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를 훈련하시고, 아이들을 양육하시고
전도자를 훈련하시고, 아이들을 양육하시고
  • 김영삼 선교사
  • 승인 2013.05.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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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선교학교를 해야겠다
카메룬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단기선교사 형제와 함께 노방전도를 나갔다. 그런데 금방 한계가 찾아왔다. 날씨는 너무 뜨겁고, 말은 안 통하고, 배는 무척 고프고…. 중부아프리카에 속한 카메룬의 국민들은 전에 있었던 서부아프리카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서부아프리카 사람들은 집에 손님이 오면 물이라도 주는데, 이곳 사람들은 물도 안 주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식으로 전도해서는 내가 망하겠구나. 하나님이 하셔야지.’ 선교학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루는 안토니란 이름을 가진 젊은 사람이 아기를 안은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 사연을 들은즉,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나 길에서 방황하다가 백인 선교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된 일을 계기로 학생들을 모집해 선교학교를 시작했다. 선교학교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말씀을 전해야 했다. 선교학교가 없었다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정죄했을 텐데, 하나님은 내 속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없애버리셨다.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선교학생들이 훈련받은 말씀을 들고 전도를 나갔다. 그리고 저녁에는 선교학생들이 초청해 온 사람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형편이나 내 속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매일 말씀을 전해야 하고 수업을 해야 하기에 자동적으로 성경을 보게 되고, 기도할 수밖에 없고,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통하여 신앙은 내가 뭔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바꾸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관념이 바뀌고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육신 안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무얼 해도 복이 되는 것처럼, 관념 하나가 바뀌니까 모든 것이 저절로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셔서 내 중심에서부터 ‘내가 뭔가 했다’는 말을 못 하게 하셨다.

일한 것이 많은 사람과 일한 것이 없는 사람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는 심판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심판대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자신들이 뭔가 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이 주리신 것, 목마르신 것, 나그네 되신 것, 벗으신 것, 병드신 것,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하고 말했지만, 주님은 그들이 주님을 돌아보지 않았다고 하셨다. 반면에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는 그들이 주님을 섬겼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어떤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면서도 내가 했다는 마음들이 있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냐?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져야 하잖아. 내가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예수님이 알지 못한다고 하신 자들은 자신들이 한 것이 많았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그처럼 그들이 한 일은 많은데 예수님이 그들을 통해서 일하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저주를 받는 것을 본다.
자기 영역 안에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자기 영역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저주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와서 살면서 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논다는 마음이 들었다. 몸은 바쁘지만 복음을 전할 때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소망이 생기고, 피곤이 사라지고, 어려운 형편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저절로 기도하고 말씀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내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곳에서 논다는 마음이 든다.

