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못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소경
실로암 못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소경
  • 박옥수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9.06.05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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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기쁜소식
이 달의 설교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눈먼 소경을 만났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자기 죄 때문입니까, 부모 죄 때문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소경이 되거나 이런저런 병에 걸린 것은 그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소경은 판단할 수 없으니까 물어야 했고, 그 말대로 해야 했다
이 소경은 눈이 먼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앞을 보지 못하니 모든 것이 막막했고, 어떤 일을 결정하려면 자기 눈으로 보고 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야 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이 보고 느낀 것들을 물어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개중에는 장난삼아 소경을 괴롭히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소경은 좋은지 나쁜지 분간할 수 없으니 종종 나쁘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받아들여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자신은 판단할 수 없으니까 물어야 했고 또 그 말대로 해야 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고, 가난해서 구걸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을 때, “왜 내 눈에 흙을 발라요? 실로암 못에 가면 내 눈이 밝아질 수 있나요? 실로암이 얼마나 멀어요?”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냥 실로암 못을 찾아가야 했다. 가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물어야 했다.
“여보세요. 내가 실로암 못으로 가는데 이리로 가는 게 맞습니까? 지금 이 길이 나쁘지는 않습니까? 실로암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실로암 못은 경사가 심합니까? 잘못하면 미끄러질 수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묻고, 대답해 주는 이야기를 믿고 가야 했다. 장난삼아 이야기해도 믿고 가야 했고, 예수님처럼 좋은 분이 길을 인도해도 믿고 가야 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들은 말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경은 우리와 달랐다.
탕자 이야기에서 둘째 아들은 외국에 가서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으면서 자신을 믿고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갔다.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재산을 다 허비하고 돼지우리에서 주려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들어갔을 때 탕자는 비로소 ‘아, 내 판단을 믿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경은 아예 판단할 수 없으니까 예수님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면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실로암 못이 1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가야 했고, 5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가야 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보는 것으로 예수님을 거스르며 멸망으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대부분 소경을 불쌍히 여긴다. 자신은 소경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자기 판단으로 ‘이건 좋은 거야, 저건 나쁜 거야’ 하면서 인생을 좋게 이끌려고 한다. 그처럼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지만 그 판단에는 사탄이 역사하기 때문에 옳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옳다는 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지 못한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나쁜 사람의 이야기를 따랐다가 손해를 본 적도 있겠지만, 예수님처럼 좋은 분을 만났을 때에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다른 사람들은 자기 판단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자기 판단이 없어서 말씀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복을 받은 것이다. 볼 수 없어서 따르다 보면 손해도 보고 어려움도 겪지만, 예수님 같은 분을 만났을 때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 복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자기 길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아예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냥 자기 생각과 방법을 따라서 산다. 눈을 떠 볼 수 있어서 자신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밝게 보고 건강하게 지내고 잘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거스르며 자신의 판단을 따라서 멸망으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다행히 탕자는 자신이 실패했으며 잘못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자기 길을 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가서 다시 은혜를 누렸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잘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판단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 흘러가다가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난하고 부족하고 병들어서 예수님 앞에 나와 복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한 몸을 주시고 양식이 풍성한 부유한 삶을 주셨을 때만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6•25전쟁이 끝난 뒤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굉장히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주 굶었다. 배가 고팠기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주관이나 생각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 감자 하나를 얻어먹거나 콩 한 줌을 얻어먹기 위해 다른 사람을 따를 때가 많았다.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연필이 없어서 빌려야 하거나 지우개를 빌려야 할 때면 거만한 마음으로 빌려 달라고 할 수 없기에 마음을 낮추고 꺾어야 했다. 그럴 일이 참 많았다.
오늘날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부유해서 연필 한 다스나 공책 한 권 값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대부분 풍요롭게 살기 때문에 마음을 꺾을 일이 없고 자기 생각을 버릴 일이 없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은 자기 판단대로 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쉬웠다. 병이 들었거나 가난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탕자가 어려웠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다.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자기 생각대로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의 말도 듣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복을 얻을 수 있다.
건강하고 잘나고 똑똑하고 부유해서 마음을 한 번도 꺾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멸망을 당하는 것보다, 가난하고 부족하고 병들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서 예수님 앞에 나와 복을 받는다면, 그것이 훨씬 복된 삶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망하고 만다.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에
우리는 건강하기를 바란다. 부유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움을 주신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태어났다든지, 불구자로 태어났다든지, 망해서 아주 가난해진다든지, 그런 어려움들을 당한다. 우리가 그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꺾고 예수님을 만난다면, ‘그것이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건강하고 부유하고 좋은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고집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낮아져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면, 그 일이 결국 재앙이 아니라 복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 밝고 복되게 살고 있다. 그러니 좋은 것만 구하지 말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자신을 부인하고,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 그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에 그러한 일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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