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 손청자
  • 승인 2013.03.1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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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메아리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핑크빛 세상이었다.
세상에 대한 이 환상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1986년, 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이화여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최루가스 자욱한 캠퍼스와 캠퍼스 곳곳에 걸려 있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알리는 사진들과 대자보들이었다. ‘이게 뭐지?’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우리 사회 이면의 어두운 모습을 접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교회의 비리와 부조리한 모습도 보이면서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인생에 대한 수많은 의문을 풀어주고 삶의 목표를 제시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학교 서클뿐 아니라 여러 사회단체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난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데모도 해보고, 사회정의라는 말도 수없이 듣고 외쳐보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공허해져갔다. 무엇이 정의인가? 스스로에게서도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단 말인가? 다 허울만 좋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졸업장이라는 종이 조각뿐
하나님을 다시 생각했다. 교회는 부패했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살아

 
계셔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너무 공허했다.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렸다. 혹시 하는 마음에 명동성당에도 가보고, 불교 관련 서적도 읽어보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공허했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졸업할 때가 되었다. 나는 졸업식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졸업하는 날 내 마음에 분명하게 드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나는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대학 4년 내내 뭔가에 홀린 듯 무언가를 찾아다녔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졸업장이라는 종이 조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졸업한 후, 난 대학 생활의 실패를 만회해보려고 처음 대학에 들어갈 때 가졌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공허한 마음을 잊어버리려고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고시공부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더러운 인간인지를 보게 되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 가운데로
첫 시험에 떨어지고 1991년 다시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때 지금 나이지리아에서 선교하고 있는 김선화 사모님을 만났다. 언니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한 번 실패하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날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우리 방은 고시원 복도 끝에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우린 자연스레 인사하게 되었고, 언니는 커피 마시러 자기 방에 오라고 했다. 언니는 커피를 타주며 성경을 펴서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나는 만나자마자 성경을 들이대는 언니가 전혀 거북하지 않았고, 그 말씀 속에 빠져들었다.
말씀을 듣다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하는 여자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을 채워보려고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그 마음이 조금도 채워지지 않아 남편이 없다고 말한 그 여인의 모습은 내 모습과 같았다. 이후 난 또 뭔가에 홀린 듯 언니를 따라 봉천동에 있던 서울제일교회에 나갔다.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순수하고 깨끗하게 느껴졌고, 마음이 아주 평안했다.
신기하게도,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가졌던 인생에 대한 의문들이 하나 둘 풀려갔다. 어느 날, 목사님은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 말씀하셨다. 대학생 시절 궁금해서 신학 교수님께 물었지만 답변해주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나 명쾌하게 풀어주는 말씀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이후에 개인 상담을 나누며,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는 예레미야 17장 말씀을 들었는데, 난 그 말씀이 너무 좋았다. 내 속이 너무 더러워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싸매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의 마음이 다 그렇다고 하시니까 속이 너무 시원하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는 것이 너무 단순하고 쉬워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시원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성경이 읽고 싶었다. 무심코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가 눈에서 뗄 수가 없었다. 성경 전체가 죄 사함에 관한 말씀이었다. 내가 받은 구원이 너무 크고 놀라웠다. ‘이거였구나!’ 한 줄기 빛이 마음에 들어옴을 느꼈다. 마치 내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 같았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지친 내 영혼의 깊은 갈증을 해결해주시려고 언니를 고시원에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날리는 먼지처럼 나약한 나
구원받고 내 삶이 하나님 편으로 금방 옮겨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말씀이 내가 그렇게 찾고 싶었던 진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하나님이 아닌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았다. 피곤하고 힘들었고, 되는 일도 없었다. 마음이 점점 교회와 멀어져, 나는 교회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1999년 교회를 떠났다.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0년에 결혼을 했다. 처음 몇 달은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피곤함을 느꼈다. 남편은 생활력 강하고 무척 가정적이었지만, 완벽주의자에다 잔소리가 너무 심하고 작은 일에도 버럭 화를 잘 냈다. 나는 아무 힘도 없고, 내 마음은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같았다. 우울증, 의부증에 걸리거나 바람을 피우는 여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내 마음을 따라간 결과가 이런 것이구나!’ 난 정신적으로 너무 약해져 가는 나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남편에게 서울제일교회에 다시 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은 심하게 화를 내면서 내가 교회에 다니는 여자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라며 이혼하자고 했다. 남편이 너무 무서워서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남편은 안양으로 발령을 받았다면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사실은 나를 교회에 못 나가게 하려고 안양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내 마음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고, 어디에서도 쉴 수 없었다.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순간순간 두려움에 잡혔다.

