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 이헌목 (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4.12.0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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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사로잡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뛰어난 소년들을 뽑아, 그들을 왕궁에서 3년을 길러 자신을 보필할 신하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뽑힌 소년들 가운데에는 다니엘도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뽑힌 소년들에게 매일 자신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게 했는데,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뜻을 정했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다니엘이 결정했는데,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왕궁에서 바벨론의 학문을 배우지만 그것을 마음에 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세우기로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진미는 바벨론의 좋은 것, 곧 인간적인 지혜·사상·학문 등을 의미하며,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우리 육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따라가는 것도 왕의 진미와 포도주인 것입니다. 그것이 좋아 보이지만, 다니엘은 더럽게 하는 그러한 것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정한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롬 8:9)
성경에서 보면, 성도의 육신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이 ‘나’가 아니라 영이 ‘나’라는 것입니다. 육신이 죽어 육신의 생각 역시 죽은 것이기에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은 사망을 좇는 것입니다.
“…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계 14:8)
바벨론의 학문과 방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합니다. 육신의 세계를 뜻하는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것, 곧 더러운 것에 끌려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에 빠지면 영적 음행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육신의 생각과 율법의 행위를 좇는 것이 음행입니다. 진노의 포도주는 율법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마음을 정한 것처럼, 성도는 육신이 주인이 되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라는 말씀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내가 되어 살아가는 세계가 바로 영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삶이며, 그 결과는 생명과 평안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대단한 위력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바로 왕 아래서 430년간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은 고역으로 인해 탄식하며 압제와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애굽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그들에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그 고기를 무교병과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하나님께서 강력한 능력으로 애굽 전역을 치시고 저주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그때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무교병을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서는 그 모든 저주와 심판이 지나갔습니다. 이 날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이 날을 한 해의 시작일이 되게 하시고, 영원토록 규례로 정하여 기념하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함께 모여 떡과 잔을 들어 축사하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떡을 ‘내 몸’이라 하시고, 잔을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눠주신 이 떡과 잔은 유월절에 먹었던 어린양의 피와 무교병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와 무교병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애굽 전역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이기게 했습니다. 그 심판 앞에서,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무력해지고 무조건 항복한 것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애굽 왕 바로가 항복했습니다. 그림자의 위력도 그처럼 대단한데, 실체는 어떠하겠습니까!

놀라운 능력을 가진 떡과 잔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보혈과 생명의 떡이 구원받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성도는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일체 믿지 말고, 예수님을 세우고 예수님이 주신 떡과 잔을 마음에서 높이 들어올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놀라운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며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지팡이를 든 모세의 팔이 올라가 있는 동안 아말렉을 진멸했던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떡과 잔을 높이 들어올릴 때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강력한 힘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여 성도들을 나약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도록 만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떡과 잔을 들어올려 기억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동안 성도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력한 능력을 가진 떡과 잔을 기억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성전 낭실에는 두 기둥이 있었는데, 오른쪽 기둥을 ‘야긴’이라고 하고 왼쪽 기둥을 ‘보아스’라고 했습니다. 보아스 기둥에서는 대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을 때 그곳에서 기름을 취하고, 야긴 기둥에서는 왕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기름을 취했습니다. 대제사장은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씻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예수님도 당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나라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그곳에 당신의 피를 뿌려 우리를 의롭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고 계십니다.
“…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믿지 않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잘해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상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다시 살아나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늘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때 우리는 누구보다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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