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우리가 기억할 아이티는 복음으로 불타올랐던 이 순간일 것이다
훗날 우리가 기억할 아이티는 복음으로 불타올랐던 이 순간일 것이다
  • 이한솔(아이티 선교사)
  • 승인 2019.01.2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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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이야기
2019년 1월호

이 나라에 복음이 덮이고 평화가 함께하기를…    2018년 11월 18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에 불만이 쌓인 시민들은 이틀 전에 40여 명이 사망한 총격전을 벌였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어제와 오늘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총소리에 가장 빨리 몸을 숨긴 건 경찰들이었다.
학교와 주유소,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차 한 대 다니지 않았다. 수도 포르토프랭스로 가고 있던 나는 도로를 굳게 막은 나무들 까닭에 차를 다시 돌려야 했다. 계획이 틀어졌다.
사람들은 탄핵과 혁명을 외치며 총과 화염병을 들었고, 거리는 성난 군중들을 대변하듯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들에게 최후의 무기는 죽음이었다.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 싸구려 전자피아노를 구입했더니 서로 배우겠다며 매일 우리 집에 오던 열정 가득한 학생들이, 제대로 된 음악 선생님 없이 내 아내가 가르치는 합창 연습 시간에 목청껏 노래하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고작 그 또래의 아이들이 화염병을 들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총알을 피해 숨어야 한다는 사실이.
하루에 40명이 넘게 죽었지만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선교사라고 왔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 앞에서 긴장한다. 이런 나를 위해 노심초사 나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과 교회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제는 내가 저들을 위해 기도할 차례가 아닐까. 무릎 꿇고 기도한다. 이 나라에 복음이 덮이고 평화가 함께하기를….

 

멀어 보이는 이 길로 나를 나아가게 한다                       11월 20일
유리조각과 돌멩이들이 도로 위를 덮었고, 스산한 거리에는 장갑차와 순찰차만 겨우 돌아다녔다. 총소리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도 했지만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고, 아이들은 빈 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공을 가지고 뛰어놀았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 갇혀 지내던 녀석들에게 텅빈 도로보다 좋은 운동장은 없으리라.
평소 늘 보이던 유엔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치안이 불안한 시국에 그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모두 미국 대사관 근처에 모여서 미국인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아이티에 와 있는 것일까? 불안감에 외국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부패한 정부를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엉켜 있는 분노와 한은 무엇으로 풀어줄 수 있을까?
폭동과 데모,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들을 알리는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내 핸드폰으로 전송되어 왔다. 나는 까이에서 수도까지 차를 몰아서 가는 네 시간 내내 핸들을 쥐고 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도로가 하나밖에 없기에, 전송되어 온 정보에 의하면 나는 아주 위험한 곳을 지나고 있었다. 도로에는 불타고 남은 타이어 재와 한쪽으로 치워놓은 돌무더기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가늠하게 했다.
시민들은 이제 데모할 때 막아놓았던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고, 고맙게도 내가 지나갈 때면 바리케이드를 열어 주었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다 말고 한쪽으로 비켜 주었고, 듬성듬성 지키고 서 있던 경찰들은 걱정하지 말고 가라며 격려해 주었다. 핸드폰으로 받은 메시지에 담긴 아이티와 내가 지나온 아이티는 달랐다.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일까?
지금 아이티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이렇게 살다가 죽기도 하고, 늘 고통과 불안을 안고 사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복음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치안을 유지해야 할 유엔군은 손을 놓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에 ‘이방인을 믿지 않는다’는 이곳 사람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다. 나는 종종 거리로 나가는 것도, 이방인을 거부하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두려웠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이다. 나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왔기에 주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를 지켜주지 않으신 적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마음에서 모국이 된 우리 아이티를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많은 분들이 나를 멀어 보이는 이 길로 나아가게 한다. 이제 나도 이 땅에서 사람들의 상처가 복음으로 싸매지고 아물기를,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밝게 웃는 사람들로 이 나라가 가득 채워질 날을 꿈꾸며 기도한다. 그것이 이 땅에 선교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오늘도 복음을 전한다.

 

그날 복음을 외치며 가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른다    11월 27일
닷새 만에 전기가 들어왔다. 다행히 나라가 조금 안정되어 8일 만에 아이들은 학교로, 사람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전기 없는 대낮은 숨막히게 더웠고, 전기 없는 밤하늘은 숨막히게 반짝였다.
쿠데타라도 일어나려는 걸까,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스산한 거리. 지난 일요일, 이런 상황에서 예정되어 있던 ‘가정의 달 행사’를 홍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0미터 밖을 나가지 못할 정도였고, 길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불안감이 가득해, 이런 시국에 사람들이 과연 오기나 할까 싶어서 행사를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다고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는 게 마음에서 불편했다. 한 사람이 오더라도 마음을 다해 준비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학교는 모두 문을 닫았지만 학생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매일 성경공부를 하고, 합창과 공연 준비를 했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드디어 일요일,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세 시가 되었지만 한 사람도 앉아 있지 않던 예배당이 네 시가 되자 백 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큰 맘 먹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난, 그날 복음을 외치며 가슴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른다. 나같이 형편없는 사람이 이 귀한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받아 영광스러운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이 한없이 감사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더위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딸 하늘이가 밤하늘에 가득 뿌려진 별무리를 보며 감동해 “우아!” 하더니 한동안 꼼짝 않던 모습이 생생하다.
훗날, 우리가 기억할 아이티는 불타올랐던 타이어들이 가득한 거리가 아니라, 복음으로 불타올랐던 이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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