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하나로! 월드컵 이야기
지구촌을 하나로! 월드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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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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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는 큰 스포츠대전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과 월드컵축구대회입니다. 올해는 브라질에서 20번째 대회가 열려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80여 년 동안 수많은 감동과 기록을 남기며 갈수록 사랑받고 있는 월드컵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월드컵의 역사와 의의
공 하나에 웃기도 하고 춤추기도 하는 월드컵. 전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 잡은
월드컵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월드컵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봅니다.
글|박세준 문경FC 축구교실 코치, 안동대학교 체육학과 3학년

 월드컵의 시작
월드컵은 올림픽과 2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4년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축구라는 한 종목만으로 한 달 남짓 각축을 벌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운동경기입니다. 선수들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출전이 가능한데 반드시 자신의 국적에 따라 출전해야 합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축구는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유럽 및 남미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에 들어서서 국제경기가 많아지자, 1900년에 열린 제2회 파리올림픽 때부터 축구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그 결과 각국의 축구협회를 이끌 수 있는 대표 조직의 필요를 느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7개 나라들이 모여 1904년에 국제축구연맹(FIFA)을 만들었습니다. FIFA는 세계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마다 축구 규칙이 조금씩 다르고 교통·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때여서 세계 여러 나라가 한자리에 모여 경기를 펼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뒤 1906년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도 FIFA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1908년 런던올림픽부터 축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13개 나라가 참가한 제1회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세 번째 대회는 프랑스에서 열렸는데, 당시 대회장인 줄 리메가 우승컵을 주어 ‘줄리메컵 세계선수권대회’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2년 동안 대회를 하지 못하다가 1950년에 브라질에서 다시 대회를 시작해 지금과 같이 큰 대회로 발전한 것입니다.
매회 최고의 대회로 자라다
올해까지 80여 년 동안 20번의 대회가 열리는 동안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황당한 명경기들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월드컵은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기 위해 본선대회 3년 전부터 시작되는 예선을 진행하여 평소 축구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또한 서로 자기 나라에서 대회를 치르기 위해 몇 년씩 준비를 하고 열띤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월드컵을 개최할 경우 전 세계에 자기 나라를 알릴 수 있고 관광수입, 중계수입 등으로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승부에 과열된 나머지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월드컵! 지구촌을 하나로
회를 거듭할수록 월드컵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월드컵이 인종과 지역, 문화와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는 월드컵으로 인해 5년간 이어지던 내전이 끝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들도 월드컵을 보기 위해 전쟁을 중단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월드컵이 전 세계에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름다운 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월드컵의 인상적인 기록들
줄리메컵은 어디에?
 
제1회부터 9회 월드컵까지 우승팀에게 황금 트로피를 수여했어요. 월드컵의 창시자인 줄 리메의 이름을 따서 만든 줄리메컵은 우승국이 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대회 때 새 우승국에게 넘겨주었어요. 만약 한 국가가 3회 이상 우승을 하면 트로피를 영구 소장할 수 있게 했는데, 브라질이 월드컵 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우승컵을 차지했어요. 그런데 1983년에 도난을 당하여 아직까지 행방불명이랍니다.
가린샤 클럽 회원들을 조심해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뒤 곧바로 퇴장당한 선수들을 ‘가린샤 클럽 회원’이라고 해요.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가린샤 선수가 칠레와의 4강전에서 두 골을 넣은 뒤 종료직전 상대 수비수를 걷어차 퇴장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월드컵 무대에서 세 번째 가린샤 클럽 회원은 대한민국의 하석주 선수예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하석주 선수는 프리킥으로 득점한 뒤 거친 태클로 퇴장당했는데, 36년 만에 가린샤 회원이 나왔다며 화제를 불러 모았어요. 그 외에도 2002년에는 브라질의 호나우지뉴 선수가 골을 넣은 후 상대수비수의 발목을 밟아 퇴장을 당했고, 2006년 프랑스의 지단 선수가 골을 넣은 뒤 상대 선수를 박치기한 바람에 퇴장을 당했어요. 아무리 골을 넣어 기분이 좋다고 해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죠?
우리가 만든 공으로 찰 거야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서로 자기 나라에서 만든 공을 사용하겠다고 논쟁을 벌였어요. 지금처럼 공인구(주최단체에서 사용을 인정한 공식 공)가 없던 시절이라 벌어진 일이었지요. 결국 경기의 심판을 맡은 벨기에의 란제누스 주심은 동전던지기를 하여 전반에는 아르헨티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 공을 사용했어요. 결국 우루과이가 4대 2로 우승했어요. 그 후 1970년 멕시코월드컵 때부터 공인구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모든 논쟁이 끝났다고 해요.
 
