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이 흙 속에서 드러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마지막 때를 살며
기쁜소식이 흙 속에서 드러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마지막 때를 살며
  • 김영숙 (예주교회 목사)
  • 승인 2019.03.21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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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2019년 3월호
국내 목회자 간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의 첫 번째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34절의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으로, 용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 놓으신 용서. 그 고결한 축복을 내가 아멘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는 인간이 한 일과 하나님이 하신 일의 차이 만큼이나 비교할 수 없고, 영혼의 소재지가 확정되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세요
완고하고 독선적이셨던 아버지의 슬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결정했던 결혼. 모든 것이 암울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엉터리였습니다. 제가 했던 결정들은 다 엉망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향하여 살아야 하는지 저에게 답을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제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물음들에 대한 답을 주시고,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을 함으로 결혼 한 달만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 전도사님이 새신자라고 심방 왔을 때 그분을 따라서 했던 영접기도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좋은 의미겠지’라고 생각했고, 언니나 엄마 같은 교회 분들이 따뜻하고 정겨워서 좋았다. 
그 즈음 내 안에서 두 가지 물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어떤 것도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이 질문의  갈급함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수님, 성령님을 알 수 있고 진짜 믿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어 늘 기도했다.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생각지 않았던 셋째 아이가 들어선 뒤, 나를 각별히 대했던 시댁 식구들의 눈꼬리가 올라가고 아이를 없애라고 난리였다. 내가 듣지 않자 누명을 씌워 아이들과 집과 돈을 빼앗고 남편을 데리고 가버렸다. 나는 무일푼으로 길거리에 쫓겨난 신세가 되었으며, 내 편에 서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모든 것이 없어져버리고 기댈 곳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되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빼앗긴 엄마의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나는 하나님의 인도로 시댁으로 들어가서 함께 살았다. 상상을 초월한 예수 믿는 것에 대한 핍박과 진한 고통 만큼이나 느껴지고 경험되는 하나님 임재의 신기한 체험들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성경과 신앙 서적들을 마구 읽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시댁 식구들은 아이들을 신앙으로 키우겠다는 나를 정상이 아니라며 정신병원에 넣어야 한다고 협박도 많이 했다. 대학에 근무하셨던 친정아버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은 돈과 바꿀 수 없고, 결코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으로 나를 키우셨는데, 시댁은 서울의 어느 유명 시장에서 35년 동안 새벽부터 장사만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그 가치관의 차이는 마치 남극과 북극의 거리 만큼이나 달랐다. 
벌겋게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콩을 볶아대던 것 같았던 연단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이 피할 길을 열어 주셔서 분가했다. 남편은 여전히 효도를 강요하며 힘들게 하고 시댁의 간섭과 요구도 여전했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나를 지키시고 사랑하신다는 믿음은 ‘예수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 당시 불일듯 일어났던 전도 단체에서 전도 훈련을 받으면서 신학을 공부했고, 서울에 있는 어느 대형 교회에서 교구 담당 전도사, 이어서 지교회의 담임 교역자 생활을 시작했다. ‘전도는 하나님의 종합적인 축복 선물세트’라고 외치는 교회에서, 집집으로 파고들어 성경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확립시키는 사역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가졌다. 

이 기막힌 기독교계의 현실 앞에서 
하지만 ‘예수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과 권세를 가졌으니 이 구원의 축복은 영원하다’면서,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삶에 둔감해지는 교인들을 보면서 혼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왜곡된 구원론을 외치면서 교인들을 뻔뻔한 자들로 만들고 있다는 자책도 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실제가 없는 ‘신념적 구원관’의 맹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 끝에 교회에서 맡은 유명 인사 새신자 담당과 지교회 담임 직책을 내려놓았다. 
그후 집으로 찾아온 집사님들의 요구와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좇아 교회를 개척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을까? 변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안고 해답 없는 목회를 한 결과 많은 물질을 없애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기독교계의 민낯을 보는 시간들이었다. 복음의 내용이 없는 부흥사들의 외침은 허상이었다. 곧 하나님 앞에 설 나이 많은 목사님들의 영적 상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돈만이 목적이었던 시부모님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당하지 않았던 배신과 사기 등은 평신도가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 기막힌 기독교계의 현실 앞에서 목사라는 직분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놓쳐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탈감과 우울함이 찾아왔다. 잡은 것도, 이룬 것도 없이 맞이해야 하는 인생 60년이라는 허망감은 나를 몹시 괴롭혔다. 울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인간적인 재미도 기쁨도 즐거움도 없었던 내 인생은 무의미 그 자체였다. 

