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알제리 병사
돌아온 알제리 병사
  • 알퐁스 도데
  • 승인 2014.05.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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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대장장이 로리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보통 때 같으면 대장간 아궁이의 불이 꺼지고 지평선 밑으로 태양이 지면, 문 앞 의자에 걸터앉아 온종일 열심히 일한 뒤에 밀려오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맛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저녁 준비가 다 되도록 식탁에 앉기도 싫은지 아궁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행동이 걱정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혹시 군대에 간 큰애한테서 나쁜 소식이라도 온 걸까? 아니면 병이라도 난 게 아닐까?’
그러나 로리의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린 세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도록 주의만 줄 뿐이었다. 세 아이는 아버지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식탁에 둘러 앉아 무 샐러드를 먹으며 마냥 즐거워하였다. 마침내 대장장이 로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에잇, 쓰레기 같은 놈들!”
“여보, 누구 말이에요?”
“오늘 아침부터 프랑스 군복을 입은 놈들이 프로이센 병사들과 어울려 마을 거리를 어슬렁거리더라고. 요즘 들어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하다 말고 와서 프로이센으로 넘어가는 놈들이 많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아내는 조국을 버린 어린 병사들을 감싸 주려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이 복무해야 하는 아프리카 알제리는 너무 먼 곳이잖아요. 그렇게 먼 곳에서 군 생활을 하려면 얼마나 두렵고 고향이 그립겠어요?
“그만하오! 당신은 언제까지 녀석들을 어린애 취급할 거요? 그 나이가 되어서도 버티지 못하고 나라를 버리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고! 아주 비겁한 놈들이지! 우리 크리스티앙이 알제리에서 도망나오는 수치스러운 짓을 한다면 프랑스 군대에서 7년 근무했던 내가 직접 베어 버리고 말겠어!”
대장장이 로리는 화난 표정으로 벽에 걸려 있는 군도를 가리켰다. 칼 위에는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그려 보낸 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로리는 우직한 군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들의 초상화를 보자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괜한 걱정을 하고 있군. 우리 아들이 군대에서 도망쳐 나와 프로이센으로 넘어갈 리 없는데 말이야.’
 
로리는 곧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스트라스부르 시내로 나갔다.
로리의 아내는 집에 남아 세 아이를 재운 뒤, 뜰이 내다보이는 창문 앞에 앉아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녀는 가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남편의 말이 맞아. 그들은 비겁한 변절자야. 그렇더라도 그 애들의 어머니는 아들을 곁에 둘 수 있어서 행복할 거야.’
그녀는 아들이 군에 입대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바로 작년 이맘때쯤 아들은 뜰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물을 긷던 우물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답던 머리카락은 군대에 들어갈 때 잘랐다.
갑자기 로리의 아내는 몸을 떨었다. 뜰로 통하는 구석의 작은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벽을 따라 슬그머니 미끄러져 들어왔다.
“어머니!”
지저분한 군복 차림의 크리스티앙이 머뭇거리며 서 있는 게 아닌가! 사실은, 크리스티앙도 동료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한 시간 전부터 집 주위를 서성이며 아버지가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호되게 야단을 치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아들을 끌어안고 싶었다.
 
크리스티앙은 집에 돌아온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고향과 대장간이 너무나 그리웠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싫었고, 게다가 알제리 군대의 규칙이 너무 엄격했으며, 알자스 사투리를 쓴다고 동료들이 ‘프로이센 사람’이라고 놀린다는 등. 어머니는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믿었다. 아니, 아들의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린 동생들이 잠에서 깨어 큰형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어머니는 크리스티앙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려 했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더니 기다란 그림자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대장장이 로리가 들어온 것이다. 어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크리스티앙, 아버지가 오셨나 보다! 빨리 숨어라! 이유는 나중에 얘기하마. 어서!”
어머니는 아들을 커다란 난로 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바느질감을 잡았다. 로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에 놓인 알제리 군대의 테 없는 모자를 발견했다. 아내의 창백한 얼굴과 당황한 몸짓……. 대장장이 로리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크리스티앙이 돌아왔군.”
로리의 목소리에는 화가 잔뜩 배어 있었다. 로리는 순식간에 벽에 걸린 긴 칼을 빼어 들고 아들이 웅크리고 있는 난로 쪽으로 달려갔다. 새파랗게 질린 아들은 쓰러지지 않으려는 듯 벽에 몸을 기댔다. 로리의 아내가 아들을 감싸안고 남편을 말렸다.
“로리! 이러지 마요! 대장간에 일손이 필요하니 돌아오라고 제가 편지를 썼어요!”
로리의 아내는 아들의 팔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캄캄한 방 안에서 분노와 눈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의 목소리에 아이들도 겁에 질려 울었다. 로리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불러서 저 아이가 왔단 말이오? 그렇다면 좋소. 오늘은 일단 자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합시다.”
크리스티앙은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 눈을 뜬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동생들 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 너머로 태양이 높이 떠있었고 뒷마당 대장간에서 망치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어머니는 베개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밤새도록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장이 로리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이 틀 때까지 집 안을 돌아다니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거운 표정으로 아들의 방으로 들어왔다.
“일어나라! 어서!”
아들은 겸연쩍은 듯 알제리 군복을 집으려고 했다.
“아니, 그 옷 말고!”
남편의 말에 아내가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달리 입을 옷이 없는데요.”
“내 옷을 줘! 난 이제 필요 없으니까.”
아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 로리는 군복과 작은 윗옷, 큼지막한 붉은 바지를 차곡차곡 갰다. 그리고 군대의 여행 허가증이 달린 양철 물통을 목에 걸고 말했다.
“이제 내려가자.”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대장간으로 내려갔다.
풀무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뜨거운 대장간에서는 견습생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은 알제리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대장간을 보자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뜨거운 통로와 검은 석탄가루 속에서, 여기저기로 불꽃이 튀는 아궁이 앞에서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그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차가운 표정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기 있는 철판과 연장들은 모두 네 것이다. 대장간도 이 집도 다 네 것이야. 너는 그리운 이 대장간과 집을 프랑스 군인의 명예와
바꿨으니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 나는 떠나겠다. 네가 조국을 위해
5년 간 복무할 의무를 저버렸으니 내가 대신 의무를 다하고 오마.”
“여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아버지!”
 
키다리 대장장이 로리는 말리는 아내와 아들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며칠 뒤, 아프리카 알제리 제3부대에 55세쯤 되어 보이는 늙은 의용병이 나타났다.
도움말 
이 작품은 1870년 대, 프랑스와 지금의 독일인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대장장이 로리는 조국을 위해 군복무를 다해야한다는 원칙을 가진 애국자이자, 연약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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