나의 죽음을 보았다
어느 날, 가까이 살고 계시던 큰형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얼마 전에도 우리 집에 왔다 가셨는데, 며칠 후 온 몸이 베로 동여진 채 땅속에 묻히고 있었다. 너무나 허무했다. ‘아, 흙이구나! 언젠간 나도 저 흙으로 돌아가겠구나!’ 난 형님의 죽음을 통해 내 죽음을 보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다. 나는 ‘교회로 돌아가고 싶지만 저 남편이랑 살면서 교회에 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데 며칠 후, 운전면허학원에서 도로주행 연습 중에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엑셀을 밟았던 것이다. 형님이 돌아가시게 된 사고와 똑같은 사고였다. 그 순간 나는 마음에서 ‘이건 하나님이야!’ 하고 소리쳤다.
운전면허학원에서 나오자마자 기쁜소식안양교회로 향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께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다. 목사님께선 풍족하게 나갔다가 비어 돌아온 나오미 이야기를 해주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마음의 짐들이 다 내려놓아지고 큰 평안이 마음에 밀려들어왔다. 남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핍박이 심해질수록 말씀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남편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말로만 듣던 핍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남편이 무섭지 않았다. 남편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심장이 떨리지 않았고,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던 증세도 없어지고 우울증 증세도 사라졌다. 남편의 괴롭힘이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깨뜨릴 수 없었다.
텅 비어 있던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해졌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통해 주셨던 약속을 내게도 보여주셨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9)
나를 대적하고 꺼려하는 친정이나 시댁 식구들과 남편이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언젠간 절하며 굴복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2005년엔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을 받아 성북구로 이사하면서 기쁜소식성북교회에 나갔다. 안양에서는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부수던 남편이 성북에서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생활비도 너희 하나님한테 타서 쓰라며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때론 모멸감이 너무 커서 남편을 죽이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하나님은 남편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악을 다 드러내셨다.
친정 식구들은 내가 교회에 미쳤기에 남편이 그렇게 한다며 모두 남편 편을 들었다. 시댁 식구들도 내가 이상한 교회에 다닌다며 나를 외면했다.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런 중에 하나님은 내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님 편으로 인도해주셨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편 23편)
다윗의 시는 대부분 왕궁에서 지은 시가 아니라, 사울에게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쓴 시들이었다. 그런 다윗의 시가 내 마음의 시가 되었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밝게 보이듯, 남편의 핍박이 심해질수록 말씀은 더 선명하게 내 마음에 다가왔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2009년, 남편이 부동산 전망이 좋은 지역이라며 강동구로 이사가야겠다고 했다. 기쁜소식강동교회로 옮기면서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바빠 집에 늦게 들어갈 때가 많았다. 남편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에도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핍박의 양상이 폭력에서 무관심과 무시로 바뀌었다. 추석 명절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살기가 등등한 눈으로 음식 준비하지 말라고 하더니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술을 뿌리고는 혼자 시댁으로 가버렸다. 더 이상은 살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회의 어떤 자매님에게 이혼해야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가 사모님 귀에 들어갔다. 어느 날, 사모님이 내 얘기는 한 마디도 들어보지 않고 다짜고짜 “남편 앞에서 죄인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하며 나를 거절하셨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되어 사모님이 너무 원망스럽고 너무 억울했다. 교회 쪽으론 얼굴도 돌리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남편의 핍박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신앙생활한 것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밖에 없는데,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너무나 서러웠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교회에서도 거절당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았다. 살을 에는 듯한 그 고통은 남편에게 핍박받는 고통보다 더했다. 남편에게 핍박받으면 피할 교회가 있었지만, 교회에서 거절당하면 난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 잡혀 일주일 동안 집에 틀어박혀서 끙끙 앓다가, 그 생각의 끝에서 하나님을 향해 칼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건 가인의 모습이었다. 가인은 자신이 너무 옳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거절을 당하자 분을 이기지 못해 동생 아벨을 죽였다. 나는 교회를 떠났다 돌아와서 이제 교회밖에 없는,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자였다. 그것이 내 본 모습이었다.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편에 대한 미움도 사라지고, 나를 간섭해주신 사모님께도 감사했다.
얼마 후, 사역자 이동이 있어서 일본 동경에 계시던 주종식 목사님이 우리 교회로 오셨다. 목사님은 박옥수 목사님과 계속 교제하면서 얻은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자신의 근본을 발견해 자신에게서 벗어나 말씀 편으로 옮겨지는 세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말씀에 젖어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를 외면했지만,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현실은 암울했지만 내 마음은 하늘에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IYF 간사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는데, 정말 행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나를 월드캠프 교사로 불러주셨다.
