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 석승환
  • 승인 2018.11.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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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환 이야기2

 

 

생명공학도를 꿈꾸던 석승환은 환청에 잡혀 대학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다. 그는 기쁜소식선교회에 와서 자신에게 들리는 환청과 싸우는 시간을 보내던 중에 피아니스트라는 새로운 길로 인도받는다. 불가능해 보이는 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길이지만, 석승환은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을 수 있는 그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그곳으로 이끌기까지 석승환을 항상 그와 동행하시며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데…. 석승환은 그에게 닥치는 어려움이 사실은 축복임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
러시아에는 5년간 입국할 수 없었지만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계속 준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당시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의 강충모 교수님을 한 번 뵙고 점검을 받고자 했다. 그분은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3대 국제 콩쿠르에 속하는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지냈고, 줄리어드 교수로 수많은 유명 연주자들과 콩쿠르 우승자를 배출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가 교수님 앞에서 연주를 했다. 교수님의 반응은 아주 부정적이었다. ‘이 정도로는 차이콥스키가 아니라 다른 콩쿠르도 안 된다.’라고 못 박으셨다. 몇 차례 다시 연락을 드려봤지만 더 이상의 답장이 없었다. 큰 실망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의 반주를 맡아오던 명 피아니스트 선생님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는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도움을 받았던 러시아 현지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여권 이름이 ‘Sunghyaun Suk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는데, 영문 이름을 변경하면 러시아에 다시 입국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권의 영문 이름을 변경하고 2015년 1월에 러시아로 떠났다. 그런데 러시아공항 게이트 입구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나를 취조실로 데려갔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할지 긴 의논 끝에 종이에 ‘2019년 3월 19일’이란 날짜를 적어 보이며 두 팔로 X자를 그렸다. 그날까지 러시아에 올 수 없다는 의미였다. 나는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져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해 휴대폰을 보니 수많은 문자가 와 있었다. 나와 연락이 안 되어 걱정하시던 러시아교회 사모님, 박은숙 단장님의 문자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 문자가 쌓인 휴대폰을 내팽개치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휴대폰 문자를 확인하는 중에, 미국 마하나임음악원에서 온 문자를 보았다. 그 내용인즉 내 여권 이름이 바뀌어 학생비자가 취소되고, 추방당한 경력으로 관광비자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머릿속엔 ‘다 끝났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박은숙 단장님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음성메시지를 남기셨다.
“승환아, 지금 네 마음이 쉽지 않겠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 한국에 머무는 동안 대전 새소리음악중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돌보면 좋겠다.”
그 이야기가 너무 싫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동안 학생들을 돌보아주던 합창단원들이 연습 시간 부족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분의 인도를 따랐지만 결국 방바닥에 누워 있는 내 현실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강팍해진 내 마음에 은혜를 베푸셨고, 얼마 뒤 인도를 받아 인천에 있는 음악중학교에 갔다.

러시아에서 추방을 당해 미국에 갔을 때 박영국 목사님은 “하나님이 너에게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약속하셨다면 꼭 그렇게 이끄실 거다.”라고 말씀하셨고, 박은숙 단장님은 “하나님은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야.”라고 말씀하셨다. 두 분의 말씀은 2015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2월 초 인천 음악중학교에 가보니, 내가 도울 일들이 있었다. 박은숙 단장님께 메일로 나의 일과를 적어 보냈다. 단장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박옥수 목사님이 가시는 곳에 따라가서 공연해라.”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계속 공부해라.”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2015년 나에게 새로운 일이 주어진 셈이다. 마침 군대 문제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합창단 형들이 있어서 공연 팀이 금방 구성되었다. 우리는 목사님 가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공연했다.

