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엄마에서 행복한 엄마로
미안한 엄마에서 행복한 엄마로
  • 임태영
  • 승인 2013.06.15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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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시기하듯 행복을 빼앗아갔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1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은 성실하고 착하고 한없이 자상했다. 덜렁거리는 나는 언제나 말없이 챙겨주는 남편이 고마웠고, 결혼생활이 참 행복했다. 그런데 행복은 잠시, 시아버님께서 남편을 보증인으로 세워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 빚이 결국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기가 막혔다. 패물 등을 팔고 있는 것 다 털어서 갚고,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그렇게 보내고 있을 때 우석이가 태어났다. 예쁜 아들이었다. 우석이는 말도 잘하고 흥도 많은 아이였다. 음악만 나오면 걸어가다가도 엉덩이춤을 추어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행복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 내가 행복해지려면 누군가가 시기하듯 행복을 빼앗아가버렸다.
시동생이 이혼해서 조카 둘에다 우석이와 둘째 효철이까지 네 아이를 돌봐야 했다. 우석이가 네 살 때쯤이었다. 우석이와 같은 또래의 조카는 샘이 많았다. 자기가 우석이를 때리고도 자신이 울면서 우석이가 때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우석이만 혼냈다. 우석이와 조카가 내게 다가오면 나는 조카를 먼저 안아주었다. 조카는 엄마가 없으니까. 우석이는 집에 가서 많이 안아주면 된다는 나의 선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우석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몰랐다.
그때부터 우석이는 말이 없어지고 폭력적인 아이가 되어 소리를 질러댔다. 모두 우석이를 향해서 ‘왜 저러냐?’고 했지, 그 이유를 살펴볼 마음이 없었다. 시댁 식구들도 조카 말만 듣고 우석이를 나무라고 혼냈다. 한번은 우석이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는데, 우석이가 자전거를 자랑하고 싶어서 할머니 집에 타고 갔다. 그런데 조카가 샘이 나서 할머니에게 우석이가 자전거를 훔쳤다고 말해 어머님이 우석이를 때리셨다. 형님이 전화로 그 상황을 전해줘 급하게 가보니, 아이가 눈물범벅 땀범벅이 되어 나를 보며 울었다.
 

마음을 무너지게 만든 일들
우석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맘먹고, 언니에게 삼성병원 소아정신과에 예약을 부탁했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정신과에 데리고 간다고 난리였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갔는데, ‘후천적 자폐’라는 결과를 듣고 마음이 무너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들이 나를 한참 동안 지켜보면서 연신 휴지만 건네셨다. 엄마인 내가 아이를 지켜주기는커녕 나의 바보 같은 성격 때문에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내가 너무 저주스러웠다.
우석이를 데리고 1년을 삼성의료원을 다녔다. 병원에서 주는 하얀 알약을 아이에게 도저히 먹일 수 없어서 화장실에 다 버리고 약을 버린 변기를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에게 좋다는 곳은 다 쫓아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구들이 안정을 찾아갈 즈음,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쓰러졌다. 병명도 모른 채 열이 39~40도를 오르내리고, 입술이 부르트고 살도 많이 빠졌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남편은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호프집을 차렸다. 남편이 주방 아줌마를 두고 가게를 운영했는데, 밤늦게 일하는 것 때문에 아줌마가 일을 그만두어 내가 일을 배워서 주방을 맡았다. 장사가 아주 잘되어 금방 빚도 갚고 부자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를 시기한 옆 가게 주인의 사주로, 미성년자가 들어와 술을 먹다가 경찰에게 잡혀 내가 재판을 받아야 했다.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참 두려운 시간들이었다. 그 후로도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가게를 하면서 밤낮이 바뀌어 교회를 나가지 못해 하나님이 벌을 주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줌마! 우석이 형이 다쳤어요!”
우석이는 자랄수록 동생 효철이를 의지했다. 둘의 우애는 남달랐다. 우리가 가게에 가면 우석이가 밥을 챙겨서 효철이와 먹고 설거지도 깨끗이 해놓았다. 가게에서 집에 돌아오면 늘 “엄마 아빠, 고생 많으시지요? 사랑해요. 이 사탕 먹고 힘내세요.” 하고 현관 앞에 쪽지와 사탕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우리 부부는 힘든 줄 몰랐다. 늘 자는 모습만 보며, 난 우석이에게 죄인이고 미안한 엄마로 있었다.
