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처럼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처럼
  • 박옥수 목사
  • 승인 2013.08.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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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가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갔던 것처럼,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과 문제를 뛰어넘고 주위 사람들의 생명을 얻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기다리시다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고 복되게 하십니다.
 
성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두 왕비
에스더 성경에는 왕이 나오고, 왕비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왕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왕비는 구원받은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에스더 성경에는 와스디와 에스더라는 두 왕비가 나오는데, 이 두 왕비는 우리에게 잘못된 교회가 가는 길과 참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온 왕비, 와스디
 
먼저 등장하는 왕비는 와스디입니다. 와스디는 누가 봐도 아름답고 집안이 좋았기에 사람들이 다 와스디를 위해 주었고, 와스디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와스디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며 마음을 한 번도 꺾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왕후가 된 후에도 와스디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하던 중에 왕비의 아름다움을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와스디에게 내시를 보내 잔치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와스디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왕궁에서 부녀들과 함께 자기 잔치를 즐겼습니다. 와스디는 자기 마음을 꺾고 왕 앞에 나아가서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고난을 겪고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은 왕비, 에스더
두 번째 왕비 에스더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포로가 되어 사촌오빠와 함께 바벨론에 잡혀온 것이었습니다. 에스더가 바벨론까지 오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발이 부르트고, 배가 고프고, 햇빛에 살갗이 그을리고, 쓰러지고. 사촌오빠가 도와주긴 했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 많은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바벨론에 와서 살다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된 것이었습니다.
왕비가 된 후에도 에스더는 와스디와 달랐습니다. 와스디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즐겼지만, 에스더는 편하게 살며 자기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만의 악한 꾀로 유대인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에스더는 사흘 동안 금식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 앞으로
그런데 문제는, 바벨론 법에는 누구라도 왕이 부르기 전에는 왕이 있는 어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일지라도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어전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때 왕이 금홀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에스더가 어전으로 갈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왕이 어전에 계셔야 하는데 만약 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면…, 사냥을 나갔다면…, 자리에 있어도 내게 금홀을 내밀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발 왕이 어전에서 나를 맞이하게 해주옵소서! 제발 왕이 나에게 금홀을 내밀게 해주옵소서! 왕의 마음이 움직여서 우리 민족을 살려주게 하시고 제 생명도 살려주게 하옵소서!’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에스더는 어전 문을 열었습니다.
어전에 들어서니 놀랍게도 왕은 전 문을 향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왕은 왕후 에스더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왕비가 여길 왜 오지?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 오면 죽는데!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는가 보다.’
왕은 얼른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에스더가 살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는 감격해서 왕 앞에 나아가 왕의 금홀 끝을 만졌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왕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주겠노라.”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에스더의 말을 듣고 왕은 급히 하만을 불러 에스더의 잔치에 갔습니다.
그 뒤로 에스더는 왕에게 유대인들이 하만 때문에 죽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유대인의 대적 하만이 죽고 유대인들은 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길로 나아가면
왕 앞에 나아가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지만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 많은 유대인들을 살렸습니다. 자기 자신의 즐거움과 평안을 위해 살았던 와스디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교회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자기도 살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 없이 부유하게 살다 보면 복음보다 자신을 위하는 생각 속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어려움도, 시험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주십니다.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맛보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을 기쁘게 받고, 환난도 기쁘게 받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갈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버릴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많은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어전으로 나아가면 왕이 어전 문을 향하고 있다가 에스더를 보고 바로 만날 수 있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릴 향하고 계시다가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은혜와 한없는 축복을 베푸십니다. 우리 생명도 지키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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