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중남미 온 땅에 복음을 전하자
우리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중남미 온 땅에 복음을 전하자
  • 김도현(아르헨티나, 기쁜소식부에노스아이레스교회 선교사)
  • 승인 2019.05.0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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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호
선교사수기 제5화

멕시코에서 가진 첫 번째 대전도집회에서 하나님은 중남미에
텔레비전 방송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큰 뜻을 나타내셨다.
그로 말미암에 방송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와 죄 사함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김 선교사에게 하나님이 도우시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허락하셨다.

 

엔라세 방송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
2003년 9월,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박옥수 목사님을 초청하여 대전도집회를 가졌다. 나는 집회를 알리기 위해서 수천 장의 전단지를 가지고 지하철역에 나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5천 장의 전단지가 2시간 만에 뿌려졌다. 전단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방식으로 대전도집회를 알리는 것이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멕시코 유일의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갔다. 사장님을 만나 대전도집회를 알리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저렴한 가격으로 광고해 주기로 했다. 집회 장소가 멕시코시티 외곽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던 날 우리는 깜짝 놀랐다. 500석이 시민들로 가득 차고도 모자라 계단에 앉아야 할 정도였다. 시민들은 그라시아스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탄복하고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알고 집회에 왔느냐고 묻자 사람들은 대부분 라디오에서 광고를 듣고 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박 목사님은 중남미 선교사들을 모으고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중남미에 복음을 전합시다.”
얼마 뒤 박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를 스페인어로 더빙하여 방송하자고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코스타리카에 본사가 있는 기독교 채널 엔라세 방송을 통해 ‘창세기 강해’가 중남미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까지 방송되었다.

나를 훈련시키신 하나님
멕시코에 있었던 2년 사이에 세 번 이상 이사했다. 한국에서 선교비가 왔지만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선교비가 매달 오는 것이 아니어서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매달 10일 아침 6시면 아파트 주인아저씨가 문을 두드렸다. 월세를 내라는 것이다. 형제 자매들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와 멀어져 갔다. 어느 날 월세를 내지 못해 주인에게 독촉을 받고 내 발걸음은 은행 현금 지급기를 향하고 있었다. 기도하고 나서 카드를 얼른 찍어 보고 싶었다. 그날따라 은행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늘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보다 형편을 크게 여기고 살아왔던 결과,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이론은 전달할 수 있었으나 그들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삶은 가르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전하는 말씀이 가르침이 아니라 내 삶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선교비로 집세를 내고 살아보려고 음식도 물건도 심지어는 휴지 하나도 싼 것을 사려고 몇 시간씩 걸었다. 내가 멕시코에 전도하러 왔는지 살려고 왔는지 회의가 느껴졌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하든지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내가 보였다. 마치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사는 것 같았다.

선교비를 더 이상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고 살지 않은 결과가 교회를 망하게 하고 내 사역을 망하게 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은행을 향하던 발걸음을 돌이켜 집으로 왔다. 당시 선교비를 보내주던 전북 지역의 지역장 목사님에게 선교비를 더 이상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연락드렸다.
선교비를 끊자 그나마 교회에 나오던 몇 사람이 교회와 멀어지고 교회에 남아 있는 부인 자매들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하나님이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려니 내가 하나님만 의지한 적도 없지 않았던가? ‘그래, 남은 시간 한번 하나님만 의지해서 살아보자. 그렇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돕지 않는다면 그때 불평하고 시험에 들어야지.’
그때 마침 전에 집회 장소를 구하러 다니다가 보았던 큰 집이 기억났다. 그 집을 찾아가자 아직 비어 있었다.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보다 월세가 비싼 600달러였다. 주인은 보증금으로 한 달 치 월세를 더 요구했다. 다행히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 보증금에 두 달 치 월세가 들어가 있어서 그것으로 새집을 계약하고 돈을 지불했다.
마당이 있는 큰 집에 들어가는 날 자매들 얼굴에 근심이 역력했다. 나는 예배 시간에 이야기했다.
“나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이곳에 이사를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동안 하나님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지 않아서 사역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바라고 경험하고 싶어 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다만 제 삶 속에 하나님이 살아 일하시는 것을 보거든 그때는 마음을 여십시오.”
내 진심이었다.