내가 너에게도 이렇게 일할 거야
얼마 후 그라시아스합창단은 독일의 ‘마르크트 오버도르프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서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독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뮌헨음대의 훌륭한 교수님을 만나 레슨을 받으며 독일식 연주법과 해석에 대하여 배우는 기회를 은혜로 받았다. 그리고 ‘마르크트 오버도르프 콩쿠르’는 나에게 큰 것을 남겼다. 하나님이 어떻게 합창단을 도우시는지, 그들이 어떻게 콩쿠르를 준비해 나가는지 보았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일등이라는 순위를 발표할 때,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너에게도 이렇게 일할 거야.”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그라시아스합창단과 함께 ‘스바보드나’, ‘한국 월드캠프’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러시아의 이고르 교수님과 함께 연주를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절망으로 시작한 2015년이 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신기하고 특별한 일들의 연속으로 너무 놀랍고 정신없이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줄리어드 대학 강충모 교수님
2015년 2월 초에 인터넷으로 줄리어드에서 만났던 강충모 교수님이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국에 와 있다는 근황을 접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예전에 쓰셨던 글을 발견해 읽으면서 1년 전에 나에게 매몰차게 하신 교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선생님을 다시 뵙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지도해주실 선생님을 알아보던 중이어서 강충모 교수님이 계신 곳을 여러 곳으로 수소문했지만 연락처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합창단원들에게 성경 구절을 외우는 과제가 있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몇 주간 이 구절을 계속 입에 달고 지내다 보니 ‘하나님께 구하면, 세계 최고의 지혜를 가지신 선생님을 주시겠다. 배우게 하시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사람들 앞에서 여러 번 간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레슨을 받으며 알게 된 선생님에게서 음악캠프를 주최한다는 연락이 왔다. 캠프에 특별히 초청한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공개수업을 받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를 추천했다고 하셨다. 특별 초청된 선생님이 누구실까 궁금해 캠프 정보를 찾아보니, 강충모 교수님이셨다. 몇 달 전에 찾아뵙기 위해 그렇게 수소문을 했었는데…. 그 사실을 확인하자 오만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한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드디어 캠프에서 강충모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강 교수님이 워낙 대단한 분이라 학생이 한 명 한 명 오를 때마다 사회자가 소개 멘트를 넣었다. 내가 오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한 시선이 느껴져 앞을 바라보니 강 교수님께서 나를 유심히 보고 계셨다. 무대에서 많이 떨려서 그런지 1년 전과 별 다르지 않은 연주를 보여드렸다. 며칠 후 강 교수님과 직접 통화하게 되었다. 강 교수님은 1년 전에 내가 어떻게 연주했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교수님은 “희망적인 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 실력이 작년에 비해 참 많이 늘었더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를 계기로 지금까지 3년째 강 교수님께 지도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말씀의 약속대로 최고의 선생님을 주셨다.

