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한국 교회와 정통 복음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제10편 한국 교회와 정통 복음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3.02.0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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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을 변질시킨 3박자 축복

지난 12월 1일자 조선일보 A26면에 아래와 같은 5단 사이즈 컬러 광고가 실렸다.

   
 

이는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가지는 집회 광고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인 조 모 목사가 강사였다. 광고 한가운데 적힌 기도 제목은 집회의 성격을 나타나는 것이자 강사인 조 목사의 핵심 메시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일 교회 교인 수(數)로는 세계 최대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교인 수 증가의 바탕이 조 목사 신앙관의 핵심인 '3박자 축복'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성공을 보면서 그대로 수용하여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 다시 말해 3박자 축복은 한국 교회의 교인 수 증가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이러한 3박자 축복 신앙의 문제점에 대해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이 모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많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소위 3박자 축복(현세의 평안, 세상에서의 성공, 육체적 건강)은 다분히 무교적인 기복 신앙을 닮았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우선 재난과 화를 면하고 소원 성취하며 안락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기독교 신앙을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으로 변질시켜버렸다."(이 모 교수, 한국 교회의 위기와 희망, p.43~44)

즉, 3박자 축복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기독교 신앙은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복 받기를 원하므로 복을 준다는 메시지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인간의 복에 초점을 맞추셨다. 시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서 첫 설교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3~4) 하고 여덟 가지 복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과 인간이 받고 싶은 복이 서로 다르다는 데에 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복(福)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고 같으니라."(롬4:6~8)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참된 복이라는 것이다. 매튜 헨리는 이 부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주해(註解)하고 있다.

   
 

"그는 다윗이 죄 사함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편을 인용해서 말을 계속하고 있다. 죄 사함이야말로 인간의 행복과 축복의 기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함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하는 걸 명확히 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다른 모든 축복의 바탕이기 때문이다."(매튜 헨리,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Romans Part)

 

하나님의 시작으로 볼 때, 죄 사람이 모든 축복의 바탕이다. 이는 인간의 불행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는 어떤 불행도 없었다. 그들을 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범죄한 후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은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사59:2)라는 말씀처럼, 단 하나의 죄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불행하게 되었다. 그들의 후손인 인류 역시 죄인으로 태어나 하나님과 분리된 채 불행 속에 살게 되었다. 죄가 있으면 영원한 축복의 장소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죄는 인간의 행복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렇기에 죄 사함이 선행되어야 인간의 행복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옥수 목사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죄 사함이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으며, 그래서 참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 대신 죄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으로 어두움에서 헤매어야 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죄 사함 하나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박옥수 목사,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머리말 중)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복은 죄 사함을 받음으로 회복된다. 반대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인간에게는 참된 행복이 주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를 원하셨고, 예수님은 친히 죄를 해결해주시는 일을 맡으셨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깨우치는 일을 하신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죄 사함의 소식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다.

 

복음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신약성경에 72번이나 등장하는 ‘복음(福音)’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앙 겔리온(euangelion)’, 영어로는 ‘가스펠(gospel)’에 해당하며 ‘기쁜 소식 (Good News)’을 뜻한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고 그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즉, 복음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복인 죄 사함을 예수님이 담당하셨다는 소식으로,‘예수’라는 이름도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이 복음을 받아들인 수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고 아래의 인용문처럼 이 복음을 찬양하고 전하는 일에 자신을 드렸다.

   
 

“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여, 우리에게 모든 것 되시는 이시여, 당신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없는 보화가 어디 있나이까?”(호라티우스 보나르, Hymns by Horatius Bonar, p.219)

“주여,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치 말게 하여 주소서. 나를 유혹하는 모든 헛된 것들을 주님의 보혈 앞에 제물로 바치게 하소서.”(찰스 스펄전, 25 of the Greatest Sermons, Chapter 8)

“그리스도의 보혈의 교리로부터 떠나는 그 순간 기독교는 엉터리가 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하나의 이야기, 즉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드와이트 무디, Evangelical Spirituality,Chapter 7)

특히, 영국의 내과전문 의학박사인 마틴 로이드 존스는 장래가 보장된 직업을 포기하고 복음전도자가 되려는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저는 영혼을 치료하길 원합니다. 사람이 몸의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혼이 건강하면 그는 정말 다행스러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몸이 건강하고 영혼이 병들어 있는 채 60여 년을 보내다가 영원한 지옥을 맞이하게 된다면…. 아,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위하여 덜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죄 사함의 구원의 즐거움과 새 생명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마틴 로이드 존스, 1928년)

우리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는 이 소식은 너무나 중요하고 기쁜 소식이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사 40;2)고 사람들에게 외치라고 강조했다. 복음 전도로 인해 수많은 핍박이 찾아 왔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쁨과 감사로 이 길을 걸어갔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과 세상이 추구하는 복은 너무나 다르다.

