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과 피뢰침
프랭클린과 피뢰침
  • 최순식 자문위원
  • 승인 2015.08.1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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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발명 발견 이야기 26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번쩍’ 하는 빛줄기와 ‘우르르꽝!’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에서 만들어지는 자연현상인 번개와 천둥과 벼락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벼락 때문에 나무가 부러지고 집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피뢰침입니다. 이달에는 우리를 벼락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피뢰침의 발명 이야기를 알아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청교도 집안의 아들
미국인들로부터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 벤저민 프랭클린이 있습니다. 1706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건너 온 조사이어 프랭클린의 15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2년 밖에 다니지 못했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인쇄소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며 집안 살림을 도왔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일을 배워 스물네 살에 작은 인쇄소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이라는 책을 펴내 큰돈을 벌었는데, 그때부터 도서관과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1736년에는 미국 최초의 자원봉사 소방서를 설립했고, 1751년에는 필라델피아 대학을 설립하여 초대 학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과학을 존경한 정치가이며 외교관
▲ 프랭클린이 발명한 피뢰침.

1747년부터는 사업을 접고 정치에 뛰어들어 펜실베이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기계와 과학을 깊이 연구하여, 다초점안경, 사다리의자 등을 발명했습니다. 그리하여 정규 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하버드와 예일, 옥스퍼드 등의 명문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아 ‘프랭클린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자유를 사랑하고 과학을 존경한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훌륭한 발명 업적 가운데 피뢰침은 매우 특별한 발명품으로 손꼽힙니다. 프랭클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개발한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위험해도 누군가 해야 될 일이라면
1752년,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평소 하늘에서 번쩍하고 빛을 뿜는 번개가 전기와 비슷한 성질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프랭클린은 한 가지 실험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빗속에 서서 금속 열쇠를 단 연을 공중에 높이 띄웠습니다. 아무도 돕는 이가 없어 아들을 데리고 위험한 실험을 강행한 것입니다. 46살의 나이에 폭우 속에서 연을 날리는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걱정하며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라면 내가 할 것입니다. 내가 위험하다면 그 누군가도 위험합니다. 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얼마 후, 번개가 쳤습니다. 순식간에 연줄을 타고 내려 온 전류가 열쇠에 도달하면서 불꽃을 피웠습니다. 열쇠를 잡고 있던 프랭클린의 손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그는 아픔보다 기쁨을 훨씬 크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의 추측을 증명하는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 프랭클린은 목숨을 걸고 아들과 함께 번개에 흐르는 전류를 끌어 모으는 실험을 했어요.
천둥과 번개는 하늘의 노여움?
프랭클린은 그 실험을 바탕으로 뾰족한 쇠막대기로 전기를 모을 수 있게 만든 피뢰침을 개발해 자신의 집 지붕 위에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하늘의 전기를 끌어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프랭클린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사람들에게도 피뢰침을 설치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피뢰침은 번개를 맞으려고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번개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피뢰침은 구름에서 만들어진 전류가 땅과 충돌하기 전에 조용히 땅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구름 속에는 얼음 알갱이들이 있습니다. 그 얼음 알갱이들과 물방울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빛이 발생하는데, 그 순간 태양표면 온도의 다섯 배, 즉 섭씨 3만 도의 열이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면서 일어나는 충격으로 인해 나는 소리가 천둥입니다. 그리고 번개가 땅에 있는 전기가 통하는 물질과 연결되어 큰 힘을 일으키는 것을 벼락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벼락을 맞아 집이 부서지고 나무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서 빛과 함께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신이 노하여 사람들에게 내리는 꾸중과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그때까지 벼락에 대해 연구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러한 연구는 신에 대한 반항과 도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시와 모함을 무릅쓰고
프랭클린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었지만, 진실 탐구에 대한 열의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실험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는 실험 과정과 결과를 세밀하게 기록, 국내 신문 잡지는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열심히 알렸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의 주장을 무시하고 오히려 모함하고 배척했습니다.
“식민지 나라(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음)의 인쇄업자가 무엇을 알겠어?”
프랭클린이 목숨을 걸고 실험하여 만들어 낸 피뢰침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위대한 발명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과학자도 아니고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한 식민지 나라의 인쇄업자라는 이유로, 그의 발명품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프랭클린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인쇄일을 배우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키워 나갔어요.
인명을 보호하는 필수품 피뢰침
프랭클린은 포기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고, 영국 친구 피터 콜린스에게 꾸준히 자신의 실험 결과를 보냈습니다. 콜린스는 프랭클린의 실험 기록들과 편지를 묶어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그 책을 본
▲ 오늘날의 피뢰침
프랑스 왕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 나라의 건축업자들이 앞을 다투어 피뢰침을 지붕 위에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프랭클린의 발명품 피뢰침이 건축물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사양이 되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피뢰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63빌딩과 같은 높은 건물은 구경도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가 올 때마다 우리는 벼락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인쇄업자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우리나라 종이돈에는 세종대왕과 신사임당과 같은 위인들의 얼굴이 찍혀 있습니다. 미국의 100달러짜리 지폐에는 프랭클린의 얼굴이 들어있습니다. 그만큼 프랭클린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인쇄기술자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던 프랭클린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도 처한 상황에 불평하지 말고 어려움을 만났다고 낙심하지 말고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꿈을 키우기 바랍니다. 또한 올 여름도 자연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건강하게 보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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