하나님은 성경에 열린 문을 두셨다
2016년 2월의 주일 예배 때에 박옥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다른 말을 한다면 안 되는 거지.’ 
하루는 대전 새소리음악고등학교 학생들이 미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내 사정도 모른 채 묻기 시작했다.
“형, 4월에 하는 미국 음악캠프 같이 갈 거죠?”
계속 못 간다고 하다가 문득 ‘하나님은 성경에 열린 문을 두셨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성경 말씀만 보면 나는 미국에 갈 수 있겠네.’
추방 당한 이력이 있으면 관광비자(ESTA)도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1년 전에 연락을 받았기에 마음에서 아예 접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말씀이 그러니 ‘한번 알아 보기라도 하자. 길이 있을 수도 있다.’ 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막상 알아 보니, 비자를 내는 부분에 추방 기록에 대한 조항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1년 전에 나에게 잘못 알려준 것인지, 법이 바뀐 것인지….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어 ESTA를 신청했는데 비자가 나왔다. 비자는 나왔지만 ‘들어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다시 미국행이 망설여졌다.
‘아니지, 말씀에 열린 문을 두셨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받아들이지 말자. 믿어지든 안 믿어지든지 왕의 말씀이야.’
마음을 말씀 편으로 정하고 음악캠프 신청한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열 여덟시간 내내, 내 마음에서 두 음성이 전쟁을 벌였다.
‘야, 너 입국심사에서 러시아 추방 기록이라도 나오면 어떡할래?
 여권 이름을 바꾼 기록이 나와서 잡혀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냐, 하나님은 분명히 미국에 가는 문을 열어두셨어.’
‘너 때문에 마하나임 학교에까지 문제가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아냐, 분명 문을 열어두셨어. 난 들어가.’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까지 맹렬한 싸움은 끝이 없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는 출입국 직원의 음성이 들리고 나서야 내 안에는 죄여오던 소리가 사라졌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정말로 열렸고, 이제는 미국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내 마음에 분명한 선을 긋기로 다짐했다.
‘믿어지건 안 믿어지건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복종하자.’
장마가 한창 시작되고 한국 월드캠프가 열리는 7월, 비가 많이 내려 피아노 공연이 취소되어도, 공연 중에 비가 내려 건반이 젖고 피아노 속에 빗물이 들어가도, ‘하나님은 이게 다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어. 그래, 감사한 일이야!’ 하고 정하니 흔들리는 마음도 없고 실제로 공연도 아름답게 마쳐졌다.
나는 매년 아프리카 캠프에 갈 때마다 말라리아에 걸리곤 했는데, 그 해  아프리카에 갔지만 처음으로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다. 그 또한 생각해보면 형편을 보고 생각을 받아들인 다음날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11월에는 한국에서 큰 규모로 열리는 콩쿠르에 참가했다. 1년간 몇 차례에 걸쳐 등수를 가리는 토너먼트 방식의 콩쿠르였는데, 나는 파이널까지 올랐다. 미국이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를 하고 난 뒤에야 콩쿠르를 준비하러 한국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대전도 집회가 있어서 정작 연습할 시간은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준비를 도와줄 선생님도 큰 독주회를 앞두고 있어서 바쁘셨다. 형편은 불가능한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박은숙 단장님이 말씀을 보내주셨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다른 길이 없어서 그 말씀만 마음에 품고 연습도 못한 채 대전도집회를 다녔다. 콩쿠르까지 남은 시간은 5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설사 떨어져도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게 가장 좋은 거다.’ 말씀에 마음을 정하니 가볍고 편하게 대회에 임할 수 있었다. 파이널 대회의 심사는 독일에서 오신 교수님들이 맡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독일의 자존심인 베토벤을 연주해야 했다. 그렇게 대회를 마친 후 하나님이 주신 결과는 1등이었다. 내 마음에 1등이란 결과보다도 말씀대로 이루신 하나님이 크게 남았다.

석승환보다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은 세상에 없게 될 겁니다
그해 겨울,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이 있었다. 편곡이 갑자기 바뀌면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원래 강남교회에서 공연하면 긴장을 배나 하는데, 준비 기간이 짧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컸는지 연주 중에 1절 멜로디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이것도 감사하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이건 좋은 일이다.’ 하며 몰려오던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그날 박옥수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내 이야기를 하셨다.
“2년, 3년 내에 석승환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세상에 없게 될 겁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은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았다. 그 해로부터 3년이면 2019년인데,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가 그 해 열린다. 그리고 2019년 3월 19일 이후면 내가 다시 러시아에 입국할 수 있기에, 6월에 열리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다. 목사님의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차이콥스키 콩쿠르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2017년, 우리가 이방의 빛이라는 신년사 말씀을 들으며 다시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살아났다.

승환아, 넌 세계 최고야! 알았지?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행 13:47)
2017년 한 해 동안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자 약속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 말씀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믿음이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에 믿음이 정확히 자리를 잡지 못해 금방 바닥이 드러나 2017년을 헤매며 보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 참 좋은 것으로 남았다.

