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물동이
깨진 물동이
  • 키즈마인드
  • 승인 2014.11.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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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사는 아저씨네 집에는 두 개의 물동이가 있었어요. 하나는 새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데에다 반지르르하게 잘 생겼지요. 게다가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며 한군데도 깨진 곳이 없었어요.
또 다른 물동이는 언제 만들었는지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고 칠이 벗겨진 곳도 있었어요. 게다가 바닥에 구멍이 나고 금이 가서 물이 줄줄 새기까지 했답니다.
아저씨는 기다란 막대의 양쪽 끝에 물동이를 하나씩 매달고 물을 길어다 썼어요. 아침마다 냇가에서 물을 받아다 가족들이 쓸 수 있게 해주었어요.
“오늘 아침도 물부터 길어다 놓아야겠다.”
아저씨는 막대 양쪽에 물동이를 매달아 어깨에 멨어요.
“아, 귀찮아! 오늘은 좀 쉬고 싶어.”
아저씨의 막대 한쪽 끝에 매달린 온전한 물동이가 하품을 하며 말했어요.
“짜증나. 언제까지 내가 이런 시시한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온전한 물동이는 늘 불평이 많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이 늘었어요. 온전한 물동이의 불평을 듣고 있던 깨진 물동이가 입을 열었어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 게다가 난 아저씨와 가족들이 쓸 물을 나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전한 물동이가 깨진 물동이의 말을 받아쳤어요.
“너같이 볼품없고 깨진 물동이한테는 과분한 일이지. 그러나 나한테는 지루하고 하찮은 일이라고.”
“볼품없고 깨진 물동이…….”
깨진 물동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온전한 물동이가 한 말을 되뇌었어요. 그러자 온전한 물동이가 더욱 매몰차게 쏘아붙였어요.

 
아무리 물을 많이 담아봤자 줄줄 새는 너를 아저씨는 왜 안 버리는지 모르겠어. 너같이 모자란 애랑 같이 일하는 건 더욱 짜증나.”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깨진 물동이야.”
깨진 물동이는 아저씨가 자기를 버리지 않고 계속 써주는 것이 감사했어요.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물이 졸졸 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언제 아저씨가 자신을 버릴지 몰라 불안했어요. 
두 물동이는 아저씨의 양쪽에 매달려 구불구불 좁은 언덕길을 내려갔어요. 얼마 안 가서 졸졸졸 물소리와 함께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나왔어요. 아저씨는 물동이를 물속에 잠가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물을 물동이 가득 담았어요. 그리고 다시 물동이를 막대에 매달고 집으로 향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온전한 물동이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어요.

“난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어! 깨진 물동이에 물을 담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저렇게 줄줄 새고 있는데 말이야. 집에 도착할 쯤에는 남아 있는 물도 별로 없을걸.”
온전한 물동이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아저씨는 늘 양쪽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지만 집에 돌아와 보면 깨진 물동이에는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어요. 깨진 구멍과 벌어진 틈새로 물이 줄줄 새어서 오는 길에 다 버려졌어요. 온전한 물동이의 말처럼 깨진 물동이도 자기를 버리지 않는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아저씨에게 뭔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날 버리지 않는 걸 거야.”
“생각은 무슨 생각! 내가 혼자 일하는 것이 가여워서 너를 같이 매달아놓은 것뿐이야. 이제 내가 다른 일을 하러 가면 너는 뒷마당에 버려져서 흙속에 처박히고 말걸!”
두 물동이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저씨는 매일같이 두 물동이를 막대기에 매달고 물을 길으러 다녔어요.
더운 여름이 지나고 파란 하늘이 눈부신 가을이 되었어요.
“자, 오늘도 물부터 길으러 가야지!”
아저씨가 물동이를 어깨에 짊어지며 말했어요.
“아유, 귀찮아! 날 좀 내버려 두면 좋으련만.”
온전한 물동이가 말했어요.
“오늘도 물을 길으러 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깨진 물동이가 말했어요.
아저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냇가로 가서 두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양쪽 어깨에 짊어졌어요.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어요. 아저씨의 콧노래에 맞춰 살랑살랑 춤을 추던 깨진 물동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예쁜 꽃들이 활짝 핀 것을 보았어요. 
 
 
“정말 예쁘다. 길가 가득 꽃이 피었네.”
온전한 물동이가 의아해하며 말했어요.
“꽃이라고? 여긴 마른 풀들밖에 없는데?”
“어? 그러고 보니 이쪽 길가에만 꽃이 활짝 피었네?”
그때 아저씨가 발길을 멈추고 이야기했어요.
“하하하! 역시나 이쪽 길가에는 꽃이 활짝 피었군.”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꽃향기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 꽃들에게 말했어요.

“너희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건 여기 이 깨진 물동이 덕분이다. 깨진 물동이가 날마다 너희에게 시원한 물을 주었단다.”
아저씨는 깨진 물동이를 톡톡 두드렸어요. 그 순간에도 깨진 물동이에서는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내가 꽃들에게 물을 주었다고?’
그제야 깨진 물동이는 자기가 한 일을 알았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왜 여태 깨진 자신을 안 버렸는지도요.
‘나는 내가 아무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나를 꽃에게 물을 주는 일에 썼구나! 아, 정말 행복해!’
깨진 물동이는 활짝 웃었어요. 코스모스보다, 들국화보다 더 예쁜 웃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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