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성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 관리자
  • 승인 2017.09.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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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8

성전산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랍비
몇 년 전, 필리핀 친구와 차를 마시다가 유다글릭이라는 랍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있기에 어떤 책인지 묻자 그는 책을 펴서 보여주며 ‘이 책은 앞으로 지어질 제3 성전 도면의 복사본으로, 도면 가운데 수정할 부분을 알리기 위해 정리해 둔 자료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거의 매일 성전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꽤나 유명한 인사였다. 왜냐하면 현재 성전산에는 무슬림 사원이 세워져 있어서 무슬림 외에는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데 유독 그만 혼자 올라가서 기도하는 바람에 언쟁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무슬림 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만나고 십여 일이 지난 뒤 그가 이슬람 청년에 의해 피격되었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이 성전 재건 운동 조직이 힘을 더 모으는 계기가 됐다.

성전이 없기에 속죄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매년 대속죄일이 되면 유대인들은 하루 종일 금식하며 굳은 표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유대종교인들에게 대속죄일은 마음을 가장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는 날이지만 종교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그날 하루는 차량이 다니지 못하도록 통제된 도로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날이다. 그러나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날 하루만큼은 대부분 금식하며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한다.
한번은 어느 종교인과 성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대 유대인들은 속죄일에 왜 속죄 희생을 드리지 않고 그냥 금식 기도를 하며 속죄일을 지냅니까? 만약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당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속죄 희생을 드리고 싶어도 성전이 없어서 드리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소망이고, 성전 재건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전쟁도 할 준비가 됐다고 덧붙여 말했다.

제1, 제2, 제3 성전시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시대를 제1 성전시대라고 하고,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1세가 성전을 지은 시대를 제2 성전시대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장차 지어질 성전시대를 제3 성전시대라고 한다. 제3 성전을 지으면 유대인들은 구약의 속죄 제사를 부활시켜 그동안 성전이 없어 속죄일에 드리지 못한 희생을 전격적으로 드릴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이른 대로 제3 성전이 지어지면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미 이루어 죄를 위하여 다시 제사드릴 것이 없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된다.

바위 사원만이 성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현재 바위 사원이 있는 그 자리 외에는 다른 어떤 장소에도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무렵 새로운 유대 국가를 아프리카 우간다에 건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이유도 바로 바위 사원만이 성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바위 사원을 성전의 중심으로 고집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위 사원을 덮고 있는 황금돔을 걷어내면 크고 넓적한 바위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그 바위 때문이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결박하여 올려놓은 모리아산의 제단으로, 훗날 솔로몬 왕은 그 바위를 가장 거룩한 지성소로 삼고 그 위에 법궤를 올려놓아 지성소의 중심이 되면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헤롯 성전도 동일하게 그 바위를 지성소로 삼아 지었기에 앞으로 지어질 제3 성전 또한 그곳이 지성소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헤롯 성전에는, 법궤를 이미 분실한 상태여서 가짜 법궤를 만들어서 두었는데 제3 성전에는 진짜 법궤를 올려놓기 위해 일부 유대인들이 법궤를 수십 년 간 찾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이 계셨던 당시의 성전에는 성전의 외벽과 내벽 사이에 바깥뜰, 그리고 내벽과 성전 건물 사이에 안뜰이 있었다. 성전의 바깥뜰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고 안뜰은 오직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전의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져 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특별하고 거룩한 장소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이 서로 싸워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도 성전이 눈앞에 보이면 절대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돌려 자신의 화난 얼굴이 성전을 향하지 않게 한다. 예루살렘에 사는 남자들은 급하게 용변볼 일이 생겨도 성전 방향으로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회당에서 율법을 걸어두고 기도하는 방향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지금도 회당을 지을 때 그 기준을 따른다. 공항이나 공공장소에서도 여러 명의 유대 종교인들이 손에 율법을 들고 이마에 율법을 담은 띠를 띠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그때도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을 헐라고 하며 3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이 성전보다 훨씬 높고 소중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보다 크기 때문에 간음 중에 잡힌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신 말씀이 성전보다 더욱 크고 위에 있는 것이다.

성전 재건 운동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성전을 재건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와 해외에서 성전 재건 운동을 하는 유대인 조직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이스라엘 내에서는 조직이 12개로 이미 나누어져 성전 재건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가운데 법무를 담당하는 조직은 바위 사원이 있는 땅이 국제법상 임자 없는 땅이라는 이유로 이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회부하여 무슬림들이 그 장소를 자기 땅이라고 억지로 우기는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 황금사원을 헐고 본격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곳이 전쟁이나 지진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012년에 이스라엘은 제3 성전의 전체 도면을 방송에 공개했다. 성전 재건 운동 조직에서 성전을 짓게 되면 그때 놓을 등대와 떡상 등의 기구들도 이미 준비되어 일부는 성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제사장들이 입을 옷과 대제사장의 에봇도 준비되었고, 가슴에 달 판결 흉패의 돌들도 이미 수집되었다. 제사용 붉은 암송아지를 낳기 위해 선별된 수백 마리의 소도 키우고 있고, 속죄 제사용 양들도 다른 양들과 구별하여 방목하고 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다
현대의 일부 기독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교회 예배당이 성전이고 강대상이 있는 곳이 제단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함부로 떠들거나 공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말은 성전에 대한 개념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성전이란, 등대와 향단과 떡상을 갖춘 성소와 언약궤를 올려놓은 지성소를 갖춘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속죄일의 희생의 피가 언약궤 덮개인 속죄소와 그 바닥에 뿌려져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는 곳을 일컫는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성전은 오직 예루살렘 성전산에 지어진 성전만을 가리킨다.
유대 종교인들도 그들이 기도드리고 모임을 갖는 회당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회당은 그저 회당일 뿐 성전이 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마찬가지로 예배당일 뿐인데, 그곳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전의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성전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기독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강대상에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앞뒤가 더욱 맞지 않는 우스운 이야기다. 성전은 히브리말로 ‘베트 하미크다쉬’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오직 성전에만 쓰는 고유명사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성경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이 바로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오직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은 그리스도인 속에만 거룩한 성령이 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이 당신이 흘리는 피의 값으로 저희를 사셨기에 그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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