선교비를 받을 때보다 더 풍성하게 살았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고 집회도 했다. 늘 좁은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비록 천막 아래지만 넓은 마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집회를 마치고 며칠 뒤 한 남자 분이 찾아왔다. 날짜가 지난 집회 전단지를 들고 와서는 ‘이곳이 교회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 집에 와서 성경공부를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바로 그 집에 가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그의 가족뿐 아니라 집 주인 가족까지 모두 와서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다. 그들이 교회에 나오면서 물질로 교회를 섬겼다. 그 형제 부부의 딸이 지금은 멕시코 전도자의 사모가 되어 복음을 섬기고 있다. 
그 후로부터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어느 날은 가구점에 가서 주인 부부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말씀을 마치고 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몇 백 달러의 헌금을 주었다. 그동안 바빠서 교회에 못 나가 십일조를 모아둔 것이라고 했다. 현지인들에게 한 번도 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여러 모양으로 물질을 공급해 주어서 선교비를 매달 받을 때보다 더 풍성하게 살았다. 월세를 한 번도 못 낸 적이 없게 하셨다. 심지어 어떤 분은 그동안 밀려있던 많은 세금도 기꺼이 내주고 중고 오토바이도 기증했다. 그 오토바이를 타고 구석구석 성경 공부를 다녔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이고 간증이었다.
망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니까 하나님이 도우시고, 형제 자매들도 그것을 보면서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비록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지만 성도들이 늘어가는 것이 그렇게 감사해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다. 나는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굶어 죽으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한 번도 굶게 하신 적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며 나를 항상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때는 매주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하고, 매주 오는 새로운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네가 형편 따라 살면 죽을 것이요’
멕시코는 교통 체증이 아주 심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것이 위험했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도를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들이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모두 멈추어 서 있었다. 나는 헬멧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별 문제가 없어 보여서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목에서 날카로움이 느껴지더니 5미터 정도 지나갔을 때 목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연이 떨어지면서 연줄이 큰 길을 가로질러 자동차들이 다 멈추어 서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연줄이 끊어져서 목에 상처만 깊게 남았다. 만약 연줄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목의 살이 터졌을 것이다.
하루는 어느 날 부인회를 마치고 아내와 같이 기도한 후 전도를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날은 월세 낼 날짜가 가까워서 부족한 400달러 두고 기도했다. 마침 부인 자매가 자기 차를 빌려줄 테니 전도 갈 때 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차에는 기름이 얼마 없었고 내가 타던 오토바이에는 기름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아끼려고 아내와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큰 사고를 당했다. 자가용 한 대가 우리 오토바이 앞에서 갑자기 불법으로 유턴하면서 우리 오토바이와 부딪쳐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그때 우리를 따라오던 차가 길에 떨어진 우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또 치고 갔다. 다행히 아내는 다치지 않았고, 자동차 범퍼가 내 어깨와 머리를 치고 갔다. 머리는 헬멧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어깨뼈가 부러졌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팔에 붕대만 감고 밤 열두시쯤 집에 돌아왔다.
오토바이 배기구에 다리를 데어서 화상을 크게 입었고 어깨 통증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웠다. 누워 있는 나에게 아내가 봉투를 하나 건넸다. 교회 학생들이 약을 사먹으라고 주었다는데 열어보니 아침에 기도했던 400달러 정도가 들어있었다.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생각을 많이 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어도 또 도와주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여전히 형편에 반응하면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말씀이 하나 떠올랐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이 말씀이 ‘네가 형편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요’라고 들렸다.
나는 형편을 따라 궁색하게 살고 있었다. 월세를 내고 굶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많았지만 월세라는 부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할 없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앰프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월세가 밀린 것을 생각하면 구입할 수 없었고, 교회에 차가 꼭 필요했지만 형편을 보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렇게 형편을 따라 살고 있는 나를 보시고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구나!’ 그날 마음을 돌이켰다.
나는 그 주일에 팔에 깁스를 한 채 말씀을 전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김 목사는 지금까지 형편을 따라 살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저도 마음을 바꾸겠습니다. 가난하면 내가 가난하지 우리 아버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그 아버지를 믿는 믿음 없이 살았습니다. 이제 복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 하고 싶습니다.”
그토록 필요했던 엠프와 액정을 구입했다. 엠프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리고 그토록 소원했던 11인승 승합차도 마음을 모으고 돈을 모아 중고차로 구입했다. 필요한 물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 학생들과 심지어는 어린아이들까지 헌금했다. 자동차를 사온 날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물질적으로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부인 자매가 찾아왔다. 자기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언젠가는 이혼하게 될 것을 대비해서 땅을 사서 집도 지었는데, 선교사님이 어려움을 당하며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서 교회에 땅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교회가 예배당을 사거나 땅을 살 때 쓰라고 하면서 공증사무실에 가서 권리를 이양해 주었다.
다른 분들도 땅 문서를 들고 와서 교회에 드렸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일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셨다.

