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기뻐하시는 모양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당신이 기뻐하시는 모양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 김영삼 선교사(카메룬)
  • 승인 2013.08.16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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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예배당이 폐쇄되는 일을 계기로 카메룬 곳곳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2011년 월드캠프를 은혜롭게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더해져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종교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예배당을 폐쇄했다. 그 일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내가 카메룬에서 선교하면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정확하게 심어주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일하시지만 항상 우리 영혼에 유익하고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졌다. 그때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해 큰 역사가 일어난 것을 비롯해 하나님은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나도 카메룬에 온 후 복음을 전하긴 했지만 수도 야운데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예배당이 폐쇄되는 일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카메룬 곳곳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 시글락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시글락을 불타게 하여 다윗을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카메룬 곳곳에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나는 항상 ‘교회가 좀 더 크면 그때 다른 곳에도 교회를 세워야지’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카메룬 전체에 복음 전하길 원하셨기에, 종교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교회 문을 닫게 하셔서 내 마음의 눈을 자연스럽게 다른 도시로 향하게 하셨다. 수도 야운데에서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거나 집회를 할 수 없었기에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다른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했다. 그러는 동안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일어나 에볼루와, 응가운데레, 바멘다, 음푸 등 네 곳에서 교회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카메룬에서 살면서 감사한 것은, 내가 앞서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시며 나를 이끄시고 길을 여신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나를 인도하시며, 당신이 기뻐하시는 모양대로 교회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우리를 늘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이 삶이 참으로 복되다는 마음이 든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이렇게 일하시지만, 내가 복음을 위해 사는 동안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것을 본다. 여러 성도 가운데 두 사역자의 간증을 그들이 직접 이야기한 그대로 소개한다.


에드윈 가무의 간증

 
1975년, 어느 농부의 집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나는 축구에 재주가 있어서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를 했다. 교회에 다녔지만 신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삶에 대한 생각도 깊이 해보지 않고 욕망을 좇으며 막연하게 살았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나이트클럽에 춤을 추러 다니고…. 나는 그런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의 깊은 공허를 채울 수는 없었다.
내 삶의 첫 번째 변화는 고등교육과정 증명서 발급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찾아왔다. 시험에 통과하면 대학을 미국으로 갈 수 있었는데, 시험에 실패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사촌이 마약을 하면 힘이 날 거라며 마리화나를 건네 그걸 받아서 피우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여섯 시간 후에야 깨어난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결혼해 ‘바푸쌈’에서 살고 있는 큰누나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침례교회에 신실하게 나갔지만 마음에 확실한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 후 친구를 따라 오순절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지옥에 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내 인생을 예수님께 드리겠다고 마음먹고 목사님의 인도를 따랐다. 처음에는 신앙생활이 잘되는 것 같았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진실한 믿음을 얻고자 하는 갈증은 더욱 커졌다. 금식기도를 해도 효과가 없고, 선하게 살려고 버둥거렸지만 항상 실패였다.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 의미없는 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어떤 목사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 길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인생이라 생각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훈련을 받고 교회를 개척했지만 죄 문제와 인생의 많은 문제로 괴로웠다. 한번은 내가 푸른 초장에서 흰옷을 입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꿈을 꾸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죄는 감출 수 없었다. 교회를 버리고 도망갈까 생각도 했지만 심판날이 두려워서 도망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시내에서 성경 말씀을 전하는 일본 사람을 만났다면서 만나보기를 권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단기선교사들로, 무전전도여행 중이었다. 나는 백인들이 복음을 위해 위험도 마다 않고 사는 것을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소돔성의 심판날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신 것처럼 나에게도 천사를 보내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영접한 그들이 정말 천사였음을 알았다. 그들을 통해서 김영삼 목사님을 만났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보게 되었으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전해주지 못한 복음이었다.
구원받은 후, 내가 거짓 목사였음을 알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말씀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씀을 사흘 전하고 나니 내가 들었던 말씀이 바닥나고 말았다. 구원받기 전에 알았던 것과 섞어서 적당히 목회를 하고픈 욕망도 일어났다. 하지만, 김 목사님의 삶이 내 삶과 너무 달랐기에 두려워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려고 했지만 목사님은 나를 선교학교로 인도하셨다. 선교학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비롯해 걱정이 많았다. 목사님은 우리 아이들을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입학하게 하셨는데, 학비가 1년에 35만 원이나 되었다. 당시 목사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런 간증들이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 없는 나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여셨다.
나는 나를 믿고 살았고, 그런 삶은 나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목사님이 내 삶을 망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와 목사님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내게 있는 나쁘고 더러운 것들은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좋고 선한 마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옳고 선한 내 생각을 따라서 모든 것을 판단하며 살았다. 목사님은 내 신앙을 위해 나를 지역 교회로 보내셨다. 그런데 나는 목사님이 나를 쫓아낼 명목이 없으니까 어려운 교회에 보내서 고생하다가 도망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은혜가 나에게는 큰 수치로 와 닿은 것이다.
당연히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하루는 어느 형제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내 옳음 때문에 그 형제와 다투었다. 그리고 ‘이제 교회의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할 거야’ 하는 마음이 들어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모님이 나를 부르더니 “에드윈 형제, 내가 형제를 보면 형제 이마에 ‘에드윈 옳음, 목사님 틀림’이라고 써 있어요.” 하셨다. 그 이야기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사모님은 이야기 끝에 “형제 생각을 믿지 말아요.”라고 하셨다. 그때가 2011년 12월이었다.