2017년에 첫 도전한 콩쿠르는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였다. 다른 콩쿠르에서 수상한 성적으로 예선을 면제받아 곧바로 결선에 올랐다. 좋은 기회다 싶어 열심히 연습하며 콩쿠르를 준비했지만, 몸이 많이 지쳐버리는 바람에 역효과만 가져왔다. 일본으로 가기 전날은 연주할 체력조차 남지 않아 한국 공연에서조차 실수가 많았다.
‘너, 이 상태로 무슨 콩쿠르야? 떨어질 거야. 그러니까 포기해.’
그 생각이 너무 합리적이고 맞게 들렸다.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해 새벽에 깼는데, 박옥수 목사님께 마음과 지친 몸 상태에 대해 문자를 드렸다. 이른 새벽이었는데, 목사님이 바로 확인하시고 전화를 주셨다.
“승환아,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어.”라고 말씀하셨다. 언제나 말씀이 들려오면 정반대의 형편이 일어나 전쟁을 한다. 나는 항상 이 싸움을 이길 힘이 없었는데,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다.
일본 국제 콩쿠르에서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떨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음이 지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원들이 그런 나를 겨울캠프에 데려갔다. 내 공연을 잡아 두었는데, 마음에선 연주할 힘이 하나도 없었다. 무대를 앞두고 박 목사님을 만났다.
“콩쿠르는 잘했어?”
“네. 근데 떨어졌어요.”
“그래, 실수 많이 했어?”
“네.”
“승환아, 넌 세계 최고야.”
“네….”
“넌, 세계 최고야! 알았지? 넌 세계  최고야!”
그렇게 말씀하시고 강단에 올라가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석승환은 세계 최고라고, 국제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셨다. 목사님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에 마음을 모았다.

어려운 일들은 원래 한꺼번에 닥쳐오는 건지, 갑자기 손가락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중지손가락에 마비가 오면서 심한 통증이 있길래 류마티스인가 의심했다. 그간 무리한 연습으로 손상이 심하게 온 것 같았다. 손의 마비로 피아노를 칠 수 없자 마음이 많이 어려웠지만 목사님과 합창단의 기도 덕분인지 2주 후에 거짓말처럼 회복되었다.
일본 콩쿠르 실패와 손가락 마비는 나에게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선생님이 내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승환아, 어떻게 하면 덜 치면서 더 듣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까?” 이는 치려는 노력을 줄이면 귀로 연주하게 되는 경지를 알게 된다는 말씀이었는데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을 본의 아닌 게 지나면서 그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선생님은 일본 콩쿠르의 성적을 떠나서 오히려 나의 실력이 늘고 소리가 훨씬 깊어졌다고 하셨다.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은 나의 실력을 넓혀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너를 절대 버리지 않으셔
8월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 본선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같은 큰 콩쿠르는 서류심사를 먼저 거치기 때문에 수상 경력이 많이 필요하다. 2018년부터는 군대 문제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 수상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은 2017년이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2017년에 여러 콩쿠르에 도전했지만 더 많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8월에 독일 콩쿠르에 온 마음을 쏟아 부었다. 그 이후엔 참가할 콩쿠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 마음을 쏟아 잘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상황은 점점 반대로 치달았다. 게다가 아프리카 월드캠프에 참여해야 해서 콩쿠르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캠프를 마치고 나니 준비할 시간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

한번은 뉴욕에 있을 때 박영국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탄은 나쁜 기억만 남기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17년에 아프리카 월드캠프와 독일 국제 콩쿠르는 하나님이 참 많이 일하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나를 너무나 어렵게 하는 것들만 마음에 담았다. 그래서 소망을 다 빼앗겼다. 독일 콩쿠르에서도 떨어지면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내놓을 경력도 없고, 더 이상 참가할 콩쿠르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몇 개월 후면 군대 문제로 해외 출국도 힘든데…. 막막하기만 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소망이라고는 없었다. 희한하게 마음에 소망이 사라지니까 그 자리에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
‘어차피 되는 일이 없는데… 마음 꺾고 교회에 있으면 뭐해?’
‘차라리 군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거나 마음껏 해봐야지.’
‘하나님은 사울도 왕으로 세우셨다가 버리셨잖아. 나는 믿음도 없고 육신적이니까 똑같이 버리실 거야.’
마치 돌부리에 걸린 듯이 한 가지 생각에 걸려 넘어진 나를 사탄은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끌고 갔다. 사울처럼 나도 버려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도우시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실 때 하나님의 종 사무엘을 통해 명확히 말씀하셨어. 나도 박옥수 목사님과 박은숙 단장님에게 한 번 물어나 보자.’
문득 목사님과 단장님에게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옥수 목사님은 “승환아, 콩쿠르는 또 나가면 돼. 그리고 떨어져도 봐야 돼. 네가 잘해도 상을 안 줄 수도 있어.” 박은숙 단장님은 “하나님은 너를 절대 버리지 않으셔.”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먼 두 분의 말씀은 죄로 달려가는 나를 붙들었다. 

