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 이헌목 목사
  • 승인 2013.04.1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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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주 다윗의 자손이여!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소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일들을 보고도 예수님을 오실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벌 옷에 거할 집도 없고 제대로 씻지 못하여 노숙자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외형을 보고,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해줄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겉모습만 보는 영적 소경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형편과 반응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눈에 보이는 것에 반응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 소경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흉악히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에는 가나안 여자가 전혀 다른 세계를 봄으로써 수차례 외면과 무시당함을 넘어 얻어내는 신앙의 축복을 가르쳐주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실, 즉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인 것을 정확하게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병자들을 일일이 고쳐주셨는데, 가나안 여자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나안 여자가 애타게 예수님을 불렀지만 한 말씀도 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조차 주시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제자들까지 도와주시라고 예수님께 요청했지만 거절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자기 딸을 고쳐주실 것을 확신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거절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 여호와가 …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 42:6)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표면적인 뜻과 이면적인 뜻을 다르게 표현하시는 경우가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신비한 세계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를 거절하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가나안 여자는 표면적인 이야기와 다른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했기에 예수님께 계속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에게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라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것이 맞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자기 딸을 고치시기 위해 오신 줄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말에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도리어 더 분명하게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자는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 줄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2)
여자의 외침 속에서 여자가 얼마나 믿음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누구도 하지 않던 말을 이 여자가 예수님에게 하고 있습니다. 
 

땅의 곡물을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주여, 저를 도우소서!” 외치는 가나안 여자에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십니다. 더 철저하게 여자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이런 모욕을 받느니 그냥 돌아가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여전히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신이 난 것처럼 이렇게 외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나님은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레 23:22)
고 율법에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모퉁이의 곡식, 가나안 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스러기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자신 같은 이방인을 위해 남겨두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나안 여자는 자신이 마땅히 받을 권리를 주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겸손으로 자기 딸을 고침 받으려는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믿는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거절하시는 말과 무시하는 것 같은 태도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그러한 데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회자나 주위의 성도에게 거절과 무시를 당하고 섭섭한 말과 책망을 듣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거기에 얼마나 매입니까? 눈치를 보고 숨거나 불신하여 마음을 닫고 지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거짓된 형편을 보여주며 그것에 영향을 받도록 한결같이 시험을 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거짓된 내 눈, 거짓된 내 판단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악한 줄 모릅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5:18)


믿음은 거짓(보이는 세계)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즉시로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가나안 여자가 거절당하고 무시받는 형편이 수없이 밀려와도 마음에 흔들림 없는 분명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이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이 믿음을 예수님에게서 받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형편을 뛰어넘어 놀라운 주님의 세계를 경험하였고, 거절하고 외면당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오히려 여자가 가진 믿음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너를 공궤하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과부를 만났을 때 과부는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고, 공궤할 마음도 없었고, 양식도 없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역시 형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말씀을 믿어 그 말씀으로 과부에게 믿음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믿음의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형편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 놀라운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는 은혜를 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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