기를 좌우로 떨어뜨리는 기술을 썼다. 시험관은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그렇게 고도를 낮추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런데 고도를 너무 낮추어서 이번에는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동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그냥 그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오른쪽 아랫부분에서 불어닥쳤다. 엔진을 끈 비행기는 힘없이 활주로에서 벗어나 왼쪽 풀밭 쪽으로 날린 데에다 비행기의 앞부분이 위로 들려버렸다. 시험관이 반사적으로 “테일(tail, 꼬리)!” 하고 외쳤다. 동력을 사용할 수 없는 비행기는 그냥 쇳덩이니, 꼬리부터 땅에 내리찍게 된 것이다. 빨리 엔진을 가동시켜서 비행기를 바로잡아 사고를 막으라는 소리인데, 엔진을 켜면 시험에서는 탈락이다.
“그 짧은 순간에 지나온 날들이 생각났어요.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시험에서 떨어지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어요. 떨어진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어요. 최선을 다해서 비행기를 다시 활주로 안으로 집어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다른 생각이 올라왔어요. ‘떨어져도 안전하게 내리자.’ 아쉬웠어요. 어렵게 어렵게 많은 과정을 통과하고 마지막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지만, 파워를 넣으려고 손을 옮겼어요.”
최형호 형제가 파워를 넣으려고 힘이 손목까지 와서 손가락으로 전달되려는 순간, 이번에는 왼쪽 위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끝났다고 여긴 순간 비행기가 갑자기 활주로 안으로 들어서고 들려 있던 앞부분도 내려간 것이다. 최형호 형제 마음에 ‘하나님이 돕고 있다! 목표 지점에 분명히 닿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자신이 아니라 어떤 힘이 비행기를 목표 지점에 닿게 할 것이라고 믿어졌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평안해졌다.
“어느 조종사나 착륙할 때는 앞을 보는데, 그날 나는 착륙하면서 뒤편 아래쪽을 보았어요. 착륙은 정확히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내 눈으로 조종석 유리창 뒤쪽에 있는 바퀴를 보고 싶었어요. 바퀴가 활주로의 페인트칠한 부분에 닿고 있었어요.”
비행이 끝나고 시험관은 최형호 형제에게 “오늘 같은 날씨에 수고했습니다.” 하며, 내려가자마자 최 형제의 담당 교수에게 “A학점입니다.” 하고 말했다. 최형호 형제가 처음 받아보는 A학점이었다. 그동안은 늘 턱걸이로 겨우 합격했으니까.
A학점을 받고 운동장을 몇 바퀴 땀이 나도록 뛰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실컷 울고 나서야 안정이 되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큰 힘이 나와 함께하고 계심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 갈 수 없는데 가고, 결국 도착한다.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는 것에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앞으로 가야 할 길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바위 앞의 계란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실패한 자이기에, 내 인생은 끝났기에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나아간다. (2011년 12월 22일 일기 중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
사업용 단발비행기 조종을 마친 후 쌍발비행기 조종이 시작되었다. 최형호 형제는 처음부터 비행을 아주 잘했다. 조종술 자체가 이해되어서 비행기 종류가 달라져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노하우가 정립된 것이다. 어떤 교수는 최형호 형제의 비행술이 자신보다 더 낫다고 했다.

▲ 비행훈련원 수료식 때 훈련원장인 보리스 교수, 최형호 형제와 교육생들. 흰색옷을 입은 교육생들이 수료하는 1기생 18명, 청색 옷을 입은 교육생은 후배 기수들.


훈련원에서의 마지막 비행인 쌍발비행기 조종 시험. 최형호 형제는 비행기가 자신과 하나가 된 듯했다. 마치 방안에 앉아서 TV를 보는 것처럼 비행이 자유로웠다. 자신이 한 마리의 새가 되어서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새처럼 자유롭게 전혀 부담 없이 비행을 즐겼다. 시험 결과 A학점을 받았다. 착륙하고 나니까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후 내내 쏟아지는데, 최형호 형제의 속까지 후련했다.

 

 

쌍발 엔진의 마지막 테스트 비행을 여유롭게 마쳤다. 정비실에서 비행 시간을 적고 나오는데 많은 비가 내렸다. 오후에 비행 계획이 있는 교육생들은 안타까워했지만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층에 가서 교수님들께 인사하니 기뻐하고 축하해 주셨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당신의 기도로 통과했어. 사랑해요!” 잠시 후, 고맙다는 답신이 왔다.
오늘은 박민우 교수님께 우연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니 장석환 교수님이 듣고 계셨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일 아침에는 김영진 교수님께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책을 선물하려고 한다.
밤에 일기를 쓰기 전 책상 위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3년 전 우리 교회 입당 예배 때 찍은 사진을 팩스로 받아둔 종이가 발견되었다. 박옥수 목사님과 장로님들 옆에 나도 앉아 있었다. 그날 목사님께서 나에게 “조종사 면장이 있는가?” 하고 물으셨던 것이 기억나 사진을 오려서 내 지갑에 넣었다. (2012년 1월 17일 일기 중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2012년 3월 13일,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최종 단계인 구술 평가가 있었다. 최형호 형제를 담당한 시험관은 아주 깐깐한 사람이었다. 시험관은 첫 번째로 어떤 기호를 보여주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최형호 형제는 천둥을 동반한 강한 비바람이 분다는 기호라고 생각되어 <헤비 썬더스톰/heavy thunderstorm>이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누가 자신의 머리를 딱 막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지 않은 <시비어 터뷸런스/severe turbulence, 휘몰아치는 강풍>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자 시험관이 재차 물었다. 번복할 수 없어서 그냥 크게 이야기하자 시험관은 “이상한데…” 하면서 지나갔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최형호 형제가 한 대답이 맞았다. 그것은 1년 전에 딱 한 번 보았던 기호였다. 기호가 30여 개 있어서 ‘이걸 언제 다 외우냐?’ 하고 두 개만 연필로 밑줄을 그으면서 보고 말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문제들은 대부분 공군 조종사로 지내면서 위험한 순간들에 사용했던 용어들을 묻는 것이어서 기분 좋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정확히 답하지 못한 문제도 있었지만 크게 잘못된 답을 하지는 않았다.

▲ 하나님이 길을 가라 하셨고,하나님이 그 길을 가게 하셔서 얻은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


다 A를 맞고 한 문제라도 D를 맞으면 탈락이지만 모든 문제에 B와 C를 맞아도 합격이다. 최형호 형제는 모든 문제를 정확히 맞추지는 못했어도 유사하게 맞춘 덕분에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며
2010년 7월에 울진 비행교육훈련원에 입교해서 2012년 3월 13일에 본 최종 구술 평가 시험을 끝으로 최형호 형제는 모든 조종사 교육훈련 과정을 마쳤다. 수백 번 ‘나는 안 된다’고 낙망하고 울며 지나온 길이었다. 그래서 최형호 형제는 “훈련원에서 보낸 1년 9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홍해에 길을 내신 것 같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에게는 꼭 그런 시간이었어요.” 하고 말한다. (다음 호에 마지막 회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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