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의 거울
웅이의 거울
  • 최웅렬
  • 승인 2015.02.1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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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이 아주 맑습니다. 산기슭 곳곳에서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이 가을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는 솔 사이, 커다란 바위 위에 웅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열한 살배기 웅이는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습니다. 주르륵. 눈물 한 줄기가 웅이 뺨에 흐릅니다.

웅이는 아기였을 때 열병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때 팔 다리가 뒤틀릴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그 뒤로 웅이는 두 팔을 쓸 수 없게 되어 엄마나 아빠가 밥을 떠먹여주어야 합니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도 엄마가 꼭 따라가야 합니다. 다리도 힘을 잃어 걷는 것이 불편합니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는 바람에 오리궁둥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이런 웅이의 하루는 장애물 경기를 하는 것처럼 숨 가쁘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웅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웅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날카로운 말이 웅이의 가슴을 찌릅니다.
“어머, 쟤 좀 봐. 팔 병신인가 봐!”
“야, 오리궁둥이! 왜 나와 돌아다니냐?”
웅이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몹시 화가 나고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도 없습니다. 웅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비석치기도 하고 싶고 공놀이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웅이는 돌멩이를 던지지도 못하고 공을 차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끼어주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혼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웅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입니다.
 
 
오늘은 가을운동회 날입니다. 학교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휘날립니다.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다 모인 운동장은 왁자지껄합니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수레에 물건을 잔뜩 싣고 와 바쁘게 팝니다. 일 년에 한 번 찾아오시는 솜사탕 아저씨는 커다란 솜사탕을 만들어 신나게 팝니다. 아이들은 그동안 연습해온 율동을 뽐내고 반별로 달리기 시합도 나갑니다. 일등을 하고 공책과 연필을 받아든 아이들의 어깨가 우쭐댑니다.
웅이 혼자만 조용한 교실에 있습니다.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던 웅이가 뒤를 돌아 교실을 둘러봅니다. 빈 교실이 운동장보다 더 넓고 훵해 보입니다. 선생님이 챙겨주신 왕사탕이 하나도 달지 않습니다. 웅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회 날이라 그런가 봅니다.

어느덧 가을도 물러가고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은 눈은 솜 같기도 하고 떡가루 같기도 합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웅이는 얼른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메고 바삐 움직입니다. 동구 밖 논에 물을 대어 만들어 놓은 스케이트장에 가려는가 봅니다. 웅이가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스케이트장 가냐? 나도 가자!”
“병신이 어딜 간다고? 너 스케이트 탈 수나 있어?”
“따라가서 구경만 할게.”
“귀찮아. 우리끼리 갈 거야!”
“맞아, 맞아!”
아이들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웅이를 나무랍니다. 그래도 웅이가 따라나서자 한 아이가 눈을 뭉쳐 웅이에게 던집니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눈덩이를 뭉쳐 웅이에게 던집니다. 아이들이 던진 눈덩이에 이마와 눈을 맞은 웅이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얘들아, 병신이 따라오기 전에 얼른 가자!”
“그래, 헤헤헤헤!”

겨우 집으로 돌아온 웅이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았습니다. 앉은뱅이책상을 보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으앙!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돼? 싫어, 싫다고!”
터져버린 울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나쁜 녀석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어엉엉!”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까지 아파옵니다.
한참을 울던 웅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앉은뱅이책상 뒤에 걸린 거울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거울 안에서 한 아이가 웅이를 째려봅니다. 뒤틀린 팔에 표정까지 일그러져 보기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저게 나란 말이야? 내가 저렇게 생겼단 말이지?”
웅이는 거울 속 아이를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친구들 말이 맞았네. 내가 병신이었네. 그래, 나 병신 맞네.”
자기는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긴 병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병신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을까요? 일그러진 웅이 얼굴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웅이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습니다. 뒤뚱거리며 교실에 들어선 웅이는 교탁에 서서 입을 열었습니다.
“얘들아,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봐.”
“왜, 병신이 거기 서서 연설이라도 하려고?”
비아냥대는 아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웅이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너희들 말이 맞아. 나는 그동안 내가 병신이라는 걸 몰랐어. 그래서 너희가 나를 놀리고 무시하면 화가 나고 속상해서 너희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병신 맞더라.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이야. 그러니까 너희가 나를 좀 도와줘. 너희까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너희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얘들아,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하다.”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잠시 뒤 웅이의 말을 가로막았던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웅아, 내가 미안해. 네 마음도 모르고 놀린 거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대답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도 미안해.” “나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웅이는 싱글벙글입니다. 친구들이 가방을 들어주고 옆에서 부축해주고……. 한 친구의 우스갯소리에 웅이와 친구들은 동네가 떠나갈 듯 웃어댑니다.
 
 
<생각해 볼까요>
*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웅이의 마음은 어땠나요?
*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웅이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 여러분이 발견한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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