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가시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가시다!
  • 김요한 (케냐 나이로비교회 선교사)
  • 승인 2018.09.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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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3화
 

“아프리카 좋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에는 전도자를 양성하는 마하나임신학교가 있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전도자가 되어 국내외 선교지로 파송된다. 군대에 가기 전 나는 청강생으로 입학했고, 제대 후 신학교로 다시 돌아와 훈련을 받았다. 나는 마하나임신학교 58기였는데, 우리 기수는 2년 동안 아무도 파송을 받지 못했다. 아마 우리가 신학교에서 제일 많이 해맨 것 같다. 박옥수 목사님이 회개와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루는 신학생 열댓 명이 박 목사님과 신앙교제를 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한참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물으셨다.
“요한아 너! 아프리카 좋아하니?”
“아니오. 싫어요.”
나는 2008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월드캠프가 열렸던 가나와 케냐에 다녀왔다. 단기선교사로 아프리카에 다녀온 대학생들이 한결같이
‘아프리카가 너무 좋다. 아프리카는 나의 고향이다’라고 말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갔다. 하지만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여러 면에서 힘들었다. 아프리카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목사님이 아프리카가 좋은지 물으셨을 때 바로 ‘싫다’고 대답했다. 목사님이 왜 물으시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바로 말씀하셨다.
“아 그래? 목사님들이 너를 케냐로 보내기로 의논했는데?”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아프리카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프리카에 간다는 것보다 2년 동안 우리 기수에서 파송을 받은 학생이 없었기에 파송을 받는다는 그 자체가 기뻤기 때문이다.
“목사님, 케냐에는 언제 갈까요?”
“내일 가.”
바로 짐을 싸서 이틀 뒤에 케냐로 갔다. 나는 미국 영주권이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내가 아프리카에서 살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케냐에 갈 때 내가 가진 거라곤 주머니에 있는 100달러가 전부였다. 케냐에 입국할 때 비자 비용으로 50달러를 내고 나머지 50달러로 3개월을 지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마타투(시내버스)를 타는 것부터 8월에 열리는 케냐 월드캠프 때문에 정부 인사들을 만나는 일, 월드캠프를 준비하는 일 등 전부 다 배워야 했다. 그때는 재미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다.
3개월 뒤 한국에 돌아가 교회의 큰 사랑과 은혜로 결혼하고 케냐로 다시 돌아왔다.

“교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야”
나는 교회에서 자라면서 “마음을 쏟아서 일해라. 왜 마음을 안 쏟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복음을 위해서 내 마음을 쏟아야 하는 줄 알고 온 마음을 쏟아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새벽 일찍 마타투를 타고 타운에 나가서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만다지(길거리에서 파는 간식류)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면서 정부 기관과 후원사를 방문했다. 매일 그렇게 살았다. 내가 사역자 같지 않고 IYF 직원 같았다. 눈을 뜨면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성경도 거의 읽지 않았다.
모든 일에 열심히 마음을 쏟으며 살았는데 그 결과는 힘든 것밖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2010년 케냐 월드캠프 시작을 이틀 앞두고 첫째 아들 은욱이가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두 달 빨리, 몸무게가 2.1킬로그램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몸이 약했다. 은욱이가 태어나 돌이 되기 전까지 사흘이 멀다하고 말라리아, 장염, 감기 등에 걸려 계속 아팠다. 나는 복음을 위해 열심히 사는데 하나님이 왜 나에게 그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몰랐다. 박옥수 목사님이 케냐에 방문하실 즈음 접촉사고도 났다.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쌓이자 마음이 많이 곤고하고 어려웠다.
박 목사님은 케냐에 도착하시자 바로 선교사 모임을 가지셨고, 나는 나의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신앙 교제를 받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 자리에 앉자마자 “목사님! 제가 간증하겠습니다.” 하면서 내 마음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목사님, 이것 때문에 어렵고, 저것 때문에 어렵고, 저것 때문에 어렵고....”
한참 이야기하는데 목사님이 내 말을 끊더니 책망하기 시작하셨다.
“요한이 너! 교만하고 거만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고 내 말도 무시하고 살았잖아!” 나는 목사님이 나를 위로해 주며 조용히 교제해 주실 줄 알았는데 책망하시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신학교에 있었을 때 책망을 많이 받았지만 여러 명이 같이 책망을 받는 것과 “요한이 너!” 하면서 직접 나를 책망하시는 것은 많이 달랐다.
나중에 목사님이 나를 다시 부르셨다.
“요한이 너! 교만하다는 것이 뭔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거야!”
 신학교에서 교만에 대해 많이 가르쳐 주셨지만 처음으로 교만이라는 의미가 내 마음에 정확히 심겼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살아온 모습이 비춰지기는 했으나 마음에 선이 정확히 그어지지는 않았다.