김 목사, 나 구원받았다! 
어느 날, 같은 노회의 한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목사, 나 구원받았다! 죄 사함 받았다!”
“언젠 구원 안 받으셨어요? 어디서 구원파 만나셨구만.”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고백과 반응이었다.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었지만 나에게는 없었다.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서 어떻게 복음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후배 목사에게서 전화로 전해들었어. 듣다가 중간부터 녹음해 놓았으니 와서 들어봐.”
단숨에 달려가서 들어 보니, 정확한 죄 사함의 복음이었다. 며칠 후 그 후배 목사님을 교회에 초빙해서 몇몇 목사님들과 함께 말씀을 들었다. 창세기 40장에 나오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 복음을 어디에서 들었냐?’고 물어보았지만 이야기를 정확히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기쁜소식 선교회 박옥수 목사님은 이단이 아니며,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예요. 기독교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라고 했다. 자신도 인터넷 설치 기사에게 전도하려고 했다가 그 평신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놀라서 뛰어가 본 곳이 기쁜소식선교회였다고 했다. 
당장 인터넷으로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 몇 편을 들어보았다. 복음이 확실했다. 이단이 아니었다. 만약 설교에 이단적 내용이 담겨 있다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설교를 공개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정확한 복음이니 마귀가 조용히 내버려둔다면 그게 비정상이지.’ 기쁜소식선교회 홈페이지에서 집회 일정을 확인해 보니, 기쁜소식인천교회에서 집회가 있었다. 곧바로 참석했다. 

죄 사함이 믿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 생명의 샘물이 터져 올라왔다 
집회에 참석해서 박옥수 목사님과 만났다. 짧은 면담이었지만, 내면에 숙제처럼 깔려 있었던 죄 사함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예수님이 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영원한 단 한 번의 속죄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나도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고 선포하고 가르쳤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조직신학적, 교리적,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믿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지은 죄들이 여전히 내 마음에 기록되어 나를 정죄하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레 4:30)
믿음으로 내 마음에 예수의 피를 쏟아부을 때 해결되는 마음판에 새겨진 죄! ‘하나님의 영원계’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의 시간계’에서 인류가 지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해결된 것이 깨달아졌다. 죄 사함이 믿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 생명의 샘물이 터져 올라왔다. 강하고 찬란한 빛 같은 샘물이 용수철처럼 터져 올라오는 순간, 그 기쁨과 환희와 감격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전도하고 싶고, 기도하고 싶고, 말씀을 읽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자기 전체를 부인하는 회개, 말씀을 바탕으로 믿어지는 죄 사함, 동시에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의 임함,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 거듭남이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한 것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이전에 나는 ‘예수를 영접했으니 구원받았다’고 믿고, 그 다음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라는 물음은 안고 살았다. 그래서 성령을 받기 위해 애쓰며 금식하고 집회를 쫓아다니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방황,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죄인임을 강조하는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를 늘 외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라는 복음은 희미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죄 문제에 걸려 신음하였다. 죄인의 상태에서 입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과 권세를 가졌다고, 의롭게 되었다고 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이 기막힌 복음! 하나님은 당신의 최고의 선물, 거룩한 성령을 말씀 그대로 나에게 주셨다. 2018년 5월의 축복된 어느 날이었다. 