엔라세 방송을 보고 찾아온 많은 사람들
그때 즈음에 나는 케이블 방송을 보지 않아서 ‘창세기 강해’가 방송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방송이 나가고 몇 달 뒤 전화가 왔다. 미겔 앙헬이라는 분이 엔라세 방송에서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녔던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과 같은 말씀이라며 우리 교회에 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주일에 장성한 자녀 셋을 데리고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변호사였고, 아들도 법대에 다니고 있었다. 다음날은 자기 집에서 성경공부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몇 시간 동안 복음을 전했다.
그해 겨울에 내가 천식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기침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많이 죄송했지만 그래도 말씀을 전했다. 그날 가족 모두 복음을 받아들였다.
다음날은 미겔 형제가 어느 전철역에서 만나자고 내게 전화했다. 그는 나를 만나서 다짜고짜 자신의 차에 태우더니 친척이 운영한다는 병원에 데리고 갔다. 내 건강 상태를 검사하고 주사도 맞게 했다. 처방전의 약도 사주어서 먹었다. 몇 달 동안 기침에 시달렸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기침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병원도 없고 돈도 없어서 그동안 치료 받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감사했다.
비록 마당에 천막으로 만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예배당이지만 엔라세 방송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라한 우리 교회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엔라세 방송에 나오는 박 목사님과 우리 선교회를 보고 나를 크고 귀하게 여겨 주었다.
몇 년 동안 내가 전도하려고 해도 안 됐는데, 방송이 나가면서 예배당이 가득 찼다. 미겔 형제 가족도 매주 오고, 멕시코에 있는 아주 큰 석유 회사의 간부도 방송을 보고 부인과 같이 예배에 참석했다.
어느 날은 멕시코시티에서 몇 시간 떨어진 도시 ‘셀리야’에서 재봉틀 사업을 하는 빅톨이라는 분이 엔라세 방송에서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면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설교집을 구하고 싶다고 전화했다. 마침 전도집회가 있어서 그를 초청하였는데, 참석하여 구원을 받앗다. 지금은 그가 사는 셀리야에도 교회가 개척되어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복음을 섬기고 있다.
그 외에도 과달라하라, 베라쿠르스 등 여러 지방 도시에서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구원받아 그 도시들에 교회가 개척되었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방송이 나가는 여러 나라에서 ‘창세기 강해’를 보고 구원받은 간증이 아주 많다. 하나님은
‘텔레비전으로 중남미에 복음을 전하자’고 하신 당신의 종의 말씀대로 스페인어권 나라들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다.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당시에는 우리 교회도 매달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었기에 다른 도시의 교회를 지원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심이 되어 성경을 보다가 열왕기상 말씀을 읽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4)
사르밧 과부가 선지자를 공궤하는 일은 우리 계산으로는 맞지 않는 일이지만 그가 선지자를 섬길 때 자신도 살고 자식도 살았다. 그처럼 우리 교회가 과달라하라교회를 지원하면 우리도 풍성해지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곧 후원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 몇 명 안 되는 형제 자매들이 서로 후원하겠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형제 자매들이 과달라하라교회를 지원하면서부터 어려웠던 그들의 삶도 우리 교회도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말씀대로 하루하루 통의 가루를 채우시고 병의 기름을 채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했다.
과달라하라교회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주위에 있는 다른 교회들도 돕게 하셨다.
섬길 때 하나님이 더 풍성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형편에 매여 있었던 내 마음을 말씀으로 옮기게 하셔서 도움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주위 교회들을 도우면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종의 말씀 한 마디가 중남미에  크게 일하실 줄 몰랐다
2004년 한국에서 가진 교제를 통해 하나님은 내 마음의 옳음을 무너뜨리시고 나의 어리석은 신앙을 회개케 하시고 룻의 간증을 마음에 심어 주셨다.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된다’고 했듯이, 하나님의 종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마음에 선을 긋게 해주셨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고백처럼 내 마음에도 하나님의 종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게 하심을 알았다. 그의 백성들이 교회를 섬기고 내 어려움들을 살펴 주었다.
엔라세 방송을 보고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2013년 콜롬비아에서 월드캠프를 할 때에는 엔라세 방송에서 나와서 박 목사님을 인터뷰하고 시청자들을 위한 모임을 따로 가졌다.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중남미 전체에 복음을 전하자’ 하신 하나님의 종의 말씀이 이처럼중남미에 크게 일하실 줄 몰랐다. 주님께 감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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