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사형수
어느 젊은 사형수
  • 글|김성훈 객원기자 그림|이희영
  • 승인 2014.01.22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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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러시아의 한 광장에 마련된 사형장에 젊은 사형수가 서 있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집행관이 소리쳤습니다.
“사형 전에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을 주겠다.”
‘아, 이제 내 인생이 5분 후면 끝나는구나! 남은 5분 동안 무엇을 하지?’
사형수는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 부디 먼저 떠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 때문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그러는 사이 2분이 지났습니다.
‘나는 그동안 왜 그리 시간을 헛되게 보냈을까? 다시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집행관은 1분이 남았음을 알렸습니다. 사형수는 두려움에 떨며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아, 매서운 칼바람도 이제는 느낄 수 없겠구나! 나의 맨발을 타고 올라오는 땅의 냉기도 더 이상 못 느끼게 되다니! 모든 것이 아쉽고, 아쉽다. 흑흑흑!’
사형수는 처음으로 느끼는 세상의 소중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 이제 사형을 집행한다.”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탄알을 장전하는 소리에
사형수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멈추시오! 멈추시오!”
그때 한 병사가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사형수를 살려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명령이오!”
사형집행이 멈추고 사형수는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사형수가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한 수용소에서 4년 동안 지냈는데, 사형집행 때 주어졌던 5분의 시간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혹한의 날씨에 무거운 족쇄를 차고도 창작 활동에 매달렸습니다. 특히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는 유배생활이라 종이 대신 머릿속에
소설을 써놓고 기억했습니다. 
 
유배 생활을 마치고 나와서도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각오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1881년 눈을 감을 때까지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등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
받는 작품이 탄생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5분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5분,
한 시간, 하루, 한 달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보다 가치 있고 아름답게 바뀌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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