마무리된 이전 시절의 고통과 새로운 삶
사람들에게 꽤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양육시킨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나는 복음의 실제가 없는 지식이 오만과 편견을 가진 바리새인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바리새인이었던 나는 모래 위에 세워 놓은 자신마저 무너져내려야 하는 심판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 이로써 이전 시절의 고통은 마무리되었다. 
구원받은 후 많은 변화들이 이어졌다. 10여 년 동안 애를 태우던 집 매매 문제가 해결되었다. 기도하던 중에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문제다’는 믿음이 강하게 생겼고, 바로 계약되었다. 성령의 인도로 죄를 미워하고 밀쳐내는 힘이 내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룩하고 강한 어떤 힘의 도우심을 느끼는 것이다.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신다. 간혹 기특한 행동이나 선택을 한다 해도, 내 유익을 챙기며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사악한 내 모습을 직시하게 하신다. 선한 행위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 성화는 우리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함으로써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성품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임을 알아가게 하신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임(고전 2:16)을 알아가게 하신다.

구별된 귀한 시간 CLF(기독교지도자모임)
구원받은 후 내가 귀하게 여기는, 구별된 시간이 있다. 매주 월요일에 갖는 CLF(기독교지도자모임)다.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가운데 복음이 더욱 정립되고, 모임을 갖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갖게 된다. ‘구원받았으니 그냥 복음을 전하면 되지’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착각이다. 그동안 신학과 많은 지식으로 인해 선명하지 못했던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CLF에서 분명히 정리되고 신앙생활에 적용된다. 
첨가되는 기쁨이 있다면, 지역에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교회들을 방문하여 그곳 목회자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육된 목회자들의 모습과 영성은 한국과 세계 기독교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한다. 명분뿐인 거대한 한국 교회의 건물들이 텅텅 비는 시간들이 온다 해도 올곧이 서서 복음의 자태를 빛내며 사명을 감당할 잘 다듬어진 강력한 교회, 목회자, 성도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온갖 음해와 핍박 속에서도 굳건히 견뎌내던 초대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하나님의 사랑이 옛 사람을 녹아버리게 한다
생각해 보면 인생이라는 무대는 연출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허락된 공간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우상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적인 자들, 교리적이고 자기 신념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허상에 잡혀 있는 자들, 돈이 하나님인 자들…. 이런 사람들은 나를 몹시도 아프고 힘들게 했다. 그들로부터 세상을 돌아볼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였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나와 나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나의 주라 고백하며 기도하곤 했다. 
내 인생에 출연했던 모든 사람들, 사건들, 환경들, 그리고 숨이 막히도록 조여오던 절망감들과 완전한 실패,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은 나를 만지고 계셨다. 나의 소망은 오직 복음을 깨닫고 전하는 것임을 마음으로 고백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나’였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이 있었던 것이다. 구원받기 이전에 나는 예수님을 믿는 기적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경험했으며, 신비한 체험들도 했다. 이러한 체험들은 나의 전적 타락과 무능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써 회개케 하기 위한 시간들로 주어졌을 뿐이었다. 
구원받았지만, 때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옛 사람인 내가 슬며시 살아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죽으셔야 했던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를 생각나게 하시고 묵상하게 하신다.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도 모르고 악한 자로 쓰임받은 자들을 용서하게 하신다. 나도,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어야 할 자임을 믿고 고백하게 하신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사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옛 사람인 나를 녹아버리게 한다. 

자신이 죽고 예수님이 사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다른 한 가지 사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 나무와 같은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를 씻음받고도 여전히 자신이 살아있으며, 자신이 사는 동안에는 죄에 종노릇하며 그 쓴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위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결국 ‘자기 의’라는 죄를 더할 뿐인 것이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7) 우리가 죄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악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나는 기쁜소식선교회에서, 자신이 죽고 예수님이 사심으로 나타나는 여러 역사들을 즐겨 보고 듣는다. 선교회를 이끄시는 박옥수 목사님의 삶의 여정은, 복음 때문에 받은 핍박과 환희로 쓰여진 역사들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참 백성으로 돌아오길 소망하며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백기를 들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성령이 내 밖에서 그 때와 그 장소에서 구별되게 역사하신 일들이었다. 그 과정을 거쳐 나는 성경대로 구원받았고, 이제는 성령이 내 마음에 계신다. 나와 같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을 맛보며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참 백성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사람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진리를 인간의 거짓말로 가릴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살아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성 교단의 신실한 목회자들이 복음을 깨닫고 외치는 기쁜 소식이 흙 속에서 드러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마지막 때를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든지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구원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를 성령으로 인도하신다.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자들을 기쁘게 받으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성취되도록!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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