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원인
불행의 원인
  • 원작/톨스토이  그림/배은미
  • 승인 2013.11.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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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인연을 끊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숲 속 동물들은 그 사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들도 그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에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무 밑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는데, 까마귀와 비둘기와 사슴 그리고 뱀이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든 동물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에는 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잠에서 깨어 동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먼저 까마귀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세상에 불행이 생기는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먹을 양식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나는 배불리 먹고 나뭇가지에 앉아 ‘까악까악’ 노래를 부르면 기분 좋고 무엇을 보아도 기쁘고 즐거워.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나 이틀씩 굶을 때는 정말 힘들고 괴로워. 모든 것을 보기만 해도 귀찮고 짜증만 나더라니까.”
까마귀는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까악까악’ 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을 찾아야지 어떡하겠어. 기운 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면서도 꼭 무엇인가에 쫓기는 기분이니까 초조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게 되지. 그러니 먹이가 제대로 눈에 띄겠어? 간혹 고기조각이라도 눈에 띄면 군침이 돌아 견딜 수 없지만, 그래도 곧바로 덤벼들 수 없잖아. 나를 잡기 위해 누군가가 마련한 미끼인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런 줄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죽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뭐니 뭐니 해도 양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야.”
까마귀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동물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때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은 양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해.”
“뭐? 사랑 때문이라고?”
비둘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습니다.
“그래, 사랑 때문이야. 혼자 살아간다면 살기가 훨씬 편할지도 몰라. 우리 비둘기들은 꼭 짝을 지어 한 쌍이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서로를 챙겨주고 걱정해주고 서로를 염려해야 돼.”
“서로 사랑한다면서 왜 염려를 해?”
까마귀가 묻자 비둘기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말이지, 서로 배가 고프지 않을까, 또는 춥지나 않을까 하고 자기 짝을 생각하기 때문이야. 짝이 혼자서 어디로 날아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돌아올 때까지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어 살이 쪽쪽 빠질 지경이라고. 독수리에게 채이지나 않았을까, 사람에게 잡히지나 않았을까 하고 이리저리 짝을 찾아다니다가 자기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는 수도 있다니까. 게다가 짝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너무나 슬퍼서 몇 날 며칠이고 먹지도 않고 울면서 짝을 찾아 헤매잖아.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둘기 친구들이 죽었는지 몰라. 그러니 불행의 원인은 양식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야.”
 이번에는 똬리를 틀고 앉아 조용히 듣고 있던 뱀이 말했습니다.
“불행의 원인은 양식 때문도 아니고 사랑 때문도 아니야. 나는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만약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어? 그런데 조금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화가 나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단 말이야. 그래서 누구에게 화풀이를 할 데가 없을까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살 기어다니며 콱 물어줄 상대를 찾게 되지. 이렇게 화풀이를 하려고 이리저리 쏘다니다 보면, 오히려 내 자신이 사람이나 들짐승에게 잡혀 죽게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이 세상의 불행의 원인은 남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마음 때문이야.”
 뱀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사슴이 나섰습니다.
“이 세상의 불행의 원인이 미워하는 마음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양식 때문이라는 말에도 일리는 있어.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두려워하는 마음, 즉 공포심 때문이야. 겁낼 일만 없다면 무슨 일이든 불행할 것이 없어.”
그러자 까마귀가 한 마디했습니다.
“넌 뭐가 그리 두렵다는 거니?”
비둘기도 맞장구를 치며 거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빠른 다리도 있고 우람한 뿔도 있는데…….”
 
사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계속했습니다.
“물론 우리 사슴들은 걸음도 빠르고 힘도 있으니까 웬만한 짐승 따위는 뿔로 받아버리면 되고, 큰 짐승을 만났을 땐 도망치면 돼. 그런데도 왜 그렇게 무서운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 숲 속에서 나뭇가지가 스치거나 부러지는 소리만 나도 우리는 깜짝 놀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무조건 도망치게 되지. 토끼가 지나가는 소리인지 새가 홰를 치는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하하하하!”
모두들 사슴이 깜짝 놀라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생각하며 한바탕 웃어댔습니다. 사슴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웃지 마! 나는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오히려 사나운 짐승이나 사냥개가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어. 그래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마음 편할 날이 없어. 그러니 무서워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 아니겠니?”
 그때 동물들의 말을 잠자코 듣던 사람이 일어나 헛기침을 하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불행의 원인은 식량도, 사랑도, 저주도, 두려워하는 마음도 아니라네. 이 세상의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은 다름 아닌 우리 몸 때문이야.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또 두려워하는 마음도 모두 우리의 몸뚱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다시 말해서, 자기 몸을 위하고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 즉 자기 몸에 얽매이고 매달리는 욕심에서 모든 근심과 두려움과 미움이 생기는 거지. 내가 곧 나의 몸이라는 생각에서 떠나는 일, 그것이 바로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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