 
2012년 1월 사역자 모임 때 목사님이 성경 한 구절을 읽으셨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 말씀이 마음에 아주 새롭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사는 내가 말씀에 비추어 보니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내 옳음이 무너졌다. 내 옳음의 출처가 사탄임을 알았을 때, 그 옳음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교회의 음성이 내 마음을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야운데 교회의 후원을 끊고 믿음으로 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도 야운데 교회처럼 다른 지역 교회를 후원하게 하시겠다는 믿음이 일어났다.
오늘 누가 나에게 신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신앙은 마음에 주인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불쌍한 나를 구원하시고, 사탄에게 속아 사는 나를 주님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에비나 옹자 다비드의 간증

 
종교적인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열일곱 살 때부터는 교회에 가지 않고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집에서는 착하게 살고 밖에서는 악하게 살았는데, 위선적인 삶을 끝내고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1살 때 고등학교 3학년 진급 시험에서 두 번째 떨어진 후에야 내 멋대로 살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번째 시험에 합격해 3학년이 되자 다시 전과 같은 삶을 살았다. 술, 도박, 나쁜 친구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또 떨어져 낙심이 되었다. 하루는 오후에 집에 들어오니, 한국 사람이 카메룬 사람과 함께 우리 집에 찾아와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시아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다고 알았기에 한국 사람이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집에 계속해서 찾아왔고, 어느 날 오순절교회에 25년이나 다녔던 부모님이 “우린 이제 구원받았다”고 하셨다. 마음에 충격이 되고, 한국 사람이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후 어머니를 따라서 야운데 교회에 가고,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받아 읽으면서 복음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2008년 8월 18일, 내가 구원받은 날이다. 내가 죄를 사함받았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성경을 더 알고 싶어서 매일 교회에 찾아가서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었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나는 죄악된 삶과 멀어져 갔다. 성경 말씀을 들을수록 더욱 듣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얼마 후, 김영삼 목사님이 나에게 선교학교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나는 웃기만 했다. 교회 안에 있는 선교학교는 학교 같지도 않았고, 학생들은 갈 곳이 없어서 온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교회에서 바른 것은 말씀뿐이었다. 나는 해외에서 공부해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목사님의 말씀을 거절했다. 내가 살던 음푸에서 대입 준비를 하며, 주말이면 야운데로 가서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선교학생들이 선교학교에 오라고 했지만 절대로 내가 갈 길은 아닌 것 같았다. 부모님도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셨기에 내가 선교학교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다.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고 지냈기에 침대에서 뱀과 함께 잔 것이었다. 밤에 자다가 물릴 수도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곧 병원으로 갔는데, 죽음이 두려웠다. 그날 밤, 목사님께서 집에 있던 나를 찾아오셔서, 내 삶은 이제 끝났고 복음을 위해 살라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하셨다. 선교학교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겠다는 마음이 들어 2009년 1월 18일 선교학교에 입학했다.
선교학교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정해진 일과에는 차차 적응했지만 내 미래가 확실치 않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그런 마음을 표현했는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 길을 막으면 내가 원하는 길을 결국 갈 수 없다’는 사실이 깨우쳐지면서 내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2010년에 카메룬에서 처음으로 월드캠프가 열렸고, 나는 캠프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을 담당했다. 하나님이 캠프를 도우셔서 내가 맡은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나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선교학생들과 다르고, 뭔가 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목사님은 그런 나를 ‘가인’이라고 부르셨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저주하신 것처럼, 나도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셨다.

