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마음 희생정신
가장 아름다운 마음 희생정신
  • 키즈마인드
  • 승인 2014.06.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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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현충일, 6ㆍ25, 제2연평해전 등의 기념식이 열리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한 달을 추모의 달로 정해 기념하기에는 그분들의 희생이 너무나 크고 값지지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 중에 가장 값지고 고귀한 것이 희생정신이라고 해요. 6월에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1. 책임감에서 비롯된 희생정신
희생정신이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나 재산, 명예나 이익을 바치는 마음을 말해요. 우리는 오늘도 크고 작은 희생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가까이에는 자식들을 향한 부모님의 희생이 있고,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애써주시는 분들의 희생이 있어요. 또한 역사적으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위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
남을 위해 내 것을 내놓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희생이라고 할 수 없지요. 희생은 강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답니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 책임을 다한 분들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우리는 고귀한 희생자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세월호 매점에서 일하던 박지영 승무원은 배가 기울어 물이 차오르자 학생들을 윗층으로 대피시키고 구명조끼를 나누어 주었어요. 먼저 위로 대피한 학생들이 “언니, 빨리 올라오세요, 위험해요!”라고 소리치자, “선원들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서 나갈게.”라고 했지요. 결국 박지영 승무원은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채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또한 자신은 먼저 구조 받을 수 있었지만,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배로 들어간 선생님들도 계셨어요.
조국을 지키러 온 재일교포 청년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총성이 울려 퍼졌어요.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와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6.25로 인해 남한과 북한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군인들도 많았어요. 그 중 일본에서 공부하던 재일교포학생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당시 일본에 이민을 가 있던 한국인 2세들 중 642명의 청년들이 조국에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모님 나라의 자유를 지키겠노라며 난생처음 한국 땅을 밟았어요. 그들은 3일간 군사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쟁터로 투입되었어요. 전쟁술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투에 투입되었으니 제대로 싸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특히나 한국어를 잘 몰라서 퇴각하라는 명령조차 알아듣지 못해 처참하게 죽어갔어요. 그들 대부분은 일본에서 명문대에 다니며 부유한 생활을 하던 청년들이었어요. 그냥 일본에 남아 있었다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국민의 사명을 다하고 생을 마친 것이지요.
 
부대원을 살리기 위해 얼음물 속으로
1812년, 나폴레옹은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에 쳐들어갔어요. 모스크바까지 진격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카자크 족의 기습공격을 받아 후퇴를 해야 했어요. 그런데 카자크 족은 프랑스 군대가 후퇴할 길목을 막고 다리도 미리 폭파해 놓은 상태였어요. 매서운 추위 속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어서 강물을 헤엄쳐 건널 수는 없는 상황이었어요. 나폴레옹은 강물이 얕은 곳을 골라 병사들을 들여보내어 부서진 교각을 붙들고 있게 했어요. 나폴레옹과 병사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고, 나폴레옹은 교각을 붙잡고 있던 병사들에게 올라오라고 명령했어요. 그런데 다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모두 차디찬 물속에서 다리를 붙든 채 얼어 죽은 것이었어요.
 
2. 사랑에서 우러나온 희생
꼭 특별한 임무를 맡은 군인이나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아름다운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준 아버지의 이야기,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 속에 뛰어든 어린 학생의 이야기 등. 바로 사랑에서 우러나온 희생입니다.
친구를 구하러 차디찬 물속으로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한 정차웅 학생을 기억하지요? 점점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지만 친구에게 기꺼이 구명조끼를 양보하고는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어요. 친구를 구해야할 책임이 있어서라 아니라 친구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희생정신이라 더욱 눈물겨워요.    
스스로 누명을 쓰고 죽은 영국군 포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작전상 중요한 지점인 태국의 콰이 강에 다리를 건설했어요. 워낙 큰 공사라 수많은 연합군 포로들을 이용해 다리를 세웠지요. 그런데 하루는 다리 공사에 사용하는 중요한 공구가 없어진 거예요. 일본군은 포로들이 공사를 늦추려고 공구를 숨겼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포로들을 다 모으고 그 주변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는, 공구를 가져오지 않으면 전부 쏴 죽이겠다고 위협했어요. 포로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어요. 빨리 범인이 나오지 않으면 다 죽임을 당하고 말 상황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지요. 그때 한 영국군이 나와 자기가 공구를 버렸다고 했어요. 일본군들은 그 영국군을 향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고, 영국군은 처참하게 죽었어요. 다른 포로들은 다시 풀려나 건설작업을 계속 했지요. 그런데 며칠 뒤, 그 공구가 일본군의 공구창고에서 발견되었어요. 사실은 그 영국군이 버린 것도 아니었고 다른 누가 숨긴 것이 아니라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이었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 느끼는 행복
 
이렇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행동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은 피해를 입거나 죽어가면서도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여겼어요. 
쉘 실버스타인의 소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어본 적 있나요? 소설에 나오는 나무는 한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어요. 소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잎사귀를 주고 나뭇가지를 내어주고 그늘도 주었어요. 어른이 된 소년이 돈을 원하자 열매를 주어 돈을 벌게 해주었고, 보금자리를 원하자 가지를 베어가게 했어요. 세월이 흘러 나이든 소년이 쉴 곳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는 다 잘리고 겨우 남은 자신의 밑동을 주며 앉아 쉬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무는 소년 때문에 잃은 것이 많고 점점 죽어가는데도 행복해하는 거예요. 나무는 소년을 행복하게 하면서 더 큰 행복을 느꼈던 것이지요.
 
3.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희생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어요. 그분들은 대부분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해서, 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감당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와 달리 너무나도 악한 사람들을 위해서, 또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 있어요. 바로 예수님이랍니다.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셨어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잘 믿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세리와 같은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38년 된 병자와 같은 사람,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위해 고통당하신 것이랍니다. 성경 로마서 5장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저 사람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으니 은혜를 입을 만해’ ‘저 사람은 착하게 살았으니까 천국 갈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예수님이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을 나타내셨고,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놓으셨다고 했어요. 이보다 더 큰 사랑과 희생이 있을까요?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시려고
또 마태복음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하셨어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영원히 복되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 당신의 목숨을 우리 대신 죄의 값으로 내어준 것이랍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다 내어주심으로써,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어요. 우리의 죄는 예수님이 다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의는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복되게 살게 해 주셨어요.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가 되어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이 희생하여 이루신 구원의 소식과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시지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도 행복해했던 나무처럼,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흘려 받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복을 맛보고 귀한 열매를 얻을 수 있어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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