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
  • 임순원 사모, 유승희 사모
  • 승인 2014.10.27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줌인_목회자 사모들의 이야기(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설계도를 그려 놓으셨는데...

임순원(기쁜소식양천교회 사모)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살기에 사모로서 자격이 없다       
                                

 
월드문화캠프와 여름 수양회 등 바쁜 일정을 마친 8월 말, 박옥수 목사님과 서울 지역 사모들이 신앙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과 사모들이 따로 교제하는 시간이 흔치 않기에 설레면서도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첫 모임, 목사님은 사모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지 않고, 가르쳐 주어도 배우지 않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살기에 사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 내 삶을 보면, 복음을 위해 힘있게 사시는 목사님들과는 다르기에 속으로 ‘네, 맞습니다’ 하고 책망을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나? 우리 사모들 가운데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마음에 말씀을 받아 은혜를 입은 것도 있고, 복음을 위해 온 마음으로 애쓰시는 사모님들도 있는데…. 그리고 삶에서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하는 생각도 올라왔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타락은 도덕적으로 잘못했다거나 성경을 안 읽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리지 않고 마음에 말씀을 세우지 않고 사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늘 ‘어떻게 걸어가지?’ 하고 발을 내딛지 못했다
나는 내가 뭔가 잘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잘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늘 나 자신에 반응하며 산 것이다. 박 목사님은 38년 된 병자에 대해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해 주셨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인 병자는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 일도 하고 가정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이어졌다. 반면에 ‘내가 어떻게 일어나?’ 하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병자는 계속 병 가운데에서 지내며 비참하게 살다가 죽는 모습이었다.
나는 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걸어가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발을 내딛지 못했다. 말씀을 듣고 전도도 하지만 안 되면 ‘나는 안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머무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예수님과 다른 마음이었고, 말씀과 다른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이 발견되자 내가 지금까지 교회를 섬겼다는 것, 사모로서 헌신했다는 것,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 등이 마음에서 모두 내려놓아졌다. 아무 할 말이 없는 자가 되었다.

말씀의 설계도가 아닌 죽은 나에게 반응하며 산 것은 얼마나 악한가!
전체 모임을 마치고 몇 그룹으로 나누어 목사님과 좀 더 자세하게 교제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형편을 따라 말하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목사님이 호통 치듯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잖아요! 예수님이 사시잖아요! 그런데 왜 여러분 느낌을 말하고 여러분 생각을 따라 살아요? 왜 죽은 자신에게 반응하며 살아요?”
‘그래, 나는 이미 죽었지!’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목사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여러분이 온전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미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었고,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 그런데 나는 늘 죽은 나에게서 좋은 모습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나에게서 올라오는 생각을 사실로 여기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나를 온전케 해놓으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설계도를 그려 놓으셨는데, 그 말씀의 설계도대로 살지 않고 죽은 나에게 반응하며 산 것은 얼마나 악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목사님은 이어서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나오는 ‘새 언약’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도 이미 새 언약을 새겨 놓으셨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옛 언약인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다. 내 마음에 말씀들이 점점 살아났다. 로마서 11장에 나오는 돌감람나무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아 사는 것처럼, 악하고 추한 내가 예수님께 접붙여져서 예수님의 진액을 받고 사는 자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씨를 가진 자가 되게 하신 것이 놀라웠다. 하나님과 나를 화목하게 하는 것이 내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뿐임이 감사했다.

교회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부터 교제하기 시작했다
모임을 마치면서 목사님은 “이제 교회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교제하라”고 하셨다. 씻지도 말고, 음식이나 청소 등을 안 해도 좋으니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고 꼭 교제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때 나에게 전과 달리 새로운 마음이 올라왔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처럼 ‘저 말씀부터 그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교회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부터 교제하기 시작했다. 교제 시간을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 자매 40~50명이 찾아왔다. 깜짝 놀랐다. 우리 교회 자매들이 교제하는 것을 이렇게 좋아했다니!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 말씀과 간증을 나누었다. 아무도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저녁에는 직장에 다니는 자매들이 퇴근하고 와서 교제를 나누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죄를 사함받을 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말씀이 내 마음에 임하고 나니 마음이 자유로웠다. 자매들에게 지난 날 내가 말씀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을 고백하고, 박 목사님에게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자매들이 하는 간증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 말씀이 더욱 분명하게 세워지는 것을 보았다. 교제 시간이 참으로 감사했다.