 

“요한아, 너 사역 그만두고 직장 잡아!”
그 다음 해에도 박 목사님이 케냐에 오셨다. 그때도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선교사 모임을 가지셨다. 나는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정하였다.‘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했더니 혼나기만 하는구나.’ 목사님의 눈길을 피해 키가 큰 선교사님 뒤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목사님은 앉자마자 두리번거리셨고, 목사님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때부터 갑자기 목사님이 나를 책망하기 시작하셨다.
“요한이 너! 교만하고 거만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고 내 말도 무시했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책망하신 것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목사님이 책망하셨다. 무척 어려웠다. 아프리카에 살면 몸이 힘들 줄 알았는데 마음이 더 힘들었다.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도 이해되지 않았다.
한번은 케냐 월드캠프 마지막 날 저녁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이 끝나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목사님이 사택에 와서 나를 찾으셨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비행기를 타고 우간다 월드캠프에 가셔야 하는데, 1시간 넘게 나와 싸워주셨다. 목사님은 첫 마디로 나에게 사역을 그만두고 직장을 잡으라고 하셨다. 내 마음에서 사역을 그만 두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역을 그만두면 저주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저주를 받으면 괜찮지만 나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이 저주를 받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요한아, 너 사역 그만 두고 직장 잡아!”
“목사님,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안 돼! 너, 내 말 안 듣잖아! 너, 나가야 돼!”
한 시간 넘게 목사님과 이런 말을 계속 주고받았다.

 

“이제 내 말 듣네!”
11시가 넘어갈 때 목사님이 “요한아! 케냐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발공장이 있지? 앞으로 거기서 일해! 그러면 한 달 뒤에는 자립할 수 있겠지? 그럼 그때 교회에서 나가!”
목사님이 내가 사역을 그만두고 교회를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아, 목사님이 마음을 정하셨구나! 이제는 빌어도 안 되겠구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가 복음 때문에 케냐에 왔지 가발공장에서 여자 가발 만들려고 왔나? 케냐에 있을 바에야 한국에 가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목사님! 그럴 바에야 사역을 그만두고 한국에 가겠습니다. 강남교회 주일예배만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래, 그런 정신으로는 안 돼! 그만 둬!’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이 “이제 내 말 듣네!”라고 하셨다. 너무 의아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박 목사님이 주변에 있던 선교사님들에게 “요한이가 이제 내 말 듣지?” 라고 하셨다.
“예, 목사님. 이제 요한이가 목사님 말씀을 듣네요!”
“요한이가 내 말 듣지?”
“예, 목사님.”
주변 선교사님들에게 다 물어 보시고,“이제 자자!”하며 나만 거실에 남겨두고 방에 들어가서 주무셨다. 혼자 거실에 앉아 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그때는 잘 몰랐다. 복음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산 결과 나는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박 목사님은 쉽고 재미있는 신앙을 하시는데 나는 힘들고 어려운 신앙을 하고 있었다. 신앙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사역을 내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하셨던 것이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면 너무 쉽고 재미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을 놓게 하려고 목사님이 계속 책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한아! 내가 너 케냐에 일하라고 보낸 거 아니야! 회개하라고 보낸 거야!”
그때까지 나는 복음의 일을 하라고 보내신 줄 알았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게 아니라 회개하라고 보냈다고 하셨다. 그 말씀대로 케냐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와 목사님을 통해 나를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이 찾아가는 사람은 ‘없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다.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 4:4)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해야 하는 이유는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마리아 여인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누구인가? 그 여인은 그때까지 내가 살았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쥐고 잘 살아 보려고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따라서 첫 번째 남편을 만나서 살아보았지만 실패하였다. 두 번째 남편을 만나서 살아보았지만 실패하였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지만 실패한 여인이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삶을, 내 사역을 쥐고 있는 한 이 여인처럼 실패하고 망할 수밖에 없었다. 목사님은 나를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일하시는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것을 알았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 4:16~17)
예수님이 찾아가시는 사람은 ‘없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힘이 없나이다. 나는 지혜가 없나이다. 사역할 수 없나이다. 신앙할 수 없나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찾아온 후로 그 여인의 삶은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언가 열심히 해서 행복하려는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이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해서 여인을 행복하게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5장에도 38년 된 병자가 나온다. 하나님이 이 병자에게 38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신에게 길이 없어서 자신을 기대하는 삶을 끝내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요 5:7)
예수님 없이는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일하시는 삶을 사는 게 아니었다. 38년 된 병자처럼 38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자신이 다 무너져서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았을 때 예수님이 그 마음에 찾아와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에서도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없을 때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예수님이 찾아와서 일하실 수 있는 때가 언제인가? “...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요 2:3)
포도주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가 아닌 포도주가 없을 때였다. 이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내가 더 이상 무언가를 하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이 이끌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신앙을 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목사님, 저 사역 그만두고 한국에 가겠습니다. 강남교회 주일예배만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내 말 듣네!”
박옥수 목사님은 내가 사마리아 여인처럼, 38년 된 병자처럼, 가나 혼인 잔칫집처럼 나에게 길이 없기에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일하시는 삶, 예수님이 하시는 신앙, 예수님이 하시는 선교를 하게 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마음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처럼 교만하고 거만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박 목사님을 통해 계속 싸우시고 인도해 주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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