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死海)
사해(死海)
  • 관리자
  • 승인 2013.10.1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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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소금 바다
이스라엘에는 네 개의 바다가 있다. 홍해(紅海), 지중해(地中海), 갈릴리 바다, 그리고 사해(死海)다. 실제로 갈릴리나 사해는 바다가 아니라 큰 호수지만, 옛날에는 호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바다라고 불렀기 때문에 지금도 바다로 불린다고 한다.
사해는 성경에 ‘염해(鹽海)’로 기록되어 있는데, 말 그대로 ‘소금 바다’다. 영문 표기는 ‘죽은 바다(Dead Sea, 사해)’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히브리 말로 ‘소금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마다 염도의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보통 바다의 염도는 3.5%이다. 그런데, 사해는 염도가 3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사해에는 요단강 줄기를 따라 매일 600~700만 톤의 물이 흘러들어오는데, 유입된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자연 증발하는 까닭에 염도가 높은 것이다. 적게는 보통 바닷물의 7배에서 많게는 11배까지 높은 염도 때문에 사해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죽은 바다가 되어버렸다.

 

물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높은 염도 덕분에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물에 절대로 가라앉지 않고 둥둥 뜬다. 수영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뜨게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물 위에 떠서 하늘을 보며 일광욕하는 사람, 신문을 읽는 사람, 페트병을 머리에 베고 잠을 자는 사람 등 다른 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여러 재미있는 모습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해에서는 누운 채로 팔을 조금만 저어도 부력 때문에 금방 저 멀리까지 쉽게 갈 수 있다. 그런데 부영(浮泳)이라고 물에 뜨는 것만 허용되지, 보통 바닷물에서처럼 얼굴을 바닷물에 담그고 수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소금물이 눈에 들어가면 따가워서 몹시 고통스럽게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사해의 소금물이 눈에 들어가면 즉시 바다에서 나와 야외에 설치된 샤워시설에서 씻어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같은 이유로 몸에 상처가 있는 사람도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보통 해수욕장과 달리 사해의 안전요원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수영하는 사람을 호루라기를 불어 금지시키는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사해에서 사람들이 물에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해에 들어가면 수영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물에 뜨는 것처럼, 예수님의 영역에 들어가면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누구나 거룩해지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라고 한 박옥수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다른 바닷물에서처럼 물에 빠질까봐 사해에 들어와 허우적거리다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왔으면서도 자신이 잘해서 거룩해지고 온전해지려고 애쓰는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해 주변의 황량한 돌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사해 쪽으로 가다 보면, 돌산에 만들어 놓은 벽에 해발 고도를 표시해 놓은 것이 눈에 뛴다. 사해 지역은 해발 마이너스 410미터로, 육지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그리고 사해 지역은 겨울에도 항상 무더운 바람이 불 정도로 날씨가 덥다. 그래서 옛날 헤롯 왕은 이스라엘 땅의 다른 곳보다 추운 예루살렘의 겨울을 피해 이 지역에 궁전을 짓고 겨울을 보냈다.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 군대와 최후까지 싸웠던 항전지 ‘마사다(Masada) 요새’다.
 

사해는 폭이 14킬로미터, 길이가 78킬로미터 정도로, 갈릴리의 6배 가량 되는 거대한 호수다. 사해 주변으로는 성경에서 저주받은 땅으로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되는 지역이 바로 옆에 있어서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일행과 함께 사해 지역의 황량한 돌산을 지나가다가 잠시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롯의 처’라고 불리는 치마 입은 여인 모양의 돌기둥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 돌기둥에는 ‘롯의 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해 지역의 돌산에 있는 돌들은 실제로 돌이 아니라 소금이 굳어서 돌처럼 된 것이라고 옆에서 말하기에 돌멩이 하나를 주워 혀를 대고 맛을 보았다. 정말 아주 짠맛을 내는, 소금덩어리로 된 돌이었다.

흐르지 않아서 죽은 바다처럼 우리의 마음도… 
사해를 둘러보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갈릴리 바다는 요단강 물이 흘러들어오고 또 흘러나가기에 수천 년 동안 생물들이 살아 활동할 수 있었다. 사해는 그렇지 못했다. 흘러들어온 물이 다시 흘러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다가 증발해버려 생물들이 전혀 살 수 없는 죽은 바다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세계를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우리 마음도 서로 흘러야 살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마음이나 교회의 마음이 흘러들어오고 그 마음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흘러야 살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주의 마음을 담대하게 이야기하세요. 어디든지 가면 주님이 주신 마음을 이야기하세요. 그 마음을 만 번 이야기하세요.”라는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 속에 흘러들어온 주님이 주신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서로 나눌 때, 우리 마음이 서로 비쳐지면서 비로소 주님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 간증하며 살아야 한다. 연약한 마음일지라도 서로 교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자기 생각에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서 살게 해주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속여서 마음을 닫게 하고, 입을 닫게 한다. 마치 흘러들어온 요단강 물이 다 증발해버리는 사해처럼. 우리가 마음을 닫고 사는 동안 주님이 주신 마음들이 우리 안에서 다 증발해버리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더 이상 생명이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신의 생각을 믿으며 고통스럽게 산다.
사해의 물빛은 참 맑고 아름답다. 하지만 흐르지 않아서 죽은 바다가 되었다. 그 사실 앞에서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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