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44) - 교회사에서 올바로 보는 사도신경
교회사(44) - 교회사에서 올바로 보는 사도신경
  • 이한규 (기쁜소식동서울교회 목사)
  • 승인 2014.10.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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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44회)

 

 

사도신경을 영어로는 ‘The Apostles’ Creed’라 하는데, 우리말의 ‘사도신경使徒信經’은 문자적으로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의 내용을 정리하여 경經처럼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경經’은 본래 종교의 경전을 의미하는 말이며, 야고보서 2장 8절과 23절, 베드로후서 1장 20절 등에 나오는 경은 ‘성경’을 가리킨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만든 것이 아니기에 절대로 성경과 같은 위치에 둘 수 없으며, 경經으로 불러서도 안 된다(기술記述의 편의상 이하 ‘사도신경’이라 칭함). 사도신경은 인간들이 만든 하나의 신조다. ‘신조信條’란 라틴어의 credo(고백하다)에서 유래된 단어로, 일종의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사도신경을 마치 신앙의 모든 핵심을 요약한 것처럼 중요시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도신경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신경에 대한 로마카톨릭의 전승
4세기에 등장한 로마카톨릭의 전승에 의하면, 12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 사도신경은 12사도가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자신들의 가르침을 요약해둔 것이라고 한다.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12사도가 모여서 ‘우리가 믿고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한 사도가 한 가지씩 말해서 모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신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처음 한 구절을 기록하자 다른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각각 한 구절씩 썼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AD 4세기에 루피너스Lufinus라는 사람이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주장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지금의 사도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AD 400년경의 라틴어로 된 ‘로마교회 구신조The Old Roman Creed’인데,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열두 가지 문구를 모두 갖춘 형태로 만들어졌다. 만일 사도신경이 정말 영감을 받은 사도들에 의해 작성되어 영적 권위가 인정된 것이라면 그 내용이 그대로 전수되었을 것이며, 수 세기에 걸쳐 그 내용이 추가되거나 다듬어졌을 리 없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교회가 수 세기 동안 수차에 걸쳐 편집과 보완을 거듭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지금도 이것을 신앙 고백의 신조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 종파들도 있으며, 교파마다 예배 때 외우며 고백하는 문구에도 차이가 있고, 내용도 자세히 보면 성경과 아주 다른 부분이 많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교회사가들의 견해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는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에서
“처음에는 모든 신자들에게 구속력을 갖는 일정한 신앙 문구가 없었다. 주요 교회들이 저마다 자체의 필요에 따라 신조를 작성했다. 물론 사도 시대부터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간단한 원형을 모델로 삼아서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샤프에 따르면, 동방 교회가 작성한 신앙의 표준들은 서방 교회(북아프리카, 갈리아, 이탈리아 교회들)가 작성한 것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길고 다양하고 표현이 형이상학적이며, 동방에서 많이 발생한 이단 교리들을 비판하는 교리적 표현들이 많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 표준들은 나중에 니케아신조에 의해 대체되었다.(AD 325, 381, 451)
서방 교회가 작성한 신앙의 표준들은 보다 짧고 단순하고 좀더 통일된 형태를 보여 주는데, 이 표준들은 모두 로마신조에 통합되었다고 한다. 이 신조가 오늘날까지 서방 교회와 거기에서 유래한 교회들의 근본 신조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샤프는 오늘날 받아들여지고 있는 로마신조는 6세기나 7세기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런던신학교 역사신학 교수인 토니 레인Tony Lane은 “사도신경은 점진적으로 발전한 서방 교회 신조들의 최종 산물이다. 이 모든 신조들은 아마도 2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구로마교회 신조’를 기원으로 하는 듯하다. …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표현은 6세기 혹은 7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800년에서 1000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로마교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점차 공식적인 신앙 고백이 되었다. … 동방 교회는 사도신경을 존중하긴 했지만 결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사도신경의 역사
역사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신조는 AD 325년에 만들어진 니케아신조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니케아신경’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때의 신조 내용을 보면 아리우스의 신학 사상을 공격한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사도신경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하는 신학자들도 많다.
니케아신조The Creed of Nicaea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천지의 창조자이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만드신 한 분의 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 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 중의 신이며, 빛 중의 빛이고, 참 신 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고 장사되었으며,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 후 교회 회의가 여러 차례 거듭되어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니케아신조를 확인하고 성령의 신성에 관한 신앙적 의결이 첨부되었다. 이후 431년의 에베소 회의, 451년의 칼케돈 회의, 553년과 680년에 2, 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열렸지만 이런 회의에서 사도신경을 제정했거나 합의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또 동방 교회(그리스정교회)에서는 한 번도 사도신경을 공식적인 신앙고백서로 채택한 적이 없다.
정직한 역사가들에 따르면, AD 400년경에 활약한 암브로스Ambrose와 루피너스Lufinus에 의해서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AD 650년경에 “거룩한 카톨릭교회Holy Catholic Church”란 말이 삽입되고, “성도의 교제”란 말은 650년 이후에 다시 삽입되었다. 그리고 AD 750년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사”가 삽입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도신경은 AD 750년대에 완성된 로마카톨릭교회의 작품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Philip Schaff의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제2권, p. 528~537 참조)

