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빛깔 사이에서
맛과 빛깔 사이에서
  • 손인모
  • 승인 2014.10.14 0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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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 손인모의 참외 농사 이야기 5(마지막 회)

 
옛날 어른들은 “참외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 했다. 나도 어릴 적에 참외를 먹고 배탈이 난 기억이 있다. ‘금싸라기’ 참외 종자가 나오기 전, 배꼽이 큰 ‘은천 참외’만 있을 때에는 그랬다. 은천 참외는 저장성이 떨어져 속이 빨리 상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에 ‘금싸라기’ 종자가 종묘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재배한 금싸라기 참외는 감탄이 나올 만큼 모양이 예쁘고 빛깔이 좋고 맛도 은천 참외보다 월등했다. 참외를 아무리 먹어도 배탈 걱정을 안 해도 되었다. 당시 나도 비닐하우스 세 개 동에서 금싸라기 참외를 시험적으로 재배했는데, 전년보다 수익이 두 배나 되었다. 몇 년 사이에 성주의 참외 재배 농가에서는 거의 다 금싸라기 종자를 심었고, 금싸라기 참외가 성주의 농가들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득이 많아졌다. 그 후로 종묘사마다 금싸라기와 유사한 ‘금괴·금노다지·금복’ 등의 종자를 선보여 농부들은 어떤 종자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금싸라기 참외가 나온 지 10년쯤 지났을 때 빛깔이 진하고 맛도 금싸라기보다 뛰어난 ‘오복’ 종자가 나왔다. ‘오복’은 곧 성주 참외 산지의 70%를 점령했고, ‘금’자가 달린 종자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이후로도 종묘사들은 신품종들을 내놓았지만 오복을 따라갈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한 종묘사에서 맛은 떨어지지만 빛깔이 아주 좋은 종자를 선보였다. 붉은 색에 가까울 정도의 황토색이 나는 참외였다. 여러 농가에서 그 종자를 심어 재배한 참외를 공판장에 출하했고, 빛깔이 아주 좋은 까닭에 좋은 값을 받았다. 자연히 다음 해에는 많은 농가에서 그 종자를 심었다. 결국 성주 농가의 90%가 맛은 떨어지지만 빛깔 좋은 그 품종을 선택했다.
참외를 사먹는 사람들을 위한다면 맛있는 참외를 재배해야겠지만 사람들의 손이 가는 것은 빛깔 좋은 참외다. 그래서 농부들은 맛과 빛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우선 보이는 이익을 좇아 맛을 버리고 빛깔을 선택한다. 맛 좋은 참외를 고집하며 농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도 같은 문제를 만난다. 나는 내 심령에 유익한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 길을 택하며 살려고 한다. 그런데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과 교회의 목사님은 좋은 농부여서, 보기 좋은 길이 아닌 나에게 유익한 길로 인도하신다.
 
지난 여름, 우리 교회(기쁜소식성주교회) 형제 자매들은 굉장히 행복하고 즐거운 여름을 보냈다. 교회가 설립되고 20년 만에 예배당 건축에 발을 내딛어 여름 내내 공사하여 준공을 앞두고 있다. 우리 보기에는 어렵게만 여겨져 생각지도 않았던 길을 주님이 목사님을 통하여 걷게 해주셨다.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 주셔서 큰 산 같은 어려운 일들을 평지를 걷듯 지나왔다.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로 우리와 함께하셨다.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내년에는 맛 좋은 ‘오복’ 종자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종자를 생산해도 팔리지 않으니까 종묘사들에서 종자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참외 농사처럼 신앙의 길도 보기 좋은 쪽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이 시대. 고집스럽게 바른 길로만 걷는 하나님의 종이 있는 우리 교회가 나는 좋다. 바른 마음을 가진 농부가 관리하는 밭에서 지내는 내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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