 

세속적 인본주의가 바탕이 된 한국 교회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 교회에 만연된 세상의 복들을 추구하는 3박자 축복은 하나님의 복인 죄 사함을 전하는 기독교의 핵심 신앙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왜 3박자 축복을 조 목사는 핵심 메시지로 전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당장 허기를 채울 따뜻한 밥 한 공기, 약 한 봉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내게 서서히 설교 철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설교는 전적으로 삶의 문제의 해결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습니다.”(조 목사, 설교는 나의 인생, p.30~34)

위의 언급처럼, 조 목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복에 초점을 맞추면서 3박자 축복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순복음교회에 모이기 시작했고, 성도 수 증가를 교회 성장으로 본 한국 교회 목회자들도 3박자 축복의 메시지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이 죄를 갖고 있으면서도 죄 사함의 복은 사모하지 않은 채, 다른 복들을 얻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것이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6~68)

예수님은 사람들이 떠나가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하지만 오늘날의 수많은 목회자들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자 제임스 보이스(James Boice)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복음의 은혜는 어떻게 되었는가?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것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로 결심한 순간 교회에서 사라져 버렸다.”(제임스 보이스, The Doctrines of Grace, Chapter 1)

 

진리를 희생시키더라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죄와 전적 타락 등을 부인하게 하여 결국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에 사로잡히게 한다. 외형적으로는 인간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인본주의의 바탕이 되는 세상 기준의 위험성에 대해 마틴 로이드 존스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이 가진 전반적 견해나 기준은 항상 하나님을 거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은 악한 자, 곧 사단의 손아귀에 속해 그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마틴 로이드 존스, Children of God-Studies in 1 John, Chapter 2)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소식이 참된 복음인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은 이 복음이 수월하게 전해지도록 두지 않았다. 귀한 보화일수록 가짜가 많듯이, 사단은 복음과 비슷한 다른 복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참된 복음과 다른 복음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복음에만 온 마음을 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다른 복음을 정확히 분별하고 그의 서신을 통해 다른 복음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난 ‘다른 복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 1:6~8)

사도 바울은 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러한 다른 복음에 대해 매튜 헨리와 박옥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유대 교사들의 가르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은 복음으로 계시된 의인이 되는 구원의 방법과 전혀 다른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구원받는 길을 그들이 제시했기 때문이다.”(매튜 헨리,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Galatians Part)

   
 

“다른 복음이란 세상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 종파나 이단 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행위 쪽으로 흘러가는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는 수고와 노력을 해봐도 안 됩니다. 이제 당신이 죽여도 할 말이 없고, 당신이 멸하셔도 나로서는 할 수 없는데, 다만 은혜를 베푸셔야만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단순히 주의 은혜 안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할 것이다.”(박옥수 목사, 회개가 빠진 마술사 시몬의 신앙, p.177)

이처럼, 다른 복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이 아닌 인간의 의와 행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케 하려는 사단의 궤계로,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지만, 사단은 끊임없이 인간의 의와 행위가 첨가된 다른 복음을 만들어왔다. 초대 교회 이후 사단이 만들어온 대표적인 다른 복음을 3가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중세 시대 - 펠라기우스(354∼418, 영국 수도사)

“하나님이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명하지 않았고, 인간은 원하기만 하면 선을 행할 수 있기에 율법을 지켜 천국에 갈 수 있다.”(History of Dogma, Part 2)

2. 종교개혁 이후 - 반(半) 펠라기우스 파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이 필요하나, 인간도 자기 의지로 그 은혜를 받아들여야 구원이 이루어진다.”(Willing to Believe, Chapter 3)

3. 근대 - 슐라이어마허(1768~1834, 현대 신학의 아버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지만, 믿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진리와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온다.”(Evangelicalism Divided, Chapter 1)

위의 주장들은 구원의 길에 있어서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과 행위, 그리고 의지와 느낌을 첨가시킨 ‘다른 복음들’로,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속여 왔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도 이러한 다른 복음들이 혼재(混在)하여 한국의 수많은 교인들이 온전한 죄 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참된 복음을 가로막고 있다.

 

정통 복음주의 전도자들의 가르침

일평생 그리스도의 은혜에만 초점을 맞추고 복음을 전한 스펄전은 참된 복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나는 루터와 칼빈과 함께 복음의 핵심은,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대속’이라는 단어 속에 모두 들어 있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복음이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영원히 버림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내가 결코 저주 받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이다.”(찰스 스펄전, The Shadow of the Broad Brim, Chapter 15)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복음에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상태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두 사실이 함께 담겨져 있다. 이는 복음이 진정한 기쁜 소식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복음을 받아들이는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이는 그들에게 인간의 의(義)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롬 4:5)로 소개하고 있다. 복음은 어떤 선(善)이나 경건함이 없는 자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이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마다 타락한 우리 자신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마틴 로이드 존스 역시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복음주의는 거짓 복음주의’라고 지적하며, 반드시 참된 복음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죄의 교리와 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진정한 복음주의도 없다. 죄의 자각 없이 단지 예수께로 오라고 말하며 그분을 친구로 제시하고 경이로운 새 삶을 제안하는 복음은 신약의 복음주의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마틴 로이드 존스, 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 p.235)

특히, 이 시대의 정통 복음주의자 박옥수 목사는 마음이 어떤 상태여야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래와 같이 자주 역설하면서 참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그 복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로마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그 복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기 위해 죄를 씻음받는 것이며,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복’으로 표현했습니다. 참된 복은 복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기 위해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죄 때문에 애통해 할 줄 알아야 하며, 마음이 온유해야 하며, 자신에게 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의에 굶주림을 느껴야 합니다.”(박옥수 목사, 아브라함과 함께 받는 복,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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