하루는 효철이 친구가 전화를 해서 “아줌마! 우석이 형이 다쳤어요!” 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졌나 생각했는데, 119구급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가서 사람들을 제치고 보니, 우석이는 의식이 없고 다리는 부러져서 ‘ㄷ’ 자로 꺾여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병원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우석이가 의식이 돌아온 후 처음 한 말이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 죄송해요. 제가 다쳐서 정말 미안해요.” 하고 울었다. 난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고 울부짖었다. 그날 밤늦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잘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가게를 내게 맡기고 우석이 옆에서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그렇게 힘겹게 6개월이 지나고, 다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수술한 자리에 뼈가 붙지 않아서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재수술은 골반뼈를 잘라다가 이식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속이 얼마나 타고 아프던지…. 아이가 당할 고통을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잔혹하리만큼 나에게 고통을 주시는지 원망스러웠다. ‘남에게 못되게 한 것 없고, 남의 것 욕심내지 않고 살았는데….’ 전에 다녔던 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서 “집사님이 교회를 안 나와서 벌을 주시는 거예요. 빨리 교회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하나님이 누구를 취해갈지 몰라요” 했다. 순간 무서운 마음이 들어 고민하다가 아는 언니가 다니는 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 때 ‘늘 교회에 가서 “하나님, 오늘은 이런 죄를 지었어요. 모르고 지은 죄까지 다 용서해주세요” 하고 똑같이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지겨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오늘도 임태영이는 그렇게 기도하겠지’ 하며 내가 기도할 때 귀를 막아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기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하는데, 한달에 5~6만 원씩 헌금하면 3년 후면 예배당을 건축할 땅 한 평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 하늘나라에 땅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내 마음은 쉴 곳을 잃었다.
그런 마음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기쁜소식포천교회의 나숙자 자매님에게 이야기했더니, 자매님이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주면서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주방 선반에 던져놓았던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곧 말씀에 빠져들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 자매님이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자매님은 이야기 중에 이사야 53장 5~6절을 ‘우리’라는 단어 대신 내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가 찔림은 임태영(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임태영(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런 말씀이었구나! 나로 인해서 예수님이 그 고통을 당하셨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날 나를 짓누르던 죄가 다 사라지고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식당에서 복음을 들었는데,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해서 기도하는 동안 나와 자매님은 펑펑 울었다. 창피함도 느낄 수 없었다.

고통은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려는 것
내게 고통을 더하신 것은 평안을 주려 함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소경을 보고 예수님께 그가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누구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우석이로 인해 내 마음을 누르고 있던 모든 것을 몰아냈다. 우석이가 자폐아가 된 것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며,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것처럼 우석이를 온전케 하시겠다는 소망을 가졌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신실하게 일하셨다. 내가 복음을 듣고 남편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자, 남편은 “당신이랑 애들이 교회에 다니는 건 뭐라 하지 않을 테니 나더러 가자는 말은 절대 하라 말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석이가 걱정이었다. 다른 교회에 갔을 때에는 하루만 가도 안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쁜소식포천교회에 가 보더니 정말 좋다고 했다.
우석이는 수술 후 한참을 고생했다. 걷는 게 불편했고, 엄지발가락 신경이 죽어서 약간 절었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보다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져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속상했지만, 우석이는 교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변했다.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우리 교회에 집회가 있어서 남편더러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했다. 그 다음 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남편이 선물을 사준다고 하기에 ‘이거다!’ 싶어서 ‘오늘 교회에 오는 걸로 결혼기념일 선물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2009년 4월 24일, 남편이 처음 우리 교회에 온 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후로 남편은 이따금 교회에 왔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빚은 늘어만 갔다. 가게가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독촉했다. 남편의 친구이고, 그의 아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부부가 제일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보증 서준 돈을 우리가 못 갚으면 자신들이 갚겠다고 했을 만큼 친했는데, “너희는 다 망했는데, 왜 우리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냐? 집도 내놓아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말 믿기 힘들었다. 그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친구는 나에게 “다 망했는데 교회에 미쳐서 교회만 다닌다”며 야유했다. 나는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 친구를 향해 “그래, 하나님이 내게 계셔. 그 하나님이 이제부터 우리에게 어떻게 일하시는지 똑똑히 봐!” 하고 말했다. 말하면서 그것이 내 마음이 아니란 걸 알았다. 늘 울기만 하던 내가 그처럼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다.