자매들도 나와 동일하게 말씀을 마음에 세웠다
박 목사님께서 “사모들이 바뀌면 자녀들이 바뀌고, 가까이 있는 부인 자매들이 바뀌고, 교회가 힘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랬다. 우리 교회는 세워진 지 오래된 교회여서 구원받은 지 오래된 여러 자매들이 복음을 위해 마음을 다 쏟으며 산다. 하지만 마음 중심에는 믿음이 없어서 힘없이 머물러 있는 자매도 많았다. 교제가 무르익으면서 자매들도 나와 동일하게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온전케 하신 말씀을 자신들의 마음에 세웠다. 그동안 하나님이 일해 주시면 좋겠다고 푸념하듯 말하던 자매들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비쳐진 자신의 마음을 간증하는 시간이 되면 서로 이야기하려고 앞으로 나와 마이크 쟁탈전을 벌였다. 내가 자매들을 붙잡고 교제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 자매님은 구원받고 자신이 의인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었지만 온전하다고 말하려면 늘 자신의 행위가 보여 거리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이런데도 온전해?’ 하고 사탄이 넣어 주는 생각에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은 나를 온전하다고 하셨어’라고 말씀에 반응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다 구원받는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남편도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온 거야’라는 사실이 마음에 믿음으로 자리 잡았다고 기뻐하며 간증했다. 작년에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살던 한 자매님도 자신의 마음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나는 더 이상 슬픔의 여인이 아니라 기쁨의 여인입니다” 하고 간증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빠를 찾아가 자신의 마음이 바뀐 이야기를 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있던 오빠가 구원을 받았다.

말씀에 그려진 설계도대로 이루어진 세계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젖어
보이는 것에 반응하던 마음이 버려지니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가 보기에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을 찾아 전도하려다 보니 전도할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모두 구원받을 사람으로 보여 전도할 사람이 많아졌다.
사탄은 지금도 나의 연약한 모습을 증거로 내세우며 믿음을 흔든다. 그래서 오늘도 자매들과 함께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 말씀을 증거로 세우는 교제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려진 설계도대로 이루어진 세계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젖어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

 

 

나도 살고,
우리 교회 자매님들도 살겠구나!

유승희 사모(기쁜소식 김포교회)
 

