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 두 개
찹쌀떡 두 개
  • 최영재(동화작가, 전 서울신월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14.04.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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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데 복도 쪽 유리창 밖에서 웬 남자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급한 일이면 노크를 하겠지 싶어 모른 척 했는데, 5분이 지나도록 계속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수업이 방해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해 다소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누굴 찾는지 물었다.
“선생님, 저 모르세요? 히히히. 저 조영만이에요. 히히히.”
그동안 가르친 학생이 한 반에 평균 60명씩만 잡아도(1970년 초에는 우리 반 출석번호가 100번이 넘었다) 수십 년을 가르쳤으니 천여 명도 훌쩍 넘는데, 그 중에서 조영만이란 이름을 얼른 떠올려 내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폐품창고 신발특공대 조영만 모르세요? 히히히.”
내 눈이 둥그레졌다.
“아하, 너 그래 영만이로구나! 그 땅딸보가 이렇게 컸어?”
“저 이 학교에 화재경보 시설장치 안전점검하려고 왔어요. 일
다 하고 다시 뵈러 올게요.”
 
영만이는 내 나이 서른 직전에 가르친 아이였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난방시설이 잘 돼 있어 난로를 따로 피우는 학교가 없겠지만, 그 당시에는 겨울 난방용으로 조개탄을 땠는데, 불 피우기가 쉽지 않아 고생을 하곤 했다. 영만이와 나는 당시 학교에서 폐품으로 모은 헌 고무신을 한 켤레씩을 몰래 꺼내 난롯불을 피우는데 사용했다.
그래서 그 해 겨울을 참 따뜻하게 지냈다. 그래서 당시 영만이의 별명이 폐품창고 신발특공대 대장이었던 것이다.
영만이는 언제나 말끝마다 헤프다 싶을 만큼 웃음을 꼭 매달아서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영만이를 좋아했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다가 마음이 넓고 깊어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서도 늘 히히히였다.
영만이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의 도시락을 난로에 올려놓고 고루 데워주는 일까지 했다. 면장갑을 끼고 수많은 도시락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아주 뜨거워진 것을 따로 쌓아 두는 모습이 빵 굽는 사람의 손길처럼 날렵하고 진지해 보였다. 그런데 며칠 동안 눈여겨보니 막상 점심시간이 되면 영만이는 나가 놀다가 5교시 시작종이 울려야 들어오곤 했다. 매일 점심을 굶는 것이다.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싸 오던 아이가 어쩐 일인지 궁금해 수업이 끝난 후 영만이를 불렀다. 저는 굶으면서 왜 남의 도시락을 데워 주는 건지 기특하기에 앞서 울화통이 터져 앞으로 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영만이를 앉혀 놓고 야단을 치면서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영만이가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선생님, 도시락이 뜨거워지면서 나오는 냄새를 오래 맡고 수돗물을 마시면 배가 덜 고파요.”
그 녀석이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악착같이 눈 안에 가두어두었던 눈물을 결국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아프신데 요즘 병환이 더욱 심해져서 약값이 엄청나게 들어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내일부터 아이들 모르게 찹쌀떡 두 개씩 네 가방에 넣어 놓을 테니 꼭 먹도록 해.”
“…….”
영만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게 고작 찹쌀떡 두 개라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 후로 영만이가 점심시간에 찹쌀떡을 밖에 나가서 먹고 입술 언저리에 흰 가루를 묻히고 들어올 때마다 내 마음은 늘 아팠다.
그러다가 졸업식이 다가왔다. 답사를 읽는 동안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여자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훌쩍이고, 남자 녀석들은 울기는커녕 오히려 우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남자 아이들 틈에서 유난히 어깨를 들썩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조영만이었다. 영만이는 가정 형편 때문에 그 많은 졸업생 중에 유일하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아이였다. 중학교에 못가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싶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는 영만이를 따로 불러 손을 오래오래 잡아 주었다.
그 코흘리개 영만이가 일급 엔지니어들이 입는 세련된 감색 점퍼 차림에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하여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반 아이들을 교문까지 바래다주고 교실로 돌아오니 영만이가 교실에 와 있었다. 나는 반가움과 기특함과 고마움이 뒤범벅이 되어 다시 영만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큰 빌딩이나 학교, 회사 같은 데로 작업을 많이 나가는데, 어느 학교에 가든지 교무실에 가서 칠판에 쓰인 선생님들 성함을 먼저 봐요. 아까 교무실에서 선생님 성함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잖니?”
“그래서 여쭈어 보았죠.”
“뭐라고 물었니?

“이 선생님께서 아직도 키가 작으시냐고요. 히히히. 그리고 공을 잘 차시느냐고 그랬죠. 히히히. 맞는다고 하시기에 기뻐서 일도 하기 전에 달려왔던 거예요.”
“그래, 고맙구나. 이렇게 훌륭한 기술자가 되었으니 참 기쁘다.
오랜만이니 우리 나가서 점심 식사나 같이 하자.”

“죄송합니다. 여기서 일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곳에 가 봐야 해서요. 다음에 다시 꼭 뵙겠습니다. 혹시 저희 회사 쪽으로 오실 일 있으면 꼭 들러 주세요. 학교 졸업하고 계속 이 회사에서 일했어요.”
영만이가 준 회사 명함을 읽으려는데, “선생님, 다음에 뵐 때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하며 내게 종이에 싼 뭔가를 건네주었다. 포장지를 벗기려 하는 순간, 영만이는 벌떡 일어나 “선생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뛰쳐나갔다.
“영만아!”
큰소리로 불렀지만 키가 큰 영만이는 복도 층계를 성큼성큼 뛰어내려가 어느 새 보이지 않았다.
 
나는 교실로 돌아와 종이에 싼 물건을 얼른 풀어 보았다. 아! 거기에는 주먹만 한 찹쌀떡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급히 창문을 열고, 멀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팔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영만이를 보았다. 영만아! 큰 소리로 외쳐 부르고 싶었지만 갑자기 목이 멨다. 영만이는 타고 온 승용차에 올라 사라졌고, 나는 망연히 책상 위에 놓인 찹쌀떡을 바라보았다. 내 눈꺼풀이 자꾸만 까불까불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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