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포기한 히브리 종
자유를 포기한 히브리 종
  • 김기성(기쁜소식부천교회 목사)
  • 승인 2019.06.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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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신앙과 마인드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 21:2~6)

‘나는 나가면 다시 들어오겠구나!’
나는 1987년에 강도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16년 복역을 마치고 2003년에 출소하였다. 출소를 6개월 앞두고 있었던 일이다. 스물세 살에 교도소에 들어가서 서른아홉 살에 출소하게 되었으니 교도소에서 청춘을 다 보낸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 나가면 다시 들어오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많았다. 나는 16년 동안 교도소 안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출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번에 나가면 절대 안 들어온다’고 하며 나갔다.
그러나 출소한 그들이 다시 들어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특히 장기수들과 기독교 회장, 불교 회장, 천주교 회장 같은 분들은 교도소에서 천사처럼 신앙하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은 교도소에서 달라졌어. 아마도 교도소에  다시 들어오지 않을 거야’ 했던 사람들인데 그들 또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무너졌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한 번도 사고치지 않고 모범수가 되어서 나갔는데 나는 교도소에서 날마다 사고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수였기 때문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훨씬 착하고 성실한 그들이 ‘다시는 교도소 안 들어올 거야’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문제수인 내가 나갔다가 다시 안 들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나가면 다시 들어오겠구나!’

‘아버지께 가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교도소에서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아버지가 16년 동안 나를 기다리셨는데 아버지한테 가야겠지. 아버지한테 가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교도소에 앉아서 생각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래, 기성이 왔구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아닙니다. 아버지가 고생하셨지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찾아온다.
“기성아, 고생했다. 너 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 못 가서 미안하다. 출소 기념으로 오늘은 내가 술 한 잔 살게. 가자.”
아버지에게 가면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한 잔 해야 하고, 술을 마시면 나는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아버지에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아버지, 제가 얼마 안 있으면 출소하는데, 출소하면 아버지께 가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아버지께 못 갈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반드시 친구들이 찾아오고,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한 잔 해야 하고, 술을 마시면 저는 다시 교도소에 갑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교도소에 다시 가기 싫습니다.”
아버지한테서 답장이 왔다.
“내 아들아, 너 나한테 안 와도 된다. 나도 내 아들이 교도소 다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너를 이끌어주실 목사님께 가거라.”
친구들한테도 편지했다. 내가 출소하는 날 친구들이 나를 데리러 교도소에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오지 마라. 출소 날짜가 바뀌었다. 그때 와도 날 못 만날 거다. 출소 날짜가 정해지면 다시 연락할게. 오지 마라.”

“교도소에 가지 않게만 해 주십시오”
많은 재소자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교도소 안에서 도둑질도 안 하고 마약도 하지 않고 죄도 짓지 않으니까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변한 것일까? 교도소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들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자신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도관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고 담장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교도관이 강하게 다스려 주고 인도해 주기 때문에 나는 교도소에서 범죄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아, 사람은 인도를 받고 다스림을 받을 때 행복해지고 가장 깨끗해지는구나.’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셨다. 나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준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의 저자인 박옥수 목사님께 편지를 썼다.
“목사님, 전 갈 곳이 없습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욕망이 너무 많습니다. 저 자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앉으라 하면 앉고 누우라고 하면 눕겠습니다. 저를 교도소에 가지 않게만 해 주십시오.”

나는 마음에서 한 번도 출소한 적이 없었다
출소하는 날 교회 목사님이 나를 데리러 오셨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교회로 들어왔다. 나는 2003년에 출소할 때 몸은 교도소 밖으로 나왔지만 내 마음은 교도소의 담장과 울타리를 가지고 나왔다. 마음에서는 한 번도 출소한 적이 없었다.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인도가 내 마음에 담장과 울타리가 되었다. 교회에 와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했다. 그 시간에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거룩한 교회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교도소에 안 갔구나.’ 하며 너무 감사했다.

