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8.03.0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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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삶
 

아브라함의 두 아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젊고 건강한 아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오랫동안 자식 없이 지내온 아브라함에게, 86세에 얻은 이스마엘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이스마엘은 13년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아브라함은 늘 “사랑하는 아들아”라고 이스마엘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내가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를 통해 네게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할 만큼 이스마엘을 사랑했습니다. 누가 봐도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하나뿐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스마엘이 가짜 아들로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납니다.
사라는 자식을 낳은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나이 들어 경수까지 끊어지고 맙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0.1%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입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라에게 자식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고 처음 말씀하셨을 때 사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이 ‘웃음’인데, 사라에게는 이삭이 ‘기가 막혀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아들’이었던 것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나중에 이삭을 부를 때마다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아들아!’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진짜 아들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
두 아들의 비유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성령으로 난 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당연한 아들’로 인정받고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육체를 ‘당연히 나’로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집에서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이 유업을 이을 수 없는 아들이듯이, 모든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아온 육체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이 참 아들로 존재하듯이, 예수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난 내가 내 인생의 ‘진정한 나’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에서 어느 것이 ‘참 나’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계집종 하갈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이스마엘을 차마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쫓아내라고 하셨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납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 4:30)
성경은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육체를 ‘진짜 나’로 여기며 살아온 삶을 내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육체를 위하는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육체가 잘되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육체의 이 모든 것이 내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쫓아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롬 4:18) 이 말씀처럼,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서 ‘참 나’로 살아가는 삶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행복의 길임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이 참 내가 아니라 ‘성령과 내 영’이 참 나 자신임을 믿어야 합니다.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지금까지 온 마음을 다하여 육체를 위하고, 높이고, 잘 되게 한 것은 육체를    ‘나 자신’으로 여기고 그것이 행복을 얻는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온 마음으로 위하고, 사랑하고, 잘 되게 하려고 한 것은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참 행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을 넣어 주셔서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하시고 진정한 축복의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롬 8:9)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시면, 육신으로 살아가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과 하나 된 새 사람인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예수님과 똑같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주 당연하게 마음에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새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은, 육체를 자신이라고 당연히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니 거룩하지도 않고, 허물이 많은 자신을 당연히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6)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언급한 것같이 당연히 ‘나’라고 생각해 왔던 육체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참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죄인이라는 육신의 생각이 쫓겨나가고 의인이 되었다는 영의 생각이 마음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때 약속을 믿음으로 당연히 ‘의롭고 거룩하고 온전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 위치에 대해 “…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라고 했을 뿐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던 육체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가 성령으로 난자요, 이것이 참 마음이요 온전한 믿음입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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