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을 찍어 오세요.밝아진 눈으로 오세요!”
“예수님의 마음을 찍어 오세요.밝아진 눈으로 오세요!”
  • 조현주(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8.06.1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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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순례 2

평소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살던 내게는 갈릴리 주변만 돌아다닌 이틀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는데, 출발 시각을 더 당겨 시작한 셋째 날 스케줄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첫 목적지는 마사다 Masada. 인솔자의 설명이 없다면 멀리서 보고 그냥 지나쳤을 유대광야의 그 흔한 바위산을 향해 버스가 달려간다. 산 입구에서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400미터를 단숨에 올랐다. 산 정상은 평평한 운동장 같고 둘레는 깎아지른 벼랑으로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의 천혜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가릴 수 없는 강렬한 햇볕과 너른 광야를 깨우듯 불어대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마사다의 역사 속으로 걸어가 본다.
먼저,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1세 왕이 나타난다. 그는 BC 31~37년, 추운 겨울에 머물 궁전을 이곳에 건축했다. 명분이 겨울 궁전이지, 역모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은신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리석 3층 궁전을 짓고 38개의 탑을 만들었으며 몇 년간 먹을 음식과 물 저장고, 최고급 사우나 시설까지 갖추었다. 늘 암살의 위협을 느껴 헤롯왕은 어느 방에서 자는지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잤고,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들도 예외없이 무기 소지 검사를 했다는데, 그런 불우한 주인이 사용했던 이곳의 호화판 사우나는 지금 물 한방울 없이 흙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었다.
헤롯왕 다음으로, 960명의 유대인들이 마사다의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은 로마군에 맞서 3년 간 대항했던 민간인이다. AD 70년경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로마에 반기를 들었는데, 디도 장군은 예루살렘을 침략해 불바다로 만들고 유대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를 피해 여기까지 도망온 유대인들은 로마군과 대치했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바라보며 로마군도 처음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 유대인 포로들을 노예로 써서 산 높이의 경사로를 구축했고, AD 73년 요새에 다다를 수 있었다. 로마의 점령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960명은 결단을 내린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은 민족이다. 이제 로마군의 칼에 죽거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해 자존심을 지키자.’ 3년 간 버텼던 전쟁은 이렇게 전원 자결로 허무하게 끝났다. 마사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로마가 민간인에게 패배한 가장 치욕적인 현장이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역사서나 여행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성경의 눈으로 보면 역사의 해석이 반전된다. 마사다에서 성지순례자가 봐야 할 것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극적 최후’라고 강조한다. 이곳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예수님을 본 적이 있으나, 예수님을 마음에서 버린 적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사다로 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다. 젊었을 때 그들은 빌라도를 향해 예수를 ‘못 박으소서’ 했고, ‘만약 화가 있으면 우리와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마 27:25절,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결국 유대인은 2차대전 때 6백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우리와 자손에게 재앙을 돌리라고 하던 그들의 외침을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마사다 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자긍심은 남다르다. 그들에게 마사다는, 로마인에게 패배하지 않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런 불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스라엘에서는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필수 코스로 지정해 신성시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유대인들이 로마인 앞에서는 당당했는지 몰라도, 과연 하나님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의 탄생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한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한지 마사다는 오늘날 순례자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요새를 둘러본 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안 보였다. 기쁜소식천안교회 자매라는 소리에, 김진수 목사님의 눈빛이 달라진다. 버스에서 잠시 기다리라 하고 ‘사라진 자매’를 찾아 뛰어내리셨다. 한편, 혼자 뒤처진 줄 알고 먼저 산아래로 내려갔던 ‘그 자매’가 다시 올라와 문제는 자동해결되었다. 그런 줄 모르고 여자 화장실로, 식당으로, 사방을 애타게 찾아다니다 온 김 목사님이 그 자매를 보고 기뻐하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끝까지 찾으신 예수님이 떠오르면서, 인도자가 있음이 행복이구나 싶었다.
다음 목적지는 마사다 북쪽 1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엔게디 계곡이다. 광야에 우뚝 선 마사다와 달리 이곳은 외부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데,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삶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어떤 두려움이나 근심도 평안과 기쁨으로 바뀜을 실증해주는 장소이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디윗이 엔게디로 도망갈 때 심정이 어땠을까? 그때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 눈에 이 골짜기는 소망 없는 덤불숲으로 보였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르다 보니, 비탈길은 점점 가파르고 길의 방향도 찾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즉시 모든 잡념을 멈추고 무조건 앞사람 뒤꿈치만 보고 따라갔다. 그렇게 다다른 곳은 일년 내내 물이 흐르고 스물여섯 종류의 다양한 과실이 널려 있다는 다윗 폭포였다. 황무지 안에 이런 풍요로운 계곡이 있다니···.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 두신 사실을 발견했을 때 다윗의 마음은 얼마나 감사했을까!
