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사랑의 노래, 아가雅歌
솔로몬의 사랑의 노래, 아가雅歌
  • 박영준(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4.09.1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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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아가서는 솔로몬이 쓴 술람미 여인과 나눈 사랑의 노래로, 아가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읽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내용들이 우리 마음에 와 닿아 하나님의 마음에 녹아들게 만듭니다.

입맞춤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1~2)
아가서는 입맞춤으로 시작합니다. 입맞춤을 생각하면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입맞춤은 ‘네가 어떻게 살았든지 지난날 너의 허물,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 내가 다 용서했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허물과 죄 투성이인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안으시고 입 맞추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 모습 하나에 우리 마음이 다 녹습니다. 그 입맞춤이 우리 마음에서 두려움과 초조와 불안을 내쫓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주님이 찾아오셔서 입을 맞춘 경험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있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하며 살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내가 네 죄를 다시 기억지 않는다’ 하신 것은 비길 수 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나, 구원받았어. 나, 의인이야” 하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시작하는 아가서를 읽다 보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향기로운 기름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 1:3)
‘향기로운 기름’이란 하나님이 온전히 흠향하시는 상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전체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받지 않으실 때 가인 전체를 받지 않으셨고, 아벨을 받으실 때 아벨 전체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실 때 우리의 한 부분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허물이 있든지 실수가 있든지 잘하는 것이 있든지와 상관없이 우리 전체를 받으셨습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를 다 받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도 보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만 보고 우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침궁으로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아 1:4)
침궁은 둘만 있는 곳, 바로 주님과 나만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과 나 둘만 있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 시간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은밀한 세계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때로는 성경을 펴 말씀 속에서, 때로는 어려운 일이 있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주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기도하다 보면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겠다, 내 삶을 이끄시겠다, 나를 지키시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어두움이 다 떠납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이 느껴질 때 겁날 것이 없고 행복이 밀려옵니다.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런 시간에서 많이 떠나 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서 예수님 말고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 많습니다.

내가 검으나 아름다우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 1:5)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지기였습니다. 포도원을 지키느라 얼굴이 검게 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술람미 여자를 볼 때 그는 검어서 ‘게달의 장막’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솔로몬의 휘장과 같았습니다. 앞의 모습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우리의 모습이고, 뒤의 모습은 주님이 보시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보면 허물지고 부족하고 연약할지 몰라도 주님은 솔로몬의 휘장처럼 우리를 아름답게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아름다운 우리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몰약 향낭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아 1:13)
향낭은 향품을 담은 주머니를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에게서 향기가 풍겨납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취해 있는 동안 자신의 냄새를 잃고 솔로몬의 냄새를 발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솔로몬을 발견하듯, 우리가 교회 안에서 교회의 뜻을 따르다 보면 주님을 발견합니다. 교회에 머물며 주님과 사랑을 나누는 동안 세상에 젖어 있던 육신적인 생각들이 떠나고, 예수님의 향기가 우리를 물들입니다. 그렇게 물들어 지내다 보면 우리를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세계를 배워 가며
아가서 1장을 읽으면 ‘우리가 진실로 이 술람미 여인과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후가 될 만한 조건이 전혀 없었지만 솔로몬의 왕후가 되어 솔로몬과 함께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입을 만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 안에 있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곳에는 참 평안이 있고, 참 안식이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의 것을 누리는 삶은 참으로 복됩니다.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에 대해서나 왕궁 생활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하나하나 배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배워 가며 사랑과 축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 안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주님에 대하여도 잘 모르고, 하늘나라에 대하여도 잘 모르기에 하나하나 배워 갑니다. 그처럼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세계를 배워 가는 삶이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주님의 마음에 젖게 되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를 이끄셔서 우리를 복되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솔로몬과 깊은 사랑에 빠진 술람미 여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하나님께 다 드리며 사는 사람, 우리 모두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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