 
그 해 10월에 나는 두알라 교회로 파송을 받았다. 목회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2주 만에 전할 말씀이 바닥나고 말았다. 그때 두알라에서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전도집회가 열렸다. 집회 기간에 나는 목사님께 “내가 아는 모든 말씀을 형제 자매들에게 이미 전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내가 젊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나를 사역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제 네 일이 끝났으니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시작하실 때’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두알라 교회에는 성도가 10명 가량 되었는데, 얼마 후 야운데 교회의 후원이 끊어졌다. 어떻게 먹고 살지, 집세나 공과금은 어떻게 낼지 두려웠다. 형제 자매들이 대부분 직장도 없었다. 형편은 어렵기만 한데, 성경을 읽는 동안 하나님께서 민수기 11장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보살피신다’는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다. 그 후 사람들이 계속해서 교회에 찾아와 나중에는 예배당이 좁아서 새 예배당을 건축해야 했다.
교회가 좋아지자 내 마음이 다시 교만해졌다. 말은 안 하지만, 내가 현지인 사역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마음이 들었다. 곧 목사님이 내 삶에 강하게 간섭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목사님이 왜 나를 계속 책망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사역자 모임 때 목사님은 내가 호세아 7장에 나오는 뒤집지 않은 전병, 에브라임과 같다고 하셨다.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호 7:8~9)
뒤집지 않아서 위는 보기 좋지만 바닥은 다 타버린 전병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목회를 잘한다고만 생각했지, 그 이면에 있는 부정한 내 모습을 몰랐다. 비로소 마음이 돌이켜졌다. 그 후 2012년 3월 24에 나는 교회 안에서 결혼하는 은혜를 입었다. 교만하고 악한 나를 받아 복음 안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신 하나님과 교회 앞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이 귀한 복음을 주시고, 복음 전하는 삶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삼킨 큰 사랑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지내며…
카메룬에서 선교학교를 하면서, 그리고 현지인 목회자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그들의 간증을 듣다 보면 자주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다 형용할 수 없는 많은 마음의 세계를 만난다. 전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새 눈이 생긴 것이다.
과일마다 독특한 맛이 있고 꽃마다 각기 다른 모양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각기 고유한 색깔과 맛이 있다. 또 마음 구석구석에 들어가 보면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마음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본다. 슬픈 마음, 기쁜 마음, 분한 마음, 억울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 나를 세우고 싶은 마음, 고통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등등. 그렇게 마음의 세계들을 만나다 보면, 사람마다 각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느낀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데, 우리를 향한 주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허물과 연약함과 죄악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이길 수 없다. 내가 받아야 할 저주보다 나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훨씬 커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다 삼켜버린다.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복이 되고 선이 됨을 자주 느낀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에 이제 주님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복뿐임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다. 그 복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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