모든 것이 갖춰진 엔게디 계곡은 광야 같은 다윗의 인생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다. 우리 인생도 광야같이 메마르고 험준할 때가 있는데, 그때를 위해 몇 천 년 동안 변함없이 콸콸 떨어지고 있는 폭포 소리를 마음의 귀에 입력시킨다. 우리 삶이 고단할 때, 주님은 엔게디 폭포의 물줄기 소리를 우리 마음에 다시 떠올려주실 것이다. 예수님을 부정한 유대인들의 마사다 유적지를 보고 온 뒤라서 그런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간 다윗의 삶이 엔게디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사해死海로 가는 길에 예수님 세례터를 들렀다. 입장이 3시까지인데 우리 버스는 3시 2분에 도착했다. 국경 지대라서 군부대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유대인 가이드 매니가 경비소에 가서 애타게 사정을 해도 군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야박하다 싶었지만, 다른 날을 기약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사해는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은 호수다. 그런데 물빛은 투명한 코발트색으로 무척 아름답다. 북쪽의 헬몬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갈릴리 호수를 통과한 뒤 요단강을 타고 내려와 모인 종착지가 사해다. 폭 14km, 길이 78km로, 갈릴리보다 여섯 배 더 넓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그런데 사해는 해발 마이너스  410m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사해로 들어온 물은 더 이상 흘러나갈 곳이 없다. 갇힌 물은 증발되면서 염분이 쌓이고 쌓여 짜디짠 물을 만들었다. 일반 바닷물보다 훨씬 짜서 이곳엔 웬만한 세균들조차 살기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짠 물이 피부병 치료에 좋고 해변의 진흙은 미용에 좋아서,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 스파로서 연중 내내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사해에서 부영 체험을  시작했다. 눈이 늘 충혈돼 있는 나는 이참에 소독 좀 되라고 눈에 물 몇 방울을 넣었다가 된통 죽는 줄 알았다. 어찌나 쓰리고 따가운지···. 앞으로 사해에 가실 분은 수경부터 챙기길 조언해 드린다.

물에 둥둥 떠서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본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겸비한 사해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이곳에 누구든지 몸을 담그면 뚱뚱하든, 날씬하든, 젊었든, 늙었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쉽사리 뜨게 하셨다. 헤엄칠 줄 몰라도 모두에게 공평한 바다, 마치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차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한기가 돌았다.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말씀하신다. “아까 군인이 우리를 들여보내 줘서 요단강을 보고 왔다면 수영하고 감기 걸리는 분 있었을 거예요.” 사해 지역은 겨울에도 무더운데 오후에 갑자기 수온이 내려가 이상추위가 왔다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시다고 간증하셨다. 주님이 이끌고 있는 여행에 동참하고 있어서 기뻤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아사셀의 협곡이다. 광야를 달려간 버스가 어디선가 멈추고 우리는 골짜기까지 걸어가야 했다. 조잡한 팔찌를 한움큼 들고 나타난 베두인 소년들이 ‘1달러’를 외치며 맨발로 관광객 사이를 넘나든다. 협곡에 이르자 설명이 이어진다.
“솔로몬 성전 시대에는 아사셀 염소를 유대광야로 보냈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끌고와 계곡으로 떠밀었을 텐데요.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마음을 메마른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광야같이 비워 나가는 일을 하십니다. 그 안에 당신의 말씀을 세워 당신이 주시는 새 힘을 얻게 하려는 것이지요.”
요즘도 유대인들이 ‘라 아사셀’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죄악을 가지고 지옥으로 꺼져버리라는 것으로 심한 욕설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소리로 계곡을 향해 ‘라 아사셀, 아세셀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몇 달치 땀을 하루에  방출한 날이었지만, 아사셀 어린양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심이 너무나 감사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안식일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오래 전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는데, 우리는 하얀색 메르세데츠 벤츠 관광버스를 타고 들어가려니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운전대를 잡지 않는 안식일 아침의 거리는 너무나 한산했다. 율법에 매여, 마음이 쉬지 못하고 사는 유대인들의 일면을 호텔에서 볼 수 있었다. 안식일에만 작동되는 엘리베이터에 층마다 자동여닫기를 설정해 버튼 누르는 일을 대신해 준다. 덕분에 그들이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진 않겠지만, 빨리 닫히라고 마음으로 버튼을 누르는 건 어쩌지? 마음을 중시하는 예수님이 보신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싶었다. 