복음을 위해 살려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전에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와 함께하며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리면 영적이라고 생각했고, 교회와 복음과 상관없이 세상 일에 관심을 갖고 살면 육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향해 불신하지 않고 함께하려고 했다. 실제로 함께하는 삶도 조금 있었기에, 나와 달리 불신을 가진 사람은 문제라고 여겼다.
박옥수 목사님과의 신앙 교제가 시작되고, ‘사모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사님의 첫 이야기를 듣고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목사님은 내 신앙이 타락해서 교제도 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나는 나를 괜찮게 여기고 살았구나!’
‘왜 나는 나를 괜찮게 여기고 있었을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발견되는 것이 있었다. 성경에서 인간은 항상 악하다고 했는데 은혜를 입은 것으로 내 마음이 높아져 항상 악하다는 위치에서 마음이 떠난 것, 그렇게 교만해져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은 것 등이었다.
처음에는 40명의 사모님들이 목사님과 함께 교제하다가 6~7명씩 조를 짜서 교제하기로 했다. 나는 3번째 조에 속해 둘째 날 아침에 교제가 시작되었다. 목사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 차례가 되어 전날 나를 돌아보며 발견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제 마음을 낮추고 배우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받아주시지 않았다. 사실 목사님은 첫날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성경 말씀을 다 해주셨지만,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나 스스로 본 나의 잘못된 점 몇 가지를 인정하고 말씀드렸던 것이다.
목사님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생명의 욕구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신앙도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주님 뵐 날이 가까운데 이제는 복음 앞에 마음을 정하고 육신의 삶을 정리해야지’ 하는 의지 속에 있었다. 오랜 시간 그 속에 있으면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사탄에게 완전히 잡혀서 철저히 속고 있었다. 복음 앞에서 내 육신의 삶을 정리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나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이상한 괴물이 되었나?’
다음날, 목사님은 남성호르몬의 역할을 다시 설명하시며 우리에게 영적 생명의 욕구가 죽어 있는 부분을 말씀하셨다. 내 모습이 보였다. 복음을 향한 생명의 욕구는 죽어 있는데 주님 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육신의 삶을 정리하고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 속에 잡혀 있는 내가 보였다.
우리 조의 교제 시간이 끝난 후 ‘내가 어쩌다 이런 이상한 괴물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도 빠지고, 어이도 없고….
지난 날들을 죽 돌아보았다. 갓 구원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돈 벌 생각에 사로잡혀 주일 예배에만 겨우 참석하고 있을 때, 한 말씀이 마음에 찾아와 내 삶을 복음 편으로 옮겼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나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살았는데, 복음을 위해 살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말씀이 나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 그것은 내 의지나 생각이 아니었다. 말씀이 그냥 찾아와서 이끈 것이었다.
그 일이 생각나면서 ‘그래, 사모라는 위치도, 복음을 위해 살려는 의지도 다 내려놓아야겠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그때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이지 지금 상태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나는 율법 아래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전체가 모여 교제가 시작되었다. 나를 보면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웠지만 그런 내 모습을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우리가 하는 어떤 말, 어떤 의지, 어떤 깨달음도 거절하며 우리 마음을 38년 된 병자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세계로 이끌어 가셨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길이 없고, 할 말도 없어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목사님이 칠판을 가지고 오셔서 예레미야 31장 31~34절의 말씀을 설명해 주셨다.
먼저 율법을 설명해 주셨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마음에는 죄를 품고 있으면서 율법 앞에 서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미운 마음, 음란한 마음에 이끌려 다닌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신앙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마음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일어나지 않고 ‘사모니까, 주님 뵐 날이 가까우니까…’ 하고 내 의지로 육신의 삶을 정리하려고 했다. 나는 율법 아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율법을 폐하셨다. 그리고 새 법을 세우셨다. 그 법은 돌판이 아니라 내 마음에 기록하신 것이었다. “…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내 마음에 기록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이제는 말씀 안에 그려져 있는 내 삶을 따라간다
목사님은 말씀을 마치고 “집에 가면 설거지도, 빨래도 놔두고 하루에 열 사람과 교제하라”고 하셨다. ‘교제하라’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생명처럼 들렸다.
이튿날, 새벽 기도 모임을 마치고 성경을 보고 있던 자매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날 열 명과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다섯 명과 교제했다. 다음날은 주일학교부터 시작해서 간증하고 교제했다. 신기한 것은, 교제할수록 말씀이 마음에 깊이 뿌리내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 살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도 살고, 우리 교회 자매님들도 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교제를 계속 이어가면서 그동안 내 신앙의 잣대가 말씀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따라갔음이 더 분명하게 보였다. 기가 막힐 정도로 엉터리로 살면서도 그것을 감각하지도 못했던 어리석은 날들…. 신앙은 은혜로 된다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행위로 흘렀고, 선악의 기준 속에서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따랐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내 삶이 보인다. 말씀 안에 그려져 있는 내 삶을 따라간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떤 새로운 사람과 신앙상담을 해도 두렵지 않다. 그에게 당신의 은혜를 알게 하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그동안 부담스러워 피했던 많은 복음의 일들을 이제는 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잘 모르지만 알게 하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지난 날들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이제라도 이 큰 은혜를 입혀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