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없이 주시는 구원과 축복
값 없이 주시는 구원과 축복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9.02.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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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2019년 2월호
믿음에 이르는 길 |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14편 은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병만 낫게 해주시면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2절부터 보면, 우리는 본질이 진노의 자녀이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이 3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더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4절부터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4~7)
우리를 구원하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온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완벽하게 이루신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 없이 주셨습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값 없이 주는 것이기에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에도 모든 것을 값 없이 주셨습니다. 생명도, 눈 코 입 귀도 다 값 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떤 사람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서 박옥수 목사가 찾아가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병만 낫게 해주시면 재산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박옥수 목사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하나님께 재산의 반을 드리겠다는 성의는 좋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장사꾼이 아니어서 대가를 받고 무엇을 주었다는 소리 듣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러니 재산의 반을 드리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 은혜로 고쳐 주세요’ 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거나 잘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햇빛을 주시고 돈을 받지 않습니다. 햇빛 값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논 5천 평에 햇빛 값 하루 만원, 담요 말리는 데 천원, 와이셔츠 말리는 데 오백원…. 그러면 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기도 공짜입니다. 돈이 없어도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도 값 없이 주셨고, 우리 죄도 값 없이 씻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잘 모르기에 신앙생활을 자기가 잘해서 축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신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렇게 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데 대가를 지불하고 받으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을 때 100원이든 1원이든 대가를 지불하면 그것은 은혜로 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잘해야 한다’는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중세 시대에 수도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으로 죄와 육신의 정욕을 이기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웅덩이를 파서 거기에 갖가지 벌레들을 집어넣은 뒤 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벌레들이 물고 쏘고…. 그 고통을 견디면서 욕망과 정욕을 이기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시가 있는 옷을 입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그렇게 살았지만 죄를 해결하지 못해 고통하다가, 어느 날 로마서를 읽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나 대신 죄의 형벌을 받아 내 죄가 다 씻어졌다. 나를 의롭게 하셨다. 내 행위와 상관없이 나를 거룩하게 하셨다.’ 루터는 그 사실을 믿어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값 없이 내 죄를 씻어서 나를 구원하신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외쳤습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은혜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목회자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십계명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이전처럼 되돌아간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미국에서 선교하다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알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듣던 중에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은 우리 행위와 상관없구나! 예수님이 이미 내 죄를 사해 나를 의롭게 하셨구나!’ 그의 마음에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그후 웨슬레는 ‘구원은 우리 수고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값 없이 믿기만 하면 된다’고 외쳤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웨슬레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아 변화되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다시 믿음에서 점점 떠나갔습니다. 설교자들이 또 ‘천국에 가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헌금해야 한다, 충성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 등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는 늘 죄를 짓고 신실하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너무 잘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값 없이 받는 구원을 잘해서 받으려고 하기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등은 구원받지 못하고, 간음하다 잡힌 여자나 세리 삭개오 같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을 행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행위와 상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분명히 이루셨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내가 잘해서 받으려고 하니까 신앙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체 안에 있으며, 육체에서는 늘 먹고 마시고 쉬고 즐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죄에서 건지려면 법이 아니라 은혜를 전해야
몇 년 전에 박옥수 목사가 중국 묘족 마을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묘족은 아주 깊은 산속에서 삽니다. 옛날에 묘족의 조상들이 전쟁에서 패해 산속으로 쫓겨가 거기서 오래 살다 보니 산山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았는데, 100여 년 전에 어느 영국인 선교사가 들어와서 세수하는 법, 이발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마을에 그 선교사가 세운 교회가 있고, 주민의 80퍼센트가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범죄가 계속 일어나 교회를 인도하는 장로가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고 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율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만들지 못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야 합니다.
박옥수 목사가 그 마을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을 젊은이들이 죄를 사함받고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죄를 짓고 저런 죄를 지었는데, 그 죄를 다 사함받아서 기쁩니다. 제 마음이 죄와 멀어졌습니다.” 사람들을 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값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가 변합니다.
신앙생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법으로 하는 신앙생활이고, 하나는 마음으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십계명 등 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법을 어겼습니다. 반대로 남녀가 사랑하는 것이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하라고 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는데도 부모가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려면 법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거룩해지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삶을 바꿉니다.


이제 예수님이 일하게 하라
박옥수 목사는 자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무엇을 잘했거나 충성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더럽고 멸망을 받아야 할 인간이었는데,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예수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신 것을 믿고, 내 생각을 버리고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들인 것밖에 없는데, 그날부터 내 삶에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에게 사로잡혀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갈 것을 보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전부를 예수님이 책임져 주시고, 우리의 죄나 연약함이나 병 등 모든 것을 맡아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일하지 말고 예수님이 일하게 하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다 씻으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과 한 마음이 되고, 그때부터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의 은혜로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값 없이 주시기 때문에 ‘은혜’라고 합니다. 일한 대가로, 잘한 대가로 받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상은 잘하거나 뛰어난 사람들에게 주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값 없이 주십니다. 우리가 악하고 추해도, 부족하고 잘못해도, 변덕이 심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 죄를 다 씻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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