  예루살렘은 여러 종교의 각축장이자 수많은 성지들의 백화점이다. 그런데 성지들 중에는 사실무근의 잘못된 곳들도 많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고통의 길 ‘비아 돌로로사’가 그렇다. 그 길의 마지막 지점인 성분묘교회도 역사적으로 검증해 보면,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AD 335년에 와서 성지로 정하고 교회를 세운 인간의 산물이다. 이런 연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길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미어터지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잘못 알려진 성분묘교회에는 바위 끄트머리라도 잡아보려는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우리 일행은 상업화된 관광지를 일제히 ‘통과’하고 다녔다. 지면 관계상, 예루살렘 일정 중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은혜로 가득 적신 베데스다 연못가 간증을 정리해 싣는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구원해 주신 베데스다에서 우리는 김진수, 정용만 목사님의 두 사모님으로부터 병을 낫게 해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들었다.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불치병을 이긴 손해경 사모님이 먼저 말문을 여셨다. 그 이야기를 몇 미터 떨어져 경청하는 정 목사님의 모습이 이내 감사로 물들고 있었다.
“제가 6년 전 암에 걸려 박옥수 목사님께 갔더니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주시는 것 같아?’ 물으시는데, 그 찰나에 ‘내가 저주를 받아서?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생각이 스쳤어요. 목사님은 주님이 하시는 것은 선한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따라, 큰 혹을 항암치료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수술해서 사흘 만에 퇴원해 지금껏 건강하게 살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몸이 계속 안 좋았어요. 병원에 갔더니, 당뇨 30년에 췌장기능이 제로가 되었고 신장이 망가져 투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북부산교회 이동 공문까지 보니까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몸이 이런데, 일 많은 곳으로 보내시다니···’ 첫마디가 그것이었어요. 그런데 ‘일이 많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하나님의 도우심밖에 없네’ 하면서 제게 없던 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부산으로 가는 날 박 목사님께 인사드리러 갔어요. ‘자네, 어디가 안 좋아?’ 하시길래 건강상태를 말씀드렸어요. 나를 쳐다보시더니 ‘하나님은 아픈 사람 안 써! 내가 기도해 줄게 들어와요’ 하셨어요. 기도 받고 내려가면서 목사님 말씀을 줄곧 생각했어요. ‘아픈 사람을 안 쓰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치료하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삿짐 풀 틈도 없이 월드캠프 준비를 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아파서 누워본 적이 없었어요. 약이 떨어져 병원에 갔다가 검사를 했는데, 결과치를 보다가 종이를 확 돌려 이름을 다시 확인했어요. 제것이 아닌 줄 알았거든요. 신장은 망가지면 회복이 안 된다는데 100퍼센트 정상이고, 당뇨수치 외에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어요.
베데스다 연못을 보면서, 내게 주님이 없었다면 연못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텐데 이런 내게 주님이 오셨다니 가슴이 울컥울컥 하더라고요. 주님이 계셔서  참 감사했어요. ‘아픈 사람 안 써!’ 하신 목사님의 한마디도 너무 감사해요. 성지순례 설명을 들을수록 내 마음에서 하나님도 커지고 종과 교회도 커지는 거예요. 주님이 인도하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2016년 9월 말, 담관 암 판정을 받은 김진수 목사님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김순옥 사모님이 차분히 들려주셨다.
“남편이 암에 걸렸을 때 박 목사님 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김 형제가 암이라구? 자네 울지 마!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암 하나 못 이기시겠어?’ 그러셨어요.
전에는 남편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했는데 남편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진짜 남편이 귀하더라고요. 항상 자식이 먼저였는데, 남편이 아프면서 하나님이 제 마음에 질서를 바로잡아 주셨어요.
수술 후 암병동으로 옮겼는데, 환자들 중에 웃는 사람이 없었어요. 암 치료를 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죽어나가니까 웃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어떤 환자가 운동한다고 복도를 걷다가 쓰러졌는데 30분 만에 돌아가시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 목사님 말씀과 정반대였어요. 목사님은 기쁘다는데 저는 힘든 것 같고, 또 목사님은 나사로가 산다고 하시는데 제 눈엔 죽을 것 같고···. 하나님이 제 마음의 한계를 보게 하셨어요.
이스라엘에 오기 전에도 남편이 많이 아팠어요. 열이 펄펄 나는데, ‘여보! 빨리 목사님께 전화해!’ 하는 거예요. 제가 ‘목사님, 남편이 아프데요’ 하면 바꾸라고 하시고, 목사님이 ‘이 사람아, 원래 아픈 거야! 괜찮아!’ 하시면 남편이 그대로 일어나는 거예요. 목사님의 말씀 한마디가 암을 쫓아내고 다시 일으키는 것을 옆에서 봤어요. 목사님이 ‘자네는 이미 다 나았어. 가서 충분히 말씀을 전하고 와’라는 한마디를 받아들이니 이미 그대로 이루어져 있더라구요. 성지순례 중에 설명해 주시는 말씀이 2천 년이 지난 우리 삶 속에 그대로 연결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여기 사는 유대인들이 이 놀라운 세계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스라엘에서 너무 바빠질 때가 곧 있겠다 싶어요.”