내 마음이 끝나고, 내 길이 끝나니까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만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내 마음과 삶을 이끌어 가셨다. 그 삶이 너무나 쉽고 평안했다.

 

행복은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질 때 얻을 수 있는 것
우리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릴 때였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구역장 형제님 앞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얼굴에 침을 뱉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떨떨했다. 그러고는 골프채로 구역 식구들을 위협하며 쫓아냈다. 정말 그럴 줄 몰랐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구역장 형제님 집으로 옮겨서 예배를 드리며, 그날 우린 너무 행복했다. 우리 마음은 점점 뜨거워졌고 감사함으로 채워졌다.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성경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사도행전 10장 15절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부정해 보였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깨끗케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남편을 어떻게 이끄실지 상상은 안 되었지만, 난 그 말씀 안에서 쉴 수 있었다.
2010년에 나는 마하나임 사이버신학교 2기생으로 입학했다. 사이버 강의를 듣는 동안, 때론 남편과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사는 게 정상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편을 조금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난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 속에 머물 시간조차 없었다. 어느새 내가 처한 형편이 눈에 보이지 않았고 나는 말씀에 젖어 하루하루를 너무 행복하게 살았다. 행복은 내 원함이 채워질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졌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이버신학교 강의 내용은 전체가 내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편으로 옮겨가는 ‘회개’와 말씀에 이끌려 사는 ‘믿음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를 듣는 2년 동안 하나님은 내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님 편으로 옮겨주셨고, 나를 말씀이 일하는 세계에 들어가게 하셨다. 특별히, 교회사 강의를 들으면서, 복음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죽음과 희생의 터 위에서 지켜지며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믿음의 선진들 중에 핍박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며 꺼림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영광스런 일이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난 학대와 환란을 당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신앙을 지킬 수 있었나 보다. 내가 남편과 가족들로부터 받는 냉대와 핍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핍박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이 세상 신이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면서, 가족과 남편의 영혼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2011년 1월에 나는 태국에서 있었던 글로벌캠프에 시니어로 참석해 박옥수 목사님 사모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분명하고 굵은 선을 그었다. 새벽마다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들었는데, 성령이 충만했던 그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말씀을 듣다 보니, 세상도 나도 사라지고 하늘에 대한 소망만이 내 마음에 가득해졌다. 어느새 내 마음은 나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편으로 옮겨져 있었다. 이미 난 모든 것이 이루어진 세계에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네가 승리했다.”
이후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내게 주셨던 말씀들을 이루어 가셨다.
2011년 봄, 올림픽체조경기장 집회 때 가평에 계신 부모님을 초청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시며 심하게 화를 내셨다.
그 후 하루는 주종식 목사님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며, “제사장 주변에 문제 많고 더러운 죄인이 많이 모이는 게 당연하고, 기분 좋은 일 아니겠어요?” 하셨다. 가짜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피해서 갔지만 참된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셨다며, 참된 제사장은 더럽고 추하고 문제 많은 사람들을 볼 때 기쁘고 일할 맛이 난다고 하셨다. 그러니 자신의 눈을 버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들을 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친정 식구들 그대로 놔두시렵니까?” 그때 하나님이 내게 ‘네가 왕 같은 제사장이고, 복잡하고 문제 많은 친정 식구들을 네게 붙였다’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말씀이 생각났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다음날, 나는 욕먹을 각오를 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버지 마음을 이미 다 바꾸어 놓으셨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부모 자식 간에 그런 게 무슨 문제가 되겠냐며 교회 부인 자매들과 함께 가평에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교회 부인회를 가평에서 하게 되었다. 그때 부모님이 와서 보고는 우리 교회 자매들이 장로교회 부인들과 너무 다르다며 마음을 여셨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나가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다.
