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을 가진 롯과 그 삶의 결국
옳음을 가진 롯과 그 삶의 결국
  • 김재홍(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19.07.21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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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2편

사탄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끊임없이 옳음을 넣어 줍니다. 우리 마음에 옳음이 형성될 때 사탄의 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깨닫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옳음에 사로잡히면, 자기를 신뢰하게 되고 자신이 잘못되어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 하나만 고집하게 됩니다. 옳음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거절하며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고, 불신하고, 대적하는 마음으로 흘러갑니다.

롯은 왜 아브라함과 헤어졌는가?
창세기 13장에 자신이 옳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 롯이 나옵니다. 롯이 어떻게 옳음을 가졌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창 13:5~9)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롯의 마음에 옳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롯의 마음에 옳음이 생겨나면서 아브라함을 판단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시작은 창세기 12장에서 롯이 아브라함의 허물과 연약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두 모습과 롯의 마음에 남은 것
창세기 12장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9절까지의 전반부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산 모습이 나오고, 10절부터의 후반부에는 아브라함이 형편을 따라가면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믿음 없는 모습이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전반부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 아니라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라고 정확히 지시한 곳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은 갈 바를 모른 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처럼 전반부에는 아브라함이 믿음 좋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넘어가면 달라집니다. 10절부터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창 12:10~13)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오자 아브라함은 형편을 따라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으로 가면서 예쁜 아내로 인해 자기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인간적인 수단을 썼습니다. 실제로 애굽에서 애굽 왕 바로가 그의 아내를 취하여 갈 때 아브라함은 “그 여자는 내 아내입니다.”라고 하지 못하고 그냥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야기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자기 아내를 바로에게 그냥 내주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2장 후반부에는 형편없는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롯이 다 지켜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허물과 연약함을 보면서 롯의 마음에서 옳음이 생겨났습니다.
‘나 같으면 저렇게는 안 해! 삼촌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더니 형편없네. 왜 저 모양이야?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끌려가고 있는데도 왜 “그 여자는 내 아내입니다”라는 소리 한 마디 못 하지?’
이처럼 롯의 마음에 아브라함의 허물을 보면서 옳음이 생겨났을 때, 롯은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옳음을 마음에 담아두고, 옳음을 키워나갔습니다. 마음에서 옳음이 커지니까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브라함에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브라함이 롯에게 헤어지자고 하며, 좋은 곳을 먼저 택해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연약했지만 남편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강하셨다
롯은 아브라함의 허물과 연약함을 보고 판단하고 불신하였고, 그로 인해 다툼이 일어났으며, 결국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직접 당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어떠했습니까? 사라가 ‘무슨 남편이 자기 살자고 아내를 팔아먹을 수 있어?’ 하고 불신하는 마음을 가졌습니까? 사라는 자신의 옳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을 주主로 섬겼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벧전 3:6)
옆에서 지켜본 롯은 판단하고 불신을 가졌는데, 바로에게 끌려간 사라의 마음에는 아브라함을 원망하거나 불신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롯의 마음은 믿음을 떠났고, 사라의 마음에는 믿음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떠난 롯의 마음에는 옳음이 만들어지고, 그 옳음이 아브라함을 판단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아브라함을 불신하게 하여 아브라함을 업신여기고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사라도 롯과 똑같이 아브라함의 허물과 연약함, 형편없고 믿음 없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아브라함의 허물만 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허물을 인하여 어려움을 당한 장본인인데, 결과가 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아주 아름답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창 13:1~2)
성경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서 아내와 소유를 다 잃고 홀몸으로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이 함께 나왔으며,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다고 했습니다. 사라가 볼 때 남편이 무능하고 연약했기 때문에 망해야 하는데, 애굽에서 나올 때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풍성해졌습니다.
사라가 발견한 것은, 남편은 연약했지만 남편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강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남편은 형편없었지만 남편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신실하게 일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라는 ‘내가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하면 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말미암아 나도 복을 받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라의 마음은 옳음이 자리를 잡고 아브라함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자리 잡았고 믿음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자기를 팔아먹은 아브라함을 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번제단 신앙을 발견한 아브라함
이제 아브라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판단하고 불신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 나타나는 모습보다 훨씬 신령한 세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13:3~4)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온 뒤 그가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곳으로 돌아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에 있었던 단은 모든 것이 불태워지는 곳입니다. 제단 위에서는 제물이 살아 있을 수 없으며 다 불타고 재만 남습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은 ‘번제단 신앙’을 발견했습니다.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12장 전반부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찾아오자 형편을 따라서 애굽으로 가는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아내도 팔아먹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 13장에 이르러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자신이 잘한 것도 불태워지고 잘못한 것도 불태워지고, 모든 것이 불태워진 것입니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발을 내디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임을 받은 귀한 일로, 그렇게 되기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
여기에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려고’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우거한다는 말은 그곳에서 아예 살려고 이주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가서 잠시 머물다가 돌아오려고 간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애굽에 연고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땅에 기근이 있으니 잠시 애굽에 갔다가 돌아와야겠다.’ 하고, 자신이 잠깐 갔다가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느덧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자신의 판단이나 형편을 등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갔습니다. 믿음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서 은혜를 입은 것이 어느덧 자기를 신뢰하게 만든 것입니다. 한때 교회에서 많은 은혜를 입고 귀하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자기 옳음을 이야기하며 교회를 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은 은혜 입은 것이 자기를 신뢰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따라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앗기는 일을 겪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간 결과가, 자신을 신뢰한 결과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발견했습니다. ‘내 생각을 믿고 내 판단을 따라간 것이 나를 이처럼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그 사실을 발견하고, 창세기 13장에서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당신은 나와 상관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형편없고 부족했지만 당신은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당신은 신실하게 당신이 계획하신 대로 일하셨습니다. 당신은 내 모습과 상관없이, 내 조건과 상관없이,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스스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한 번 벗었습니다. 자기를 신뢰한 결과가 자신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분명히 알고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세계로 들어갑니다. 자신이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제단에서 불태워져서 자신의 조건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만 남는 번제단 신앙으로 들어갑니다.

