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 조규윤 (기쁜소식한밭교회 목사)
  • 승인 2018.09.0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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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룻 3:1)
룻기 1장에는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남편뿐 아니라 두 아들과 모든 소유를 잃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나오미는 풍족하게 나갔던 자신을 비어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났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며느리 오르바는 그 백성과 신에게로 떠나갔지만 자신에게 아무 소망이나 길이 없었던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들어갔을 때는 마침 보리를 추수할 때였다.
2장에는 룻이 은혜를 바라고 발을 내디뎠을 때 보아스의 밭에 이르러 이삭을 풍성하게 줍는 이야기가 나온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머물러 있는 동안 추수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을 은혜로 함께 누린다.
룻기 3장에서는 무엇을 말할까? 나오미가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나오미에게 룻은 자부가 아닌 소중한 딸이 되었다. 그렇기에 룻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룻에게 제시한 길은 보아스의 발치에 눕는 것이었다.
“네가 함께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룻 3:2~4)
‘안식할 곳이 보아스 발치에 내려가 눕는 거라니?’ 룻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룻이 자신에게는 길이 없었기에 나오미를 붙좇는 삶을 살았지만 과연 나오미의 말을 따를 수 있었을까? 룻은 자신을 부인하고 나오미가 명한 대로 보아스의 발치에 가서 누웠다. 룻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오미를 믿었기 때문이다.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창 27:11~13)
야곱은 자신에게 있는 조건으로는 아버지 이삭 앞에 나가서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아버지 앞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어머니를 믿었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아버지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축복을 받았다. 룻 역시 나오미를 믿었기 때문에 나오미가 이끄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따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오미가 말하는 안식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것 보아스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나오미의 마음 안에는 룻을 위한 소망스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룻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룻이 상상할 수 없는, 꿈도 꿀 수 없는 세계를 보고 있었다. 그 세계는 보아스와 마음이 만나면서 시작되는 삶이다.
그런데 보아스의 마음을 만나려면 그의 발치 이불에 내려가 누워야 했다. 그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마음이 낮을 때 가능한 일이다. 룻은 그의 마음에 저주가 임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자신의 생각에 끌리지 않고 나오미에게서 들려오는 말씀에만 이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한 말씀대로 기근을 만났다. 그 여자는 마지막 남은 가루 조금과 기름 조금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그의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는 상황 가운데 있었다. 그가 보는 세계는 절망 그 자체였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이야기했다. 사르밧 과부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3~14)
하나님의 사람이 보는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사르밧 과부 스스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가루 통에 가루가 가득한 세계,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세계였다. 사르밧 과부가 보는 세계는 빈 가루 통, 빈 기름병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것을 먹고 죽을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통하여 그 여자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영적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싶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과부에게 새로운 세계를 깨우쳐 주었다. 이제 사르밧 과부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뜨였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전에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 기근이라는 형편에서 벗어나 소망을 갖고 가루가 가득한 가루 통,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름병을 경험한 것이다.
룻의 삶 역시 그러했다. 나오미를 통하여 그가 알지 못하고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맛보았다. 룻이 알게 된 것은 보아스가 자기 집안의 기업을 물러 줄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있는 이불 아래 눕고, 보아스의 마음을 만나 그로부터 반드시 룻의 이름으로 기업을 이어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보아스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여 그와 아들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일인가! 룻이 이런 삶을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그러했다. 몇 년 전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만난 후로 나를 믿고 사는 삶을 끝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다. 그때 이후로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하였던 것처럼 그만두었던 목회를 다시 할 수 있었고, 대구의 기쁜소식수성교회 예배당를 지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교회 안에서 귀한 직분을 받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 주면서 그 속에서 일하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하셨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며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듯, 룻이 나오미를 통하여 보아스 안에 준비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우리를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이끌어 가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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