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자장면
맛없는 자장면
  • 그림/배은미
  • 승인 2014.10.02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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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에 중국음식점이 새로 생겼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식당 입구에 “자장면 맛없으면 돈 안 받겠습니다.”라고 커다랗게 써 붙여 놓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의아한 듯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장면이 맛이 없으면 돈을 안 받는다면서?”
“그만큼 맛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겠지.”
“그럼 먹고 나서 돈 낼 때 맛이 없다고 우기면 되겠네?”
“정말! 나도 돈이 없을 때는 그렇게 해볼까? 하하하!”
주인아저씨는 정말로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자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안 내고 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동네사람들도 자장면을 먹어보았지만 맛이 좋아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자네, 저 중국집에서 공짜로 먹어 본 적 있나?”
“아니, 자네는?”
“없지. 맛이 없어야 돈을 안 낼 텐데,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단 말이야.”
“맞아.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돈 안 받겠다는 말도 안 나오지.”
그리하여 몇 달을 못 가서 가게 문을 닫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끝났습니다.

어느 날, 그 중국음식점에 차림이 허름한 할아버지와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머뭇머뭇 자리에 앉았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식당 안에는 다른 손님들은 없었습니다.
“뭘 드릴까요?”
주인아저씨가 다가가 물었습니다.
“저……, 자장면 두 그릇 주시오.”
어렵사리 주문을 한 할아버지는 손으로 자꾸만 바지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꽂아둔 나무젓가락을 뽑아 손자에게 내밀었습니다. 젓가락을 건네는 할아버지의 손이 시커멓고 투박하여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달팠는지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할아버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장면 두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렸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어서 먹자. 이렇게 비비면 된단다.”
할아버지를 따라 자장면을 비빈 손자는 한 젓가락을 크게 떠올려 입에 넣었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맛있어요!”
“그래, 어서 먹어라.”
손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다 먹어치웠습니다.
“할아버지, 자장면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죠?”
“허허허! 그렇게 맛있냐? 이것도 더 먹어라.”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장면을 손자의 그릇에 옮겨 주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도 배고프시잖아요?”
“아니야. 할애비는 아침에 밥을 많이 먹어서 아직도 배가 불러.”
 
손자에게 덜어 주고 얼마 안 남은 자장면을 할아버지는 아끼듯 천천히 드셨습니다. 그리고 입가에 자장을 묻히고 신나게 먹고 있는 손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셨습니다. 자장면 한 그릇에 기분이 좋아진 손자는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습니다.
“난 엄마, 아빠가 없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좋은 할아버지가 있는 아이는 나밖에 없을 걸?”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손자 단 둘이 사는 모양이었습니다. 옷을 입은 차림새나 주머니 속의 돈을 만지며 불안해하는 것을 보니 살림도 넉넉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이가 자장면을 다 먹어 갈 무렵, 주인아저씨가 주방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주방장, 오늘 내가 깜빡하고 자장면 맛을 안 봤네. 자장면 반 그릇만 줘 봐.”
“네, 사장님.”
주방장은 얼른 자장면 반 그릇을 주인아저씨가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자장면 한 젓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더니 짜증스럽게 말했습니다.
“오늘 자장면 맛이 왜 이래?”
주방장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왜요, 사장님? 뭐가 이상해요?”
“자장에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갔잖아? 간도 안 맞고…….”
 
늘 같은 방식으로 만든 자장면을 보고 뭐라 하는 통에 주방장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사장님. 자장면이 아주 맛있는데요. 제가 여태 먹어본 집 중에 가장 맛있는데 그러십니까?”
손자도 거들고 나섰습니다.
“맞아요,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요. 최고예요!”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맛은 저희 같은 전문가만 알 수 있답니다. 오늘 자장면은 잘못되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옆에 서 있는 주방장에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손님이 계셔서 그만하겠지만, 앞으로는 잘하게. 이 맛으로 어떻게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와 손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주인아저씨가 황급히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오늘 자장면을 잘못 만들어서…….”
할아버지가 난처해하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는걸요.”
“아닙니다. 오늘 자장면은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게 앞에 간판 보셨지요?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가시면 됩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송하다는 마음의 표시로 드리는 무료쿠폰입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려주십시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도로 빼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는 손자와 함께 음식점을 나섰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자는 마냥 신이 난 얼굴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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