포천은 동네가 좁아서 어떤 소문이든 금방 퍼진다. 우리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하고 무시했다. 때론 빚쟁이들이 가게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 남편은 무척 어려워했다. 전에 국무총리실 사무관으로 있을 때에는 자기를 보면 90도로 인사하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시동생이 “형수님, 형이 마음을 다르게 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잘 살펴주세요.” 하고 전화를 했다. 내게도 ‘저 사람, 저러다가 죽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수양회에 참석하고 있던 목사님께 울며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목사님이 주신 마가복음 1장 27절 말씀을 의지해서 남편에게 수양회에 가자고 했다. 몇 번 거절당했지만 기도하고 또 기도했고, 하나님이 극적으로 남편을 실버수양회에 참석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수양회 기간에 남편은 구원을 받았다.

 


“그 마음의 세계를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이 링컨스쿨입니다.”
우석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특수 학급에서 수업을 받았다. 부족한 아이라서 그런지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왔다갔다하는 것만 봐도 우리 부부는 감사했다. 옆에서 보면 어려워 보이겠지만 난 참 행복했다. 소망 없이 우석이를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던 때와 달리 마음에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우석이 이야기를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우석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 우석이를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지 대안학교인 링컨하우스스쿨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우리 부부는 링컨스쿨에 보내고 싶지만 선생님들께 폐를 끼칠 것 같아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우석이와 이야기를 나누셨다.
“우석아, 너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거야?”
“예.”
“그러면 너 취직도 해서 돈을 벌어야 처자식을 먹여 살리지.”
나는 우석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 것을 상상도 못 했는데, 목사님은 그 생각을 하고 계셨다. 그날 목사님께서 나에게 “우석이를 링컨스쿨에 보내세요. 우석이는 마음만 바뀌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 마음 바꾸는 걸 가르쳐주는 곳은 링컨스쿨뿐이에요. 학교에 가서 얘는 공부 안 시켜도 좋으니 마음의 세계만 배우게 해달라고 부탁하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 부부는 우석이를 링컨스쿨에 보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자 우석이 담임선생님이 찾아와서 “우석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학교 졸업이 인정되는데, 초등학교 1,2학년 수준밖에 안 되는 우석이가 어떻게 검정고시를 봅니까?” 하며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셨다.
“예, 선생님 말씀이 다 맞아요. 하지만 우석이가 일반 학교를 졸업해서 졸업장을 받으면 뭐합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우석이가 지금 상태로는 취직해도 남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마음이 안 됩니다. 그 마음의 세계를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이 링컨스쿨입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씀도 않고 돌아가셨다. 그 뒤로도 몇 번 나를 설득하러 오셨지만 확고한 내 태도를 보고 단념하셨다.

“면접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우리 부부는 강릉 링컨스쿨에 우석이의 입학 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에서 ‘김우석 학생은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만 흘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연락한 선생님에게 울면서 사정을 했다.
“우리 우석이가 부족한 아이인 거 압니다. 그러니 공부는 안 가르쳐주셔도 됩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기술을 배우더라도 남의 밑에 들어가서 배워야 하는데, 이 아이는 그 마음이 안 됩니다. 그 마음을 배워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이곳밖에 없습니다. 우리 우석이를 받아주시지 않으면 우석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면접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연락해 주겠다고 하셨다. 며칠 후, 면접 후에 입학 여부를 결정할 테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기뻤다. ‘이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야! 하나님이 우석이에게 하실 일이 있어! 그 일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실 거야!’
면접이 있던 날,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찾아갔다. 교장 선생님이 우석이를 보고는 아주 좋아하며 입학을 허락하셨다. 학교에서는 우석이가 지적 장애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로 알았던가 보다. 그런데 우석이는 동생은 물론 우리 부부까지 챙기는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라면을 끓이는 것이나 계란후라이 정도는 척척 하고, 밥을 먹으면 설거지도 아주 깨끗하게 하고, 빨래도 실내화나 속옷은 엄마 힘들까봐 스스로 빨았다.
그렇게 우석이는 강릉 링컨스쿨에 입학했다. 우석이를 강릉에 두고 오면서, 그래도 부족한 아들인지라 울지 않으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함께 버스를 탄 학부모가 중간에 내린 후 포천까지 오는 내내 울었다. 남편은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전에 우석이에게 복음을 전해서 우석이가 죄가 없다는 말은 하지만 마음에서 구원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담임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석이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간증을 했다고 하셨다.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는 우석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했다니!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너무나 아름답게 일하셨다.
우석이는 올해 3학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검정고시를 몇 번 보았지만 한 과목도 합격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그 일에는 아예 기대를 두지 않았다. 그냥 “싫어요. 안 돼요.”만 하는 우석이의 마음이 바뀌어서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바랐다.