인도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생명임을 깨닫는 것
히브리 종은 6년 동안 주인을 섬기다가 7년째가 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자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 그는 결정해야 한다. 내가 나를 믿고 살아 왔을 때 결과가 어땠는가? 그리고 주인을 섬기며 살 때 행복했는가? 그는 왜 종으로 팔려왔겠는가? 자기를 믿고 살아서 성공했으면 절대 종으로 팔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살아온 결과 망해 더 이상 길이 없어서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온 것이다. 그래서 주인을 섬기며 살았는데, 오랫동안 주인을 섬기며 살다 보니 주인이 그가 불쌍해서 장가를 보내주었다. 그는 예쁜 아내도 얻고 자식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주인을 섬긴 지 7년째 되는 날, 그는 자유를 포기한다. 주인을 섬기며 살아온 삶이 무척 행복했기 때문에 주인을 찾아가서 자유를 포기한다고 말한다. 주인을 사랑하고 처자를 사랑하니 자유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주인이 종을 데리고 문설주에 가서 거기에 그의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는다. 귀를 뚫는 의미는 ‘이제는 영원히 주인의 음성을 듣고 살겠습니다. 그동안 주인의 인도를 받으며 저로서는 만들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라는 의미다. 종은 주인의 문설주에 귀를 대고 주인이 뭐라고 말하는지 주인의 음성만 듣는 것이다. ‘이전에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살았던 삶은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주인과 함께 살면서 행복했으니 이제부터는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겠습니다.’
5절에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라고 했다. 처자보다도 주인이 중요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앙은 인도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생명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다스림 안에서 살 때 가장 행복하다. 그것이 창조의 섭리다.

“너는 교회의 이야기 들어야 돼!”
교도소에서 구원받은 형제가 있었다. 마약 때문에 25년 넘게 교도소에서 복역한 형제로, 그도 나와 같은 시기에 출소했다. 그런데 그는 그 뒤로도 교도소에 다섯 번 이상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는 출소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형님, 이번에 확실하게 손 씻고 나왔습니다. 마약 끊었습니다.”
“정말 마약 끊었어? 정신 차렸어?”
“예.”
“정말 손 씻었어?”
“예. 확실합니다.”
“너 손 씻으면 안 되는데, 그러면 6개월 안에 다시 들어가. 정신 차려!”
“형님, 왜 또 악담하십니까? 손 씻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그가 말했다.
“형님, 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마약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너무 불쌍합니다. 그 사람들을 다 나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라.”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연락이 왔다.
“형님, 어제 저녁에 옛날에 나하고 마약하던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여자가 너무너무 불쌍했습니다. 마약에서 건져주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가지 마라.”
“형님,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이 지키실 겁니다.”
“그래도 가지 마라.”
“아, 이해가 안 갑니다.”
그는 나 모르게 그 여자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 여자는 성경 위에 주사기를 올려놓았다. 주사기를 보는 순간,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서 마약을 했다. 그리고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는 똑같은 과정으로 다섯 번 이상 교도소에 들어갔다.
여섯 번째 출소한 후, 그때도 그는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게 손 씻었다고 했다. 또 4개월 정도 지나서 옛날에 같이 마약하던 여자가 찾아왔다며 그 여자를 마약에서 건져준다고 갔다. 나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목사님, 왜 하나님을 못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지키실 겁니다.”라고 했다.
“야, 네가 믿는 하나님이 한 번이라도 너를 마약에서 지켜준 적 있어? 있으면 이야기해봐. 한 번도 안 지켜주었잖아. 나아만 장군이 어떻게 문둥병에서 벗어났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고쳐준 거야? 아니잖아.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들었잖아. 너는 교회의 이야기를 들어야 돼!”
그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인도를 받지 않았다. 신앙은 히브리 종이 “내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라고 하였던 것처럼 인도자를 따르는 것이 생명임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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