 

승환아, 콩쿠르는 또 나가면 돼
몇 달 뒤,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나서 콩쿠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해외에 나가지 않고 연주 영상만 제출해도 되는 국제 콩쿠르를 찾았다. 우승하면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된다고 했다. 군대 문제로 내년엔 해외에 나갈 수 없지만 ‘혹시 카네기홀에서 하는 공연이라면 국외여행 허가를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카네기홀 연주가 3월 14일이면 3월 초에 있는 여동생의 미국 마하나임음악원 졸업식에도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어서 군복무가 면제되는 콩쿠르도 찾아서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장님에게 말씀드리고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지내며 콩쿠르준비를 시작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군대 문제에서 내가 풀려났구나. 그럼 해외에 다닐 수 있고, 콩쿠르에 나갈 수 있겠구나!’
예수님이 나사로를 향해 하신 말씀이지만, 군대 문제로부터 나도 풀어놓으셨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나님은 여전히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향해 나를 한 부분 한 부분 이끄시고 계셨다.

약속을 향해 끝까지 나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병무청으로부터 2018년 1월 19일에 입영하라는 통보가 날아왔지만, 12월에 신청한 자격증 시험으로 인해 당장 입영해야 하는 날이 약간 미루어졌다. 입영 연기 신청을 하는 중에 담당 직원으로부터 2018년부터는 자격증 시험이 있더라도 연기하는 것이 없어진다면서 2017년 12월이라 가능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콩쿠르에 참가도 못 해보고 꼼짝없이 입대할 뻔했는데,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2018년 1월, DVD를 제출한 뉴욕의 국제 콩쿠르에서 내가 1등이라는 소식과 3월에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문제는 군대 문제였는데, 해외여행을 허가받기 위해 카네기홀 연주 초청 이메일과 신청서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무청을 찾아갔다. 감사하게도 3월까지는 해외에 다녀올 수 있게 해주어서 3월에 있는 뉴욕 CLF에서 하는 공연과 동생의 졸업식까지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고 계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해외 연주 기회를 주는 콩쿠르에 더 많이 참가하기로 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콩쿠르. 우승하면 비엔나의 자존심격인 무지크페라인에서 연주하게 된다. 박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 “콩쿠르에 또 나가면 돼.” 그리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말씀이 나를 이끄는 것을 느꼈다. 이번 콩쿠르에서도 1등이었다. 비엔나 연주는 4월 중순에 있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병무청에 다시 기간 연장 신청을 하러 갔고, 은혜를 입어 4월까지 해외에 나가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참에 국제 콩쿠르들에 다 나가야겠다 싶어 닥치는 대로 참가했다. 그리스 아테네 콩쿠르 1등, 사라예보 1등, 독일 베를린 3등, 스웨덴 스톡홀름 2등….
4개월간 6개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제출할 수상 경력으로 현재 국제 콩쿠르 1등만 5개가 채워졌다. 얼마 전만 해도 아무리 도전해도 안 되던 형편은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4개월 만에 많이 변해 있었다. 그 뒤 입영 일자가 2018년 6월 19일로 정해졌다지만, 하나님은 7월에 있는 스바보드나와 월드캠프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방법으로 연기시켜 주셨다.
가로막는 형편이 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약속하셨고, 지금처럼 반드시 약속을 향해 끝까지 나를 이끌어 가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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