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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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13.12.1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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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기독교를 믿는 아랍인이 많이 사는 도시, 나사렛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30살이 되기까지 나사렛에서 사셨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으며, 지금은 갈릴리 호수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는 나사렛에서 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나사렛은 가파른 언덕이 계속되다가 밑으로 움푹 꺼진 곳에 형성된 도시처럼 보인다. 그래서 도시가 한쪽 면을 제외하고는 꽉 막혀 있는 듯한 모습이다.
현재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아랍인 도시로, 인구의 60% 이상이 아랍계(系) 천주교인이다. 그래서 동네마다 수도원이나 성당 건물이 눈에 띄고, 길거리에는 히잡을 쓴 무슬림보다 자유로운 복장에 십자가 목걸이 등을 하고 다니는 아랍 사람이 많이 보인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물건들과 함께 나사렛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기독교 기념품이나 특산품 등을 파는데, 시장 앞 벽보에는 아랍계 기독교인들을 비방하는 경고장 같은 것들이 아랍 말로 크게 적혀 있다. 아랍인들의 도시지만 기독교인이 회교도보다 많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수태고지(受胎告知) 교회
나사렛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예수님의 고향이다. 보통 기독교 순례자들은 나사렛에서 가이드를 따라 ‘수태고지 교회’라고 불리는 카톨릭 교회를 방문하는데, 이 교회 건물 안에는 고대의 집터가 남아 있다. 동굴을 파서 사람이 주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동굴식 집이다. 카톨릭에서 그곳을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음성을 들은 집’이라고 여겨 성당을 지은 것이다. 콘스탄틴 황제 때 건축된 후 정복자들에 의해 네 차례나 크게 파괴되었고 이후 복구되었으며, 196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수태고지 교회는 카톨릭에서 추측해서 기념하는 것일 뿐,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큰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있었던 지진과 성소 휘장이 찢어진 사건 등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 후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비방과 추적이 시작되었다. 나사렛 출신이거나 나사렛이란 단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기에,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애써 예수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거나 자신들이 예수님과 연관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애썼다고 유대의 학자들은 말한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과 관련된 것들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의 경우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공회원(지금의 국회의원)으로 총독 관저에서 빌라도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 만큼 유력자였기에 보존이 가능했겠지만, 예수님의 가족과 관련된 곳들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나쯔리 - 나사렛 사람
성경에서 나사렛에 대한 언급은 구약 성경에는 없고,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함께 등장한다.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던 요셉과 마리아가 그곳에서 예수님을 낳은 후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온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성경 난하주를 보면 이 말씀은 이사야 11장 1절과 연관이 있다고 되어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이 구절에 나오는 ‘가지’가 히브리 음으로 ‘네쩨르(연한 가지)’로, 거기서 ‘나쯔리(나사렛 사람)’라는 말이 나왔다고 학자들은 말하며, 그와 다르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든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인을 ‘노쯔리’라고 부르는데, ‘나쯔리’에서 나온 말임은 확실하다. 통상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노쯔리’라고 하면 카톨릭 교도로 인식된다.

 

볼품없는 나사렛과 예수님
외진 시골 마을이었던 나사렛은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하찮게 여겼던 곳이다.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이 분명했기에,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고 말했다. 나다나엘의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나사렛을 바라보던 시각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볼품없는 시골 마을이었던 나사렛과 이사야 53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주 잘 어울린다.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을 연한 순같이 자라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예수님은 멸시를 받았고,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했다. 영화나 사진이나 그림 속에 나오는 잘생기고 화려한 예수님의 모습과 이사야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은 아주 다른 것이다.
나사렛을 찾은 순례객들이 “별 것 없네. 실망스럽다.” 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나사렛은 도시의 구조상 갑갑함을 많이 느끼게 하는데, 옛날에는 어떠했겠는가?

나사렛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사셨다. 당시 목수나 대장장이나 석수장이 같은 일은 가업이었던 것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목수인 요셉의 일을 도왔을 것이다. 당시 목수들은 거친 천으로 만든 값싼 옷을 입고 일했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지내셨을 것이다.
나사렛에는 ‘나사렛 빌리지’라고 예수님 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는데,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어떻게 사셨을까? 누가복음 2장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 한 번 등장한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당시 나사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무시와 천대를 받으셨다는 것이다(막 6:4).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나 그 전이나 동일했다. 목수 일을 도우셨던 어린 시절에도 예수님은 구원자였다. 아기 때는 신체기능과 언어에 한계가 있었다 해도, 어린 시절의 예수님은 성전에서 성경 교사들과 앉아 말씀을 논했을 만큼 영적으로 충만하셨다(눅 2:40, 46~47, 52).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사시는 동안에도 구원자였기에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면 그를 능히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이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겉모습은 볼 줄 알았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영생의 말씀이 가득한 것은 볼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을 듣고 보고도 그러했으니 그 이전에는 오죽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묻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다(요 11:55~57).
 

옛날 나사렛 사람들처럼 오늘날도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셨기에 예수님은 유대 종교인들에게 이단시되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화려하고 강한 모습의 구원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자가 아닌,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 주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능력의 지도자를 기다렸다. 오늘날도 그 시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교회의 외형은 볼 줄 알지만, 거듭난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 속에 흐르는 신령한 것은 볼 눈이 없다.
나사렛을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들 마음에 자신들이 예수님이 사셨던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 옛날 나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전하시고자 했던 복음과는 거리가 멀고 관심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거만하게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보다 나를 낫게 여기지는 않는지? 예수님을 무시하고 내 생각을 믿고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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