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 김양미
  • 승인 2018.09.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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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8편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를 알면
신앙생활에서 회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회개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회개가 어떤 것인지 알면 쉽게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가 이루어지면 마음에 바로 죄 사함의 확신이 찾아옵니다. 확실히 죄 사함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신앙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죄 문제로 고통하며, 회개하려고 합니다. 박옥수 목사는 자신이 구원받기 전에 경험했던 회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면서 죄 때문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목사님이 죄를 회개하라고 하셔서 지은 죄를 하나하나 기억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나중에는 회개 노트를 만들어서 기억나는 죄마다 기록해 두었다가,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그 노트를 보며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죄를 적은 페이지가 자꾸 늘어 가는데, 죄를 고백할수록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나고 더 기억났습니다. 아무리 고백해도 죄가 씻어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회개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이 그 죄를 회개할 때,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1장과 시편 51편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윗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식으로 회개했던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다윗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식으로 회개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미쳤지…, 어느 날 왕궁 위를 거닐다가 어떤 여자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나서 그 여자를 데려와 동침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가리기 위해 남편을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은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죄를 짓게 된 근본 원인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회개는,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한 결과를 뉘우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왜 그런 죄를 지었는지 발견해서 그 원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짓는 삶이 계속됩니다.

탕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길을 걸었는가?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는 것이 참된 회개이며, 어떻게 회개해야 죄에서 해방받을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에서 회개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받아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아 돈을 다 허비하고 돼지를 치는 자가 되었고, 마침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서 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탕자가 돌이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8~19)
여기에서도 탕자가 “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창기들과 먹고 마셨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서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였습니다. 회개할 때 악인은 길을, 불의한 자는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탕자는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 잘 먹고 살다가 어느 날 생각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나는 똑똑하고 잘났어. 내가 형님보다 나아.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 잘할 거야.’ 둘째 아들의 마음에 자기를 높이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이 생각이 그의 마음을 덮었고, 그의 행동을 이끌었습니다. 이 생각에 끌려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요구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주세요.”
“왜?”
“저도 사업 한번 해보게요.”
“사업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무나 사업 하면 되는 줄 알아?”
“아버진 저를 늘 어린애로 생각하시는데, 친구들 가운데 제가 제일 괜찮아요! 내가 형님보다 똑똑하잖아요!”
얼마 후, 아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요구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재산을 제가 쓸 건데 미리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도 편하고 저도 좋잖아요.”
싸우다 싸우다 아버지가 재산을 주었습니다. 탕자가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자신이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이 있으니까 그곳에서도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지냈습니다. ‘오늘은 피곤한데 하루만 기생들하고 놀고 내일부터 사업을 하자.’ 하고 하룻밤을 기생과 함께 보냈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생각이 바뀌어서
‘일주일만 놀고 사업하자.’ 하고 일주일을 놀았습니다. 그러더니 ‘사업, 천천히 하지 뭐.’ 하고 한 달을 놀았습니다.
돈이 팍팍 줄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업을 해야 하는데….’ 탕자가 기생집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빠진 사람은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면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줄로 압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혀가시고, 그가 잡혀가는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제사장의 집에 들어갔을 때에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자신이 해를 당할까봐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예배를 드릴 때 무슨 죄를 짓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가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믿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안 하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아들은 마음이 높아져서 ‘내가 사업을 잘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마음이 높아지면 눈이 흐려져서 자기를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둘째 아들처럼 결국 자기 길을 가고, 허랑방탕한 삶에 빠집니다.
‘그 많은 재산을 다 날리기까지 기생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병신이 어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생집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합니다. 밖에서 볼 때에는
‘저기서 왜 못 나와?’ 하지만, 일단 빠지면 나오지 못합니다.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깊은 물에 빠지면 자기 힘으로는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빠져도 그렇고, 술에 빠져도 그렇고, 여자에 빠져도 그렇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도 그렇고, 도박에 빠져도 그렇습니다. 빠지면 자기 힘으로는 못 헤어나옵니다. 탕자는 돈이 다 떨어진 후에야 기생집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기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니까 기생 발에 차여서 쫓겨났습니다.

죄에 빠지게 하는 근본을 치료해야
탕자가 재산을 탕진한 뒤, 먹을 것이 없고 잘 곳이 없어서 그는 돼지를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침 그 나라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서, 잠은 돼지우리에서 겨우 잘 수 있었지만 주인이 음식은 주지 않아서 굶주림으로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뉘우치게 됩니다. 탕자가 뉘우쳤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8~19)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지은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라’고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도둑질했습니다. 거짓말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했습니다. 간음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뉘우치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세계를 알면 도둑질, 거짓말, 미움, 간음 등의 죄들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었을 때 ‘이제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각오하고 결심하지만, 결심한 대로 될까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간음하다가 잡히면 돌에 맞아 죽는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음란한 마음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면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각오가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음란한 마음이 그 여자를 끌고 다녔습니다. 도박하고 싶은 마음,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 마약 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마음을 덮으면 우리가 거기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환자가 머리가 아프다고 진통제를 주고, 열이 난다고 해열제를 준다면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닙니다. 왜 아픈지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을 치료해야 합니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다고 해도, 의사는 참으라고 하면서 왜 아픈지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지, 머리가 아픈 것만 치료하려고 하면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결과를 치료하려는 것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치료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을 회개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이 삶을 반복합니다. 죄를 지은 결과를 회개하고 있어서 죄가 해결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도둑질하게 되었는지, 왜 거짓말하게 되었는지, 왜 간음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비는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탕자는 자신을 믿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허랑방탕하게 살았고, 어느 날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돌이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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