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사람으로 사는 이탈리아 사람들
로마 사람으로 사는 이탈리아 사람들
  • 전형식 (이탈리아 선교사)
  • 승인 2014.01.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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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 살면서…

 
“다 알아요.” “내가 더 잘 알아요.” 이탈리아에서 8년째 살면서 이곳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탈리아 하면 먼저 로마제국의 유적이 떠오른다. 로마에는 로마제국의 위용을 짐작케 할 만한 많은 유적들이 있다. 콜로세움, 포로 로마노, 대전차경기장, 판테온 신전, 공중목욕탕, 폼페이 등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건축과 패션의 대표적 국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 쯤 와보고 싶어하는 나라다. 하지만 명성이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로마 사람들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대단하다. 이들은 자신을 절대로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로마 사람(Romano)’이라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유럽과 인근 대륙의 국가들을 다스렸던 로마제국.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에 형성된
‘로마인은 우월하다’는 사상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후손들의 머릿속에도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뿌리 깊게 말이다.
로마제국 당시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로마 사람들은 아직도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들은 교과서에 ‘세계의 수도 로마’라는 제목 아래 실린 로마에 대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 로마제국은 무너졌고 그 유적들만 남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생각에서는 아직도 로마제국 때의 자긍심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받아들이는 자세가 많이 부족한 것을 본다.
현재 이탈리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여전히 불안정한 경제, 국민의 신뢰를 잃고 흔들리고 있는 정치, 교육 문제 등…. 고등학교에 다니는 나의 두 아들은 지금 2주째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학교에 갔다가 데모에 참석하든지, 아니면 아예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다. 밖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고, 지각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이런 부분을 염려하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다. 현재는 앙상하게 껍데기만 남아 개선하고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명성을 등에 업고 대(大) 로마제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것처럼 생각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이탈리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런 부분들이 요즘은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춰 보게 한다. 우리에게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주님이 우리를 무너뜨리셨는데, 나는 어떤 부분에 은혜를 입었거나 어떤 부분이 괜찮다는 마음이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를 믿고 교만하게 살 때가 많았던 것이다. 실제의 내 모습은 나에게 기대를 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나의 진실이 무너지고 기쁨과 행복이 무너져서 나는 주님의 은혜 외에는 길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은혜를 입으면 생각 속에서 그것으로 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속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주 나를 버리고 비우게 하시며 계속해서 듣고 배울 수 있는 길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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