여행 중에도 매일 새벽에 옷이 젖을 정도로 조깅을 한다는 김진수 목사님. 복음 앞에 선 그분의 생명을 주님이 잡고 계심을 볼 수 있었다. 성경에는 신비한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사흘 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셨는데,  그 예수님과 우리가 마음으로 연결되면 지금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을 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역사하심을 베데스다 간증에서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종일 투어할 수 있는 마지막 날로, 유대광야와 예루살렘에서 미처 못간 곳들을 마무리하는 ‘보충학습’ 같은 일정이다. 첫 목적지는 엊그제 2분 늦어서 못 간 카세르 엘 야후드 Qaser El Yahud. 아랍어로 ‘유대인의 궁정’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요단강 일대를 말한다. 강을 중심으로 이편은 이스라엘, 저편은 요르단이며, 강폭이나 수심이 지금은 많이 줄어들어 큰 개울 정도다. 이 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하늘이 열렸다고 마태복음에서 전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나 두근거렸을 세례 요한의 마음을 상상하면 덩달아 벅차오른다.
다음 목적지는 1947년에 베두인 목동이 우연히 발견해서 유명해진 쿰란 Qumran 지역이다. BC 2세기부터 AD 70년까지 에세네파 사람들이 공동체생활을 했던 거주터로서, 이들은 세속을 거부하고 정결한 삶을 살았다. 두루마리 양피에 성경과 관련 서적들을 필사하며 스스로 ‘빛의 아들들’로 여겼는데, 하나님은 불의한 청지기가 쿰란에서 경건하게 사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성경(눅 16:8)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 이유는, 당시에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시아를 전파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일이 있었으며, 그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건한 삶을 고집했다. 하나님과 단절된 채 율법만 좇아 산  그들의 최후를 보면서 신앙은 함께 연결되어 흐르는 세계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이제 숨이 턱턱 막히는 광야를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가서 기드론 골짜기 중턱에 있는 여부스 산성터를 본다. 다윗이 어떻게 이곳을 빼앗아 다윗성으로 정착시켰는지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3천 년 전 다윗의 용사가 여부스 사람의 수구를 통해 터널로 잠입하는 길을 따라가 본다. 구약시대 때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했고 솔로몬에게 기름부음을 했던 기혼의 샘을 지나 요한복은 9장에 나오는 실로암을 향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간다. 소경이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을지 의문스러울 만큼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그 길을 통과한 뒤 소경이 보았을 예수님의 사랑과 삶의 변화를 상상해보니 마음이 뭉게구름을 탄 듯 벅차오른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남쪽에 위치한 목자들의 들판으로 갔다. 황량하고 너른 평원을 보자 이구동성으로 ‘여기서 뭘 찍을까요?’ 묻는다. 천사들이 여기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곳이며, 구약시대에는 보아스가 룻에게 이삭을 주우라고 은혜를 베푼 밭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이곳에서 열리는 꿈을 오래 전부터 꾸고 있다고 했다. 그날이 오면 뜨거운 감자 같은 예루살렘의 상황에 따스한 소망과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다.

드디어 이스라엘을 떠나는 여섯째 날, 공항 가는 길에 우리를 바람 쌩쌩한 엘라 골짜기로 이끌었다. 그 설명을 따라 마음의 눈을 열일곱 살 다윗에게 맞추었다. 그러자 비닐하우스 위로 거대한 골리앗이 보이고, 건너편에서 소년 다윗이 나타난다. 우리는 골리앗을 향해 소리쳤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여행 도중, 언뜻언뜻 이스라엘에 가서 ‘밝아진 눈’으로 오라던 박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눈이 밝아져서 오라는 것이 아니라, 밝아진 눈으로 오라셨는데···. 돌아갈 즈음이 되니까 내 마음의 눈이 나도 모르게 밝아진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보려고 애써서 밝아진 게 아니라, 일주일 동안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걷고, 성경 말씀을 전해 듣고, 서로 간증을 나누다 보니 마음에 빛이 점점 커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름다운 것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 사신 곳을 찾아 이곳까지 왔는데, 정작 예수님은 비좁은 내 마음에 먼저 오셔서 나를 앞서 걷고 계셨다. 이번 여행은 시편 136편의 감사를 배우고 느끼고 온 행복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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