시간이 흘러 여름 수양회가 찾아왔고, 엄마는 하루만 바다 구경을 하고 갈 생각으로 강릉 수양회 장소에 오셨다. 그런데 복음반 말씀이 너무 좋아서 며칠 더 참석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셨다. 하지만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맡은 일이 많기 때문에 교회를 분리할 순 없다고 하셨다. 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아무것도 내가 붙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끌어오신 하나님이 또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추석에 친정에 갔을 때, 아버지께 인터넷으로 박옥수 목사님 설교 말씀을 한번 들어보자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셨다. 아버지는 말씀을 들으면서 크게 감동을 받으셨다. ‘저런 말씀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시고, ‘박 목사님의 얼굴에서 그 어느 목사님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정성과 간절함을 느꼈다’고 하셨다. 이어서 아버지께선 얼마 전,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장로 사이에 분쟁이 생겨 무얼 알아보려고 문화관광부 종교분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이것저것 묻다가 갑자기 “기쁜소식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담당자가 “그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유일한 정통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 교회 저 교회 다녀봤지만 당신이 보기에도 기쁜소식 교회가 제일 깨끗하고 순수한 교회 같다며, 동생들에게 “우리 가족이 이제 모두 기쁜소식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 후,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강동구 천호동에서 구역집회를 가졌다. 아버지는 그 집회에 참석해서 구원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박 목사님을 뵙고, 당신이 그동안 잘못되었고 지금까지 신앙을 거꾸로 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하며 “네가 승리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젠 당신이 가족들에게 전도하겠다며 나보곤 쉬라고 하셨다. 강남교회 자매님들은 장소가 없어서 천호동까지 와서 집회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생들은 나를 대적하고 박옥수 목사님을 욕하던 부모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기쁜소식교회에 나가라고 권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해 가을 성경세미나 때 둘째 여동생(손미라)이 구원을 받았고, 겨울 수양회 때 넷째 남동생(손낙희)이 교회와 연결되어서 둘 다 기쁜소식성북교회에 나가고 있다. 남동생은 기획사에서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데, 현재 가스펠 그룹 <리오몬따냐> 형제님들과 함께하고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012년 봄엔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일을 하나님이 내 앞에 펼쳐주셨다. 그렇게 나를 핍박하며, 거의 2년 이상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남처럼 살던 남편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은 남편에게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다. 생전 말도 안 붙이던 남편이 어느 날 내게 다가와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다며 일주일간 회사를 쉴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주간이 바로 올림픽체조경기장 집회 기간이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스케줄에 의해서 모든 것이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집회에 가자고 하자 남편은 싫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란 말씀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분명히 내게 기쁨을 주신다고 하셔서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집회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집회 마지막 날, 남편은 평창에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더니, 차안에서 갑자기 “오늘 저녁에 집회에 한번 가볼까?” 했다. 대신 문가에 앉고, 답답하면 그냥 나갈 거니까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남편이 하나님께 이끌리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박 목사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셨다. 남편은 진지하게 말씀을 들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분명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이제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고, 그 주에 나와 함께 교회에 갔다. 그날 목사님도, 형제 자매님들도 너무 놀라며 기뻐했다. 하나님의 역사였다. 여호와껜 능치 못할 일이 없었다.
그 다음 주에는 우리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렸다. 남편은 구역 식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예배 준비에 마음을 쏟고 생선회를 주문했다. 그날 우리는 웃음꽃을 피우며 간증하고 말씀을 나누었다. 자매님들은 천국 잔치를 하는 것 같다며 행복해하셨다. 어떤 모친님은 실감이 안 나는지 ‘저러다 돌변하는 거 아니냐’며 염려하시기도 했다.
7월엔 부산 벡스코에서 월드캠프가 있었다. 남편은 내가 교사로 가는 것을 반대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시니어 팀으로 등록해서 함께 월드캠프에 참가했다. 캠프 기간에 말씀을 듣고 돌아온 후,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 체조경기장에서 그때 박 목사님 말씀 듣고 구원받았어. 난 그게 뭔지 몰랐는데, 여기서 말씀을 듣다보니, 그게 구원이었어. 난 의인이야.”

 

하나님이 내게 주고 싶으셨던 것은 하나님 당신이셨다
하나님이 요셉을 이끄셨던 것처럼 나도 이끄셨다는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나를 믿는 마음, 나의 옳음이 다 무너지고 그 안에 하나님 한 분만 분명하게 세워지길 원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을 허락하셨고, 가족들과 남편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하시면서 나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어디에도 소망을 둘 곳이 없는 자로 만드셨다. 내 인생 속에 내가 한 것은 다 무너졌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신 것만이 남았다. 하나님이 내게 주고 싶으셨던 것은 바로 하나님 당신이셨고,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었다.
어려움과 핍박은 내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시켜주는 통로였다. 그 속에서 내 길이 끝나고,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만이 내 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내 손을 잡고 나를 감옥에서 이끌어내어 치리자로 세우시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와서 절하게 하셨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 3:17~19)
하박국 선지자의 간증은 이제 내 간증이 되었다. 나를 끊임없이 당신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고, 내 마음에 하늘의 소망을 심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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