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을 선택한 살몬
라합을 선택한 살몬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8.02.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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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설교

이스라엘에서 온 정탐들을 구해준 라합
여호수아 2장에 보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를 점령하러 가기 전에 그 성을 엿보라고 정탐 두 사람을 먼저 여리고에 보냈다.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살몬이었다. 그들이 여리고에 가서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 머물며 쉬는 동안, 여리고 왕이 정탐들이 성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사들을 라합의 집에 보내 그들을 사로잡아 오게 했다.
군사들이 라합의 집에 이르러 정탐들을 찾았을 때 라합은 두 사람을 지붕 위에 있는 삼대 아래 숨겼다. 그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과연 그 사람들이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그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급히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얼른 따라가 보세요.”라고 하여 군사들을 따돌리고 두 정탐을 구해 주었다.

두 부류로 구분되는 여리고 사람들
후에 살몬은 라합과 결혼했다. 여리고에 많은 여자들이 있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도 잘나고 예쁜 여자들이 있었는데, 살몬은 그 많은 여자들 가운데 하필이면 기생 라합을 선택했을까? 우리는 죄가 많은 사람들, 창기 같은 이들을 더럽다고 여기지만,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을 갖지 않고 임시 안일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여리고에 살았던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기지 못해.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라들을 쳐서 다 멸망시켰잖아. 우리 여리고도 반드시 망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정탐들이 여리고에 들어온 일 앞에서 그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정탐들을 만났을 때 ‘저 사람들은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이야. 저들과 같이 있으면 우리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어. 이것은 놀라운 기회야!’라고 생각했다. 한 부류는 정탐들과 함께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임시 편한 대로 여리고 왕에게 정탐들이 성에 들어왔다고 고발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안전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크고 복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신다. 그 일들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보이지만, 우리가 부담을 뛰어넘어 그 길을 가면 온 가족이 사는 정말 놀라운 축복이 임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부담 때문에 그 큰 축복을 던져버린다. 여리고 사람들이 정탐들이 들어왔다고 왕에게 고발하듯이, 임시 편안한 길을 선택한다.

믿음으로 살았을 때 얻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우리 마음을 꺾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마음을 꺾고 난 뒤에 오는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내 육신의 욕망대로 살지 않고 주를 섬기면서 믿음으로 달려가는 삶은 무엇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의 세계보다 세상의 정욕이나 쾌락 쪽으로 마음이 간다. 자기가 볼 때 안전한 쪽을, 눈앞에 보이는 임시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번은 어떤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 저는 믿음으로 살기 싫어요.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좋아요.”
“네가 믿음으로 살았을 때 얻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래. 만일 내가 너에게 현금으로 1억 원을 준다면, 네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꺾고 새 마음으로 살지 않겠어?”
“그렇게 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살죠….”
“그래.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었을 때 받는 축복을 돈으로 따진다면
1억 원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축복인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들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임시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그 학생이 생각에 깊이 잠겼다.
우리가 육신의 것을 추구하면서 살면 영적인 삶을 따라가기가 어렵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살면 육신 쪽으로 흘러가기가 어렵다. 육신으로 흘러가면 임시 편한 것 같지만, 육신을 절제하고 영의 마음으로 달려간다면 그로 말미암아 얻는 복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가족들이 구원받고,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에서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 축복 앞에서 어떤 삶을 사는가?
내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을 때, 그 사랑이 너무 크고 놀랍고 감사해서 내 인생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곳에서 지내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으로 일생을 살았다. 구원받고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지난날 내가 예수님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그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해도 그것이 지금 내가 예수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이 행복, 이 기쁨, 이 놀라운 은혜와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행복과 기쁨을 1억 원의 돈에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임시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기 쉽다. 여리고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정탐들을 보았을 때 그 길을 선택해, 여리고 왕에게 정탐들을 고발했다. 그런데 두 정탐이 여리고에 들어가서 실제로 한 일이 무엇인가? 그들은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었다. 창세기 19장에서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러 가지만, 그 일 역시 믿음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축복 앞에서 어떤 삶을 사는가? 귀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임시 편안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내 노후나 가정이나 자녀들이나…, 내 삶 전부를 하나님께 맡겼다. 내 삶을 내가 쥐고 있는 것과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긴다. 이렇게 살면 처음에는 삶이 어려운 것 같고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어려울 때마다 나를 도우셨다. 어려운 일들이 그냥 어려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든 어려움이 복되게 끝나서 나에게 귀한 간증을 남겼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놀랍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주님이 내 삶을 이끌어 주셨다.

살몬이 라합을 아내로 얻은 것처럼, 예수님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여리고에도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에도 좋은 여자들이 있었는데, 살몬은 왜 기생 라합을 아내로 선택했을까? 라합이 어떻게 해서 기생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라합은 눈앞에 보이는 임시 안일한 삶보다 생명에 마음을 둘 줄 아는 여자였다. 라합과 달리 여리고에 살았던 다른 사람들은 정탐들을 보았을 때 왕에게 고발하고 말았다. ‘정탐들을 우리 집에 숨겼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지? 위험한 일을 겪게 될 거야!’ 그런 두려움 때문에 라합이 간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살몬이 라합을 선택한 것처럼,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값 없이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 살몬이 라합을 아내로 맞이한 것처럼, 예수님은 임시 누리는 안일보다 앞날을 바라보면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과 함께하시며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작은 안일, 쾌락….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서 많은 축복을 빼앗아 가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임시 좋은 것들을 선택하지 않고,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장차 얻을 축복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그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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