지금은 재미있고 복된 사역자 모임
선교학교를 하고 사역자를 훈련하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또 달랐다. 이곳에서 선교학교를 하고 사역자들과 같이 지내면서 주님은 그들을 통해 내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 전에 한국에서 사역자 모임을 가질 때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를 자주 책망하고 교훈하셨는데, 이곳에서 실제로 사역자들을 인도하면서 왜 목사님이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마음이 만져졌다.
카메룬의 선교학생들이나 사역자들에게 부족함이 많지만, 그들이 교회 안에서 훈련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많은 은혜를 입혀주시는 것을 본다. 한 달에 한 번씩 사역자 모임을 갖는데, 서로 마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모임이 정말 재미있다. 처음엔 복된 모임을 갖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내 말을 알아듣는 전도자들이 하나둘 일어나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교제하여 마음이 흐르니까 전도자들도 모임을 사모하게 되었다.
현재 카메룬에는 8개의 지역 교회가 있는데, 교회별로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사역자 모임을 하면서 집회도 함께 한다. 사역자들과 함께 도시락을 준비한 후, 9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를 차를 몰고 다 같이 가서 그곳에서 사나흘 동안 사역자 모임을 하면서 그 교회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고, 교회에 새로 찾아오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형제 자매들 마음도 말씀 앞에 세워지고, 사역자들도 말씀과 간증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며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복된 시간을 보낸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아프리카는 어렵다’는 형편에 묻어두고 살았다
가나, 나이지리아, 그리고 카메룬. 세 나라를 옮겨다니는 동안 언어가 바뀌어 중학교 2학년과 1학년 때 아프리카에 함께 온 두 아들 사무엘과 요셉이는 졸업장을 얻지 못했다. 학교를 여덟 번 옮겨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는 했지만 졸업장도 없는 학교 생활이었다. 그래도 나이지리아에서 2년 동안 학교를 다녀 영어에 좀 익숙해졌는데, 그때 카메룬으로 오게 되어 새롭게 불어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지만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또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눌렸다.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살았는데 이게 뭐냐?’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종들은 믿음으로 사는데 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과 교회를 거스르는 대적자가 되겠구나’ 하며 하나님 앞에 나갔다.
그렇게 보낼 즈음 2007년 미국 매디슨스퀘어가든 대전도집회에 참석했다. 사역자 모임 시간에 사역자들이 간증을 하는데, 유럽 지역 사역자들은 ‘사람들 마음이 부유하고 높아서 안 된다’고 하고, 아프리카 사역자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안 된다’고 했다. 박옥수 목사님은 묵묵히 듣고 계시더니 “하나님 해도 안 되냐?” 하셨다. 순간 불이 번쩍 들어왔다. 선교사로서 ‘하나님이 해도 안 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되지!’ 그때까지 형편을 인정해주고 살아온 내 모습이 보였다. ‘아프리카는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 하고 형편을 보는 눈이 강했는데, 하나님이 해도 안 되냐는 한 마디가 어떤 형편에서도 소망을 이끌어내고 하나님을 기대케 했다.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묵상하던 중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주인에게 달란트를 받아 장사하는 종들의 비유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믿음으로 산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어느새 형편에, 아프리카는 어렵다는 생각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아프리카에 잘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삶이 어려워 차비가 없어서 교회에 못 오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항상 아이들을 학비가 만 원인 학교에 보냈다. 당연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했다. 비가 오면 교사가 힘들다고 안 오고, 일이 생기면 바쁘다고 안 오고…. 거기에다 교사의 월급이 적어서 그것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우니까 교사들은 보통 두세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도 잘 오지 않는 학교. 아프리카에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했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여러 부분을 생각해보니, 내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종들은 주인의 마음으로 장사를 해서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에게서 받은 달란트를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놓았다. 나 또한 아프리카는 어렵다는 형편에 모든 것을 묻어두고 살고 있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결국엔 하나님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나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졸업장도 없고, 학교도 열악하고…, 구체적으로 하나씩 기도했다.

하나님은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만들어놓았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4장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 가르쳐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 14:15~16)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래? 가라. 부르짖지만 말고 앞으로 나가라.”
“하나님,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데요? 가만히 있으면 바로의 군대에 의해서 죽고, 앞으로 가면 물에 빠져 죽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가라고 하셨다. 바다 속에 길이 있다고.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시 77:19)
하나님은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만들어놓았다고 하셨다. 그때 마침 미국인이 운영하는 외국인을 위한 국제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로, 1인당 학비가 당시 돈으로 1년에 약 1,000만 원이었다. 아들이 두 명이니 2,000만 원이 필요했다. 나는 학교에 찾아가서 교장선생님에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마음을 간증했다. 아프리카에 오게 된 사연, 하나님이 한 걸음씩 인도하신 일들, 그리고 아이들 일로 하나님이 내게 믿음 없는 것을 보이셔서 새 마음을 가진 후 이 학교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이곳을 찾아왔다고 간증했다. 그리고 “지금 선교비를 500달러(약 60만 원)씩 받고 있는데, 방세와 집세와 전기세 등 기본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쓰면 1년에 최대 1,000달러
(약 120만 원)를 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교장선생님이 내 말을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라고 하여 선교회 본부에 연락해서 서류들을 받아 제출했다. 그분은 우리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서류를 보더니 ‘당신이 선교사니 50%는 깎아줄 수 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 1,000달러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돈을 내든 안 내든 시험에 합격해야 하니까 우선 시험을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시험에 합격해 두 아들 모두 일단 고등학교 2학년으로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했다. 한 반에 9명밖에 되지 않고, 미국인 교사가 직접 가르치고….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학교다운 학교를 다니니 행복해서 새벽 2~3시까지 공부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참 행복했다.