맨발로 뛰게 해줘요
그동안 아시아에서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는 대한민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으로, 대부분은 월드컵 문턱을 넘지 못했지요. 그런데 인도는 1950년 브라질월드컵 진출 자격을 획득하고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어요. 이유는 맨발로는 선수가 경기에 뛸 수 없다는 규칙 때문이었답니다. 그동안 인도 선수들은 축구화를 신지 않고 맨발로 연습을 했기에, 본선에서도 맨발로 뛰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FIFA는 규정을 어길 수 없다고 거절했고 결국 인도는 출전을 포기했지요. 그 뒤로 64년 동안 인도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답니다.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역사상 가장 멋진 페어플레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대한민국과 터키의 3, 4위 결정전이 펼쳐졌어요. 원래 월드컵 3, 4위전은 큰 의미가 없어 주력선수를 빼고 형식상 경기를 하는 분위기이기에, 아예 경기를 없애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도나 흥미가 떨어지는 경기예요. 그런데 바로 그날 감동적이고 극적인 경기가 펼쳐졌어요.
경기 시작 전 터키의 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대한민국 관중석에서 대형 터키 국기가 펼쳐진 것이에요.그 장면을 본 터키 선수들과 터키 중계진들은 터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한국 관중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 배경에는 한국전쟁 때 한국에 와서 함께 싸워준 터키에 대한 고마움의 뜻이 담겨 있었어요. 그날 양 팀 선수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3:2 펠레스코어로 경기를 마쳤어요. 서로의 국기를 흔들며 어깨동무를 하고 경기장을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선수들을 보고, 세계 언론들은 그날의 경기를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고 보도했어요. FIFA에서는 시합 전 페어플레이를 독려하기 위해 그때의 경기장면을 보여준다고 해요. 앞으로도 감동적이고 멋진 경기장면이 이어지길 바라요.
 
3 월드컵 스타들의 빛나는 마인드
월드컵의 여러 기록들과 함께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축구스타들도 많아요. 그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선수들에게는 뛰어난 축구 실력보다 더욱 빛나는 마인드가 있답니다.

나는 작아서 더 빠를 수 있어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 선수는 수많은 수상기록이 보여주듯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의 메시가 있기까지 그 앞에는 큰 장애물이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메시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지역 최고 명문 팀인 뉴웰스에 들어가 에이스로 활동했어요. 그런데 또래 친구들보다 두 뼘이나 키가 작아 검사를 받고는 성장호르몬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메시의 몸은 스스로 성장호르몬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도 키가 150센티미터를 넘기기 어렵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메시는 매일 밤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나마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구단의 지원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로 지원금이 끊기고 말았지요. 그때 스페인에 있는 FC바르셀로나에서 메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성장치료를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메시는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 스페인에서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어요.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낯선 나라에서 훈련을 시작한 메시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내, 동료들은 메시가 언어장애가 있는 줄 알았을 정도였어요. 그만큼 메시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훈련에만 집중했어요. 늘 연습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훈련한 결과 지금처럼 팀의 위기의 순간에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되었지요.축구 감독들은 메시가 너무 작아서 안 된다고 했지만, 7년 동안 희귀병과 싸워 이겨낸 메시는 자신은 작아서 더 빠를 수 있다고 믿었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선수의 자리에 오른 것이랍니다.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
코트디부아르의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영웅으로 불리고
 
있어요.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합치게 했기 때문이에요.
코트디부아르는 2006년 독일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출전권을 따냈어요.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정부와 반군간의 갈등으로 5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와 7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지요. 드로그바는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를 할 때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는 “여러분,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라고 호소했어요. 놀랍게도 그의 진심어린 호소를 본 정부와 반군은 2007년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을 끝냈어요. 사람들은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지만, 드로그바는 축구로 실제 전쟁을 끝낸 영웅이 된 것이지요.
그 뒤로도 드로그바는 훌륭한 축구 기량을 펼쳐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으로 뽑혔어요. 또한 유엔개발계획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자선활동을 하고 있고 지금도 아프리카의 교육환경 개선과 에이즈 치료를 위해 힘쓰고 있어요. 2010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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