얼마 전, 피곤해서 잠들어 있는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남편이 울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으니, 우석이가 전화를 했는데 검정고시 모의고사에서 영어 65점, 수학 60점을 맞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기적 같은 일 앞에서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사업이 망해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지만 아이가 잘하고 있는 게 고맙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우석이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우석이가 검정고시를 본다는 연락을 받고 교회에 기도를 부탁드렸다. 교회 식구들이 다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었다. 그날 저녁에는 서울에서 연합으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차 안에서 우석이의 전화를 받았다. 검정고시 결과 과학 100점, 수학 85점…. 네 과목을 합격했다고 했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몇 번을 되물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형제 자매들이 너무 좋아하고, 나는 얼떨떨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석이가 “엄마, 저는 은혜로 된 거예요.”라고 했다. 우석이 입에서 나온 ‘은혜’라는 말. 우석이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더 감사하고 좋았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너무 좋아서, 기뻐서 눈물이 났다. 나는 우석이에게서 웃음도, 꿈도 빼앗고 장애아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께 맡기니 하나님이 아이를 구원하시고 온전케 해주신 것이다.
얼마 전, 우석이가 입던 겨울 옷을 택배로 보내왔다. 옷을 정리하고 박스를 버리려고 하는데, 바닥에 봉투가 보였다. 봉투 속을 보니 편지가 들어 있었다. 우리 부부와 동생에게 각각 쓴 편지였다. 우리는 편지를 읽고 ‘우리 우석이가 어떻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지!’ 하고 깜짝 놀랐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한다. 편지를 읽으면서 무척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걸 느끼고 자신을 탓한 우석이를 생각하니, 아이 마음이 얼마나 눌렸을까 생각되어 마음이 아파 며칠을 편지를 안고 울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에서 해방되어 행복해하는 우석이를 생각하니 아이가 정말 예쁘고 나도 행복하다. 우석이와 함께해준 선생님과 교회가 감사하고, 한편으론 해드린 게 없어서 죄송하다.

“영아, 네 얘기를 들으니 나도 소망이 생긴다.”
전에는 하나님께 무얼 해달라고,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제가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복음의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합당하게 만들어 복음의 일에 쓰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복음 전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던 나를 생각하면, 그 기도는 내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복음을 들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 내가 구원받고 울진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과 설교 테이프를 보내드렸는데,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부모님은 전화해서 나에게 화를 내셨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 예뻐하시던 아버지께서 지금은 나를 부담스러워하신다. 언니도, 동생들도 나를 만나는 걸 꺼린다. 전에는 동생들이 나를 보려고 일부러 포천에 오곤 했는데…. 어쩌다 만나면 하나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올 부활절 예배 때 박옥수 목사님께서 “올해는 가족들이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하실 때, 내 마음에도 가족들이 구원받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커져 그날부터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전, 엄마가 갑자기 눈이 안 보여서 새벽에 급하게 서울로 올라오셨다는 전화를 언니가 했다. 당황이 되어 서울로 가겠다고 말하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이 되었다. ‘엄마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그런데 늘 애썼지만 안 되었기에 하나님을 찾았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 오신 나삼수 목사님이 “이곳에 나삼수가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면 포천 교회를 복되게 하십니다” 하셨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아, 그럼 나도 나를 포천에 두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든 걸 예수님께 맡기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는 먼저 백내장 수술을 한다고 했다. 백내장 때문이면 수술 후 눈이 보일 것이고, 아니면 망막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만나 그냥 놀면서 우석이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이야기를 다 듣고 “영아, 정말 잘됐다. 정말 하나님이 있네. 이제 나는 걱정 안 한다” 하셨다. 우석이가 첫 손자라 무척 예뻐하셨기에 우석이 이야기에 마음을 여셨다. 눈이 보이지 않아 소망을 잃은 엄마에게 내가 구원받은 간증과 하나님을 이야기했다. 우석이가 변한 것이 구원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가만히 듣고 계셨다. 전에는 내가 성경 말씀을 엄마에게 들이밀었는데, 이번에는 우리에게 일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니 정말 좋았다. 엄마는 “영아, 네 얘기를 들으니 나도 소망이 생긴다. 아버지도 네가 다니는 교회를 다니라고 해야겠다” 하며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엄마에게도 하나님이 일하시겠다는 마음이 든다. 우석이를 통해서 우리 가족에게 일하신 하나님께서 올해는 우리 친정 식구들을 구원받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일하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엔 소망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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