“내일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두 달이 지나고 첫 학비 통지서가 나왔다. 1인당 3,600달러였다. 돈이 없었지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한 번 정도는 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음에도 그렇게 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돈도 없을뿐더러 그처럼 많은 돈을 학비로 쓴다는 게 불편해서 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돈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 한 번 정도는 낼 수 있다. 그러면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써야 하는데, 불편하다.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야지. 내 마음이 불편하니 내일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이들 얼굴에서 절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큰아들은 “아버지, 저도 생각을 많이 해보았는데 아버지 말씀에 따르겠어요.” 했다. 하지만 둘째는 “꺼억! 꺼억!” 하고 울었다. 아내도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 다닌 지 두 달이 되던 날,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범적이었기에 의아해했다. 나는 ‘우리 능력으로는 아무리 해도 두 아이가 2,000달러 이상은 낼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왔다. 아이들은 어깨가 축 처진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난 마음이 평안했다.

 
아프리카지만 하나님 안에는 학교도, 학비도, 졸업장도 있었다
다음날 새벽,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3일 후,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학교를 계속 다녀도 된다며, ‘이번에 특별 보조금이 나왔는데, 그걸 우리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기독교인인 교장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긍휼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어떤 분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금을 낸 것이다. 정말 감사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셨다.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지, 발을 내딛을 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2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아이들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졸업식 날 우리 부부는 많이 울었다. 아내는 옆에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지만 하나님 안에는 학교도 있고, 학비도 있고, 졸업장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학교였기에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간증이 되었다.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생명이 되기도 하고 사망이 되기도 한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 학교를 알아보던 중 둘째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가 미국 고등학교 중 100위권 안에 드는 학교였기에 미국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형편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또 카메룬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대학이 없기에 다시 불어를 쓰는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마땅히 들어갈 과가 없어서 둘째는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룬의 국립대학교는 한 학년의 학생이 만 명인데, 한 강의실에서 1,500~2,000명이 수업을 받는다. 마이크도 없이 강의하는 교수님, 의자 없이 몇 시간 동안 서서 받는 수업. 때론 교수님의 강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밖으로 나가 창문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강의를 듣다가 한계를 만난 둘째가 나에게 나아왔다.
“요셉아, 옛날에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어. 후에 큰아들은 사장이 되고 작은아들은 살인자가 되었대. 기자가 신기해서 인터뷰를 했대. 큰아들에게 물었어. ‘당신은 어떻게 사장이 됐습니까?’ ‘아버지 때문에요.’ 이번에는 작은아들에게 물었어. ‘당신은 왜 살인자가 됐습니까?’ ‘아버지 때문에요.’ 똑같은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그 형편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어. 큰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항상 자신을 가르쳤고, 작은아들은 모든 것을 아버지 탓으로 돌렸던 거야.”
나는 둘째에게 사무엘상 30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글락이 불탄 같은 형편 앞에서 다윗의 반응과 그를 따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다윗은 하나님께 반응했고, 다른 이들은 형편에 반응했다. 나는 둘째에게 문제 앞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이 생명이 되기도 하고 사망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후 요셉이는 마음을 바꾸어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학교에서 사귄 한 친구가 구원을 받고 교회에 연결되고, 또 국회의원인 그의 아버지가 구원받아 교회에 연결되어 2011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 청소년부 장관 포럼’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분은 북쪽 ‘마루아’에 사는데,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어떤 것도 하나님과 만나지면 다 선이 된다. 우리가 그 안에서 사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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