한국 교계 사도신경의 문제점
한국 교계에서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는 사도신경에서 성경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보자.
① 먼저, ‘사도신경’이란 용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사도들이 가르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② 내용 중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대목이 있다. 사실 빌라도는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무리 앞에서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9:4)라고 분명히 말했다. 성경은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눅 23:20)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고난을 받으셨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장본인은 유대인들이었다. 다만 빌라도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가는 민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막 15:15)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겨준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행 3:13)
③ AD 650년경에는 “거룩한 공회”라는 말이 부가되었다.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고백은,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가 ‘거룩한 카톨릭교회’라는 뜻이므로 “나는 거룩한 카톨릭교회를 믿는다”라는 의미이다. 카톨릭교회만이 지상에서 유일한 교회라는 주장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카톨릭catholic’이 ‘보편적, 세계적’이란 뜻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로마카톨릭교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로마교회 구신조’에는 “거룩한 교회를 믿사오며”라고 되어 있었는데, 후에 “거룩한 카톨릭교회를 믿사오며”란 말을 추가했다. 성경에는 어디에도 ‘카톨릭’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당시 카톨릭교회가 이 땅 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유일한 교회라고 주장하며, 거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가혹하게 핍박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 부분이 추가 삽입된 점을 감안하면, 이런 내용은 결국 카톨릭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이다. 이 신조는 ‘오직 한 교회’ 즉 에큐메니칼 사상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④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도 성경적으로 잘 알아야 할 부분이다. 원래 성도를 의미하는 단어 ‘saints’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를 씻고 거듭나 거룩해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도신경에 쓰인 ‘Saints’라는 말은 카톨릭에서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되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칭호(성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카톨릭에서는 그런 성인에게 하는 기도문이 있고, 그 기도를 통하여 죽은 자와도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본래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거듭난 성도들 간의 영적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성인들과의 교통交通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카톨릭의 사도신경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라고 되어 있다. 죽은 자와 교통하는 일은 사탄의 속임수로(삼상 28:8~10), 성경에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사 8:19, 신 18:11~12).
초기 우리말 찬송가에 실린 사도신경을 보면, 1894년 언더우드가 번역한 찬양가에는 “나는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참 신 성부를 믿으며 … 지옥에 내리사 사흘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 … 성인이 서로 통공함을 믿으며…”라고 되어 있다.
⑤ AD 750년경에는 사도신경의 라틴어 본문에 원래 없었던 “그(예수님)는 음부에 내려가셨다(He descended into hell)”라는 내용이 첨가되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뜻이다. 1905년 장로교회에서 발행한 찬송가에 실린 사도신경에도 “음부에 내리셨더니”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천주교의 사도신경을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고성소古聖所에 내리시어”라고 되어 있다. 사전에 고성소란 ‘지옥과 천당 사이에 있어, 기독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나 성세聖洗를 받지 못한 어린이, 이교도, 백치들의 영혼이 사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성경과 상관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라는 문구를 이유도 밝히지 않고 삭제한 채 적당히 사도신경을 통용하고 있다.
⑥ 초창기 사도신경에는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끝맺음되어 있는데, 지금은 삭제시켰다. 이것이 성경적이거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조라면 첨삭添削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는 사도신경을 제대로 알고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카톨릭교회의 유산이므로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사도신경에는 성경에 대해서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분명하고 직접적인 언급이 하나도 없다. 또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는지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복음의 정점인, 대속代贖을 이루시는 어린양으로서의 구세주의 모습이 전혀 없다. 우리가 어떻게 죄를 사함받고 영혼이 구원받는지에 대해서도 한 마디의 언급도 없다. 왜 그 중요한 내용들을 신앙고백에 포함시키지 않는가? 그런데도 예배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지 않으면 이단시하는 관념이 한국 교회에 고착되어, 어떤 이들은 사도신경이 이단 판별의 기준이라고까지 주장해 왔다.
이제는 사도신경을 제대로 알고, 예배 때마다 더 이상 헛된 신조를 암송하는 일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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