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 하나님의 뜻을 떠나 도망친 요나, 나 역시 그러했지만...
군대 이야기 | 하나님의 뜻을 떠나 도망친 요나, 나 역시 그러했지만...
  • 김도현(아르헨티나 기쁜소식부에노스아이레스교회 선교사)
  • 승인 2019.02.1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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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2019년 2월호
선교사 수기 (제2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시험이 들었던 김 선교사는 도망치듯 군에 지원했다.

그곳에는 구원받은 사람도 없고 하나님도 모르실 거라고 확신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도망쳐간 그곳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셨고, 구원받은 많은 형제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며 그의 마음에 다시 소망이 가득 찼다.

 

내가 갈 곳은 군대밖에 없었다
1987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당시 나는 시험에 잔뜩 들어 있었다.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한전에 입사하는데, 나는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아 학교 생활에 소홀하다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선교학교에 들어가려 했으나 믿음이 없었다. 마음이 혼돈 속에 빠졌다. 갈 곳이라고는 고향밖에 없었지만, 나를 많이 기대했던 가족과 이웃을 볼 낯이 없어 고향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교회에 다녔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신앙 때문에 핍박과 억울한 일을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올라와 모두 다 잊고 싶었다. 결국 내가 갈 곳은 군대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병무청에 가서 무조건 복무 기간이 제일 긴 하사관을 택해 공군하사관에 지원했다. 그해 6월, 대전 공군부대 교육사령부에 들어가서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너, 구원받았지?”
군대에 가면 교회도 복음도 다 잊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 줄로 생각했다. 군대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후 내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훈련소에 들어간 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였다. 구보 훈련을 하고 학과장에 도착해 다들 힘들어서 숨을 헐떡이며 대부분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성경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성경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이단 종교를 믿는 사람이거나 구원받은 사람일 건데, 설마 이곳에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구원받은 사람들을 피해서 군대에 왔는데 여기서 구원받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그가 누구인지 다가가서 보니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어 보이는 동료였다. “너, 구원받았지?” 하고 묻자 그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단이거나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신앙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싶었기에 그를 만난 것도 우연으로 돌리고 싶었다. ‘이건 우연이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훈련받는 6개월 동안 그를 통해 매달 월간 ‘기쁜소식’을 받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수양회에 가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빨리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 12월, 드디어 하사관 임관식을 마치고 대구 공군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군인 전용 열차를 타고 가면서 ‘내가 대구로 가는 것은 아무도 모를 거야. 나도 생각하지 못했거든. 하나님도 모를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대에 배치받고 얼마 후 그 생각도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식당을 향해 가고 있는데 식당 입구에서 어떤 모습이 내 눈에 크게 확대되어 들어왔다. 부대 밖에서 거주하는 중사 한 분이 자전거를 탄 채 식당 취사병에게 어떤 물건을 전해 주는데, 물건의 색깔이 눈에 많이 익었다. 흰색과 파란색의 조화를 이룬 카세트 테이프 세트. ‘저건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 테이프인데…’ 가슴이 철렁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일 텐데…. 여기에도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서도 기다리고 계신 것인가?’ 불안했다.
식당에 들어가 점심 배식을 받는데 조금 전에 보았던 그 취사병이 배식을 하고 있었다. “자네, 교회에 다니는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물었다. 취사병은 나에게 교회 주소를 적어 주었고, 그때부터 그는 식사 때마다 나에게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다른 군인들보다 좋은 반찬을 두 배로 주고, 고깃국이 나오는 날이면 다른 군인들의 식판에는 고기는 없고 국물만 가득한데 내 국에는 고기가 가득했다. 그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도망쳐서 여기에 왔는데 하나님은 여기까지 나를 따라와서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것을 거절하면 진짜 버림을 받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토요일 오후에 그 취사병에게 찾아가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교회에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일단 나 자신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취사병이 지금 기쁜소식한밭교회에 있는 조규윤 목사다. 그리고 그 취사병에게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전해 주었던 사람은 지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선교하고 있는 김범섭 목사다.

