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의 비밀번호
해님의 비밀번호
  • 이가희 기자
  • 승인 2017.11.0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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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A-23구역, 링!”

“네!”

“지구 A-24구역, 뉴이!”

“네!”

오늘도 해님은 빛의 요정에게 비밀번호 목록을 나눠주고 있어요. 요정들은 찾아갈 집의 비밀번호를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사람들이 활기찬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어둠이 덮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빛을 전해줘야 하거든요.

 

 

 

아침이 되면 해님이 마을 곳곳에 빛의 요정을 보내서 깨워요. 빛의 요정이 빛을 전달하지 않으면 그 집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를 지낼 수밖에 없어요. 날마다 배달할 집이 바뀌어서 서로서로 자기들이 받은 비밀번호 목록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집 안으로 잘 들어갈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요. 오랫동안 빛을 배달한 요정 ‘화니’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하는 요정들로 인기 만점이에요.

“화니야, 두꺼운 쇠문이 두 겹으로 닫혀 있는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면 좋을까?”

“어제 찾아간 집은 창문이 아예 없더라. 너는 그럴 때 어떻게 했니?”

그때 종소리가 들려왔어요.

‘땡땡땡땡!’

“준비하세요∼! 달님이 곧 자러 가야 할 시간이에요.”

해님에게 받은 빛을 모아 밤하늘에 뿌리던 달님의 쉬는 시간이 된 거예요.

 

화니는 환한 빛을 수레에 한 가득 싣고, 배달 갈 곳의 비밀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사람들에게 상쾌한 아침 햇살을 선물할 생각을 하니 설렜어요. 언제나 그렇듯 화니는 서둘러 빛을 집집마다 배달했답니다.

‘띠, 띠, 띠, 띠’ 비밀번호를 열고 빛을 한 다발씩 넣을 때마다 단잠에 빠져 회사에 늦을 뻔한 아저씨도, 학교에 갈 학생들도 기지개를 펴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어느 새 마지막 남은 한 집으로 화니는 빠르게 달려갔어요.

‘띠, 띠, 띠, 띠’

“어? 이상하다. 왜 안 열리지?”

‘띠, 띠, 띠, 띠’

“어? 정말 안 열리네. 내가 잘못 눌렀나?”

해님이 주신 목록을 보고 다시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화니는 집을 한 바퀴 빙 돌았어요. 그러자 커튼이 쳐진 방 창문이 보였어요. 아주 작은 틈새를 발견한 화니는 방안을 살펴보았어요.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한 남자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어요.

“아, 저거구나! 저 아이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어서 비밀번호를 눌러도 안 열렸던 거야.”

화니는 전에도 가족들이 서로 다투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집에 간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대문이나 창문으로 빛다발을 넣어주려고 해도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빛이 들어가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벌레들도 많아질 텐데…. 저 아이는 왜 마음의 문을 닫았을까?”

화니는 창문에 귀를 바짝 대고 기다렸어요. 그러자 아이가 훌쩍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 들렸어요.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아빠는 무조건 화만 내고,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 아빠, 엄마는 나를 싫어하시는 게 틀림없어.”

화니는 아이가 안쓰러웠어요.

“저런! 저 아이가 아빠, 엄마를 오해하고 있네.”

화니는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지만 아이를 돕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저 아이의 마음을 바꿔줄 수 있을까?”

화니는 커튼 틈으로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그러자 벽에 액자가 보였어요. 액자 안에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있고, 그 뒤로는 아빠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바로 저거야!”

화니는 아이에게 그 사진을 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화니는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찾아가 빛다발을 선물한 참새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남자아이의 얘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지요. 참새는 한달음에 날아서 아이의 집 창문가에 앉았어요. 그리고 부리로 창문을 톡톡 두드리고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톡톡톡톡톡! 짹짹짹짹! 째재재잭!”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어두컴컴한 방안에 앉아 있던 아이는 창밖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창가로 다가갔어요. 그리고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어요. 화니가 소리쳤어요.

“바로 지금이야!”

화니는 얼른 빛다발을 방 안에 있는 벽에 걸린 액자를 향해 던졌어요.

“아, 눈부셔!”

아이는 갑자기 들어온 빛을 피하려고 몸을 돌렸어요. 그러자 벽에 걸린 액자가 빛을 받아 반짝였어요. 아이는 액자 속 사진을 향해 다가갔어요.

“엄마, 아빠….”

아이는 아기 적 자기의 웃는 얼굴과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어요. 자기가 봐도 무척 닮아서 미소가 절로 나왔어요.

“아빠는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고 하셨어. 엄마도 나를 낳고 몸이 많이 힘드셨지만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고 하셨고.”

 

아이는 코끝이 시큰거렸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내가 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아이는 얼른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마침 엄마가 아이에게 주려고 토스트를 만드는 중이었어요. 아이는 엄마를 끌어안고 훌쩍였어요.

“엄마, 엄마!”

“어머, 얘가 왜 울어? 어젯밤에 토라져서 들어가더니 이제 미안해진거냐?”

“응, 응! 죄송해요. 엄마!”

화니는 비밀번호를 눌렀어요.

‘띠, 띠, 띠, 띠, 띠리링’

“열렸다!”

화니는 남은 빛다발을 집안 가득 뿌려주었어요. 그걸 보고 엄마가 말했어요.

“어머나, 오늘 햇살이 정말 좋구나. 엄마랑 같이 산책 나갈까?”

“응, 엄마!”

엄마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화니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다 깜짝 놀라 소리쳤어요.

“앗! 돌아갈 시간이야!”

화니는 부랴부랴 빛 수레를 끌고 해님을 향해 날아올랐어요. 화니는 처음으로 다른 빛 요정들보다 늦게 일을 마쳤지만 기분은 최고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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