난생처음으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어
대구 공군부대에는 선교학교에 찾아가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조규윤 일병과 대전에서 구원받고 내려온 김범섭 중사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구원받아 모임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요나 선지자처럼 교회와 복음과 하나님을 피해 군대에 왔는데 그곳에서 구원받은 많은 형제들을 만났다. 그리고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임을 갖자 자연스럽게 부대 상관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려고 신청했던 정기 휴가가 군목의 방해로 취소되어 군목에게 항의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난생처음으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어 군대 유치장에서 삼 일을 지냈다. 무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없고 밤에 전등도 꺼주지 않아 하루 종일 벽을 보고 반성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처음에는 몹시 난감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마음이 어려웠다.
그러다가 주위에 있는 다른 군인들을 보았다. 대부분 방위 생활을 하는 군인들로, 술을 마시고 싸우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운전하다 사람을 치는 등 사고를 내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나도 교회를 떠나 세상에 있었다면 그들과 같은 죄명으로 철창 신세를 질 수 있었는데, 신앙 때문에 갇힌 것은 큰 영광이란 마음이 들었다. 한 번도 가져 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핍박을 피해서 온 군대에서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큰 감사를 느끼게 하고 마음에서 핍박을 넘게 하셨다.
주님은 나 같은 형편없는 자를 구원하려고 거룩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희생하셨는데, 죄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이 몸으로 주님과 복음 때문에 희생하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이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가득 채워져 그렇게 기쁘고 감사하며 행복할 수 없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받는 작은 고난이 내 마음을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하고 감사하게 했다. 주님을 위해 더 큰 고난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도 기꺼이 가고 싶어 기도했다.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며칠 후 무죄로 풀려 나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그때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선교사가 되게 하신 것이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매일 점심때와 주일에 모임을 가지며 교제하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 부대에서 구원받은 조규윤, 김범섭, 심승환, 이강욱, 한형수 등이 지금 사역자로 복음을 섬기고 있고, 구원받고 부대에 들어온 송무성, 김상수, 최태영 형제들도 제대한 후에 선교학교에 들어가서 사역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구원받은 많은 형제들이 지금도 부대에 남아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나님과 교회에 엄청난 빚을 진 자였음을 알았다
핍박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사로 진급하고, 교회의 인도로 당시 대구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명옥 자매와 결혼했다. 이후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받게 하셔서 내 마음에 큰 감동과 행복을 주셨다,
한번은 부대에서 족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대구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다. 제대를 석 달 앞두고 일어난 일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아내와 생후 4개월 된 어린 딸을 집에 두고 병원에 두 달간 입원해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어려웠는데, 매일 성경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내가 구원받고 교회의 인도를 받으며 지내온 시간들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과 교회에 엄청난 빚을 진 자였음을 알았다. ‘나 한 사람 구원받고 교회의 인도를 받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전도자들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형제 자매들의 교제와 기도와 교회의 희생이 있었던가…. 이 큰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라는 마음을 처음으로 가졌다.
그때 열왕기하 4장 7절에 나오는 선지자 생도의 아내에 관한 말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나는 생도의 아내처럼 교회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떠난 자였는데, 이 말씀은 ‘교회를 통해 받은 기름 한 병이 내 빚을 갚고 내 생활도 충분히 책임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얼른 성경을 덮었다. 복음 전도자의 길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애써 무시해 보려고 했지만 말씀이 마음을 계속 두드렸다.

 

내가 통합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제대를 앞두고 장래에 대해 고심하면서 전도자의 길은 부담스러워 직장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통합병원에 입원하게 하여 내 마음에 일하시기 시작했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 45:5)
하나님은 분명하게 나에게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다. “하나님 좋습니다.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있는 이 병원에서부터 약속대로 일해 주십시오. 빈 그릇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러면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때부터 하나님은 병원에 입원한 육군과 특전사 등에서 온 다양한 군인들에게 매일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사람들이 구원받아 병원 안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다.
지금 기쁜소식수원교회에 있는 김정수 형제와의 만남은 신기했다. 그때 그는 육군 보병이었다. 형님이 기성 교회 목사였지만 그는 종교생활에 지쳐 있었고, 침상에서 잠들기 전 매일 죄를 씻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단순하게 복음을 전했는데 구원받고 늘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 귀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는데 내가 이제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하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신기하다. 내가 통합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공군이었던 나와 육군이었던 그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은 병원에서 생활하는 두 달간 내 마음을 복음으로 가득 채워주셨다.
부대 안에서 핍박이 많았지만 복무를 마치고 부대 정문을 나올 때 하나님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였다’는 마음을 갖게 하셨다. 핍박이 두려워서 피해 도망간 군대였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했고, 구원받은 여러 형제들의 환송을 받으며 5년 9개월 간의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대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복음을 전하며 지냈던 젊은 시절이 복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기쁜소식선교회에서는 해외 200여 개의 교회에 230여 명의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아르헨티나 김도현 선교사의 수기를 연재합니다. 선교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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