옳음이 롯의 인생을 불행으로 끌고 갔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갔는데, 롯은 아브라함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다녀온 뒤 훨씬 귀한 마음의 세계에, 훨씬 더 신령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있는데, 롯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 속에서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판단했고, 업신여겼으며, 불신했습니다.
롯은 마음에 옳음을 품으면서 아브라함에 대하여 불편한 마음을 가졌고, 판단했으며, 나중에는 불신하는 마음까지 가졌습니다. 그 마음이 롯의 목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떠납니다. 그는 소돔 성으로 들어가서 망하는 길을 걷습니다. 그의 아내는 소돔 성이 멸망을 당할 때 천사의 손에 이끌려 성에서 나오다가 소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딸은 아버지와 동침해서 모압과 벤암미를 낳았는데, 그들은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으로 두 족속은 대대로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롯의 마음에 들어온 옳음 하나가 그의 인생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롯은 마음에 들어온 옳음이 얼마나 큰 고통과 저주를 불러오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옳음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어떤 옳음이든지, 여러분의 마음에 옳음이 자리 잡는 것 자체가 불행과 저주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좋아합니다. 그것을 꽉 붙들지, 버릴 줄을 모릅니다.

어떤 옳음이든지 반드시 불행을 가져다준다
롯은 옳음을 가져서 아브라함을 판단했고 사라는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주로 섬겼습니다. ‘내 남편이 아무리 연약해도 괜찮고, 아무리 부족해도 괜찮아. 남편을 붙들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잖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임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과 함께하면 그 복이 자신에게도 임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정말 행복했고, 아브라함을 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를 잡고, 믿음이 자리를 잡아야 행복해집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탄은 우리 안에서 믿음을 제하고 대신 옳음을 넣어 줍니다. 문제는, 인간이 어리석어서 옳음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네가 옳아’ 하고 사탄이 옳음을 넣어 주면 그 옳음을 넙죽넙죽 받아먹습니다. 불행과 멸망을 불러오는 옳음을 마음에 간직하고 버릴 줄 모릅니다. ‘이 옳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망해! 이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옳음을 마음에 소중하게 품고 살아갑니다.
옳음은 사탄이 넣어 주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옳음은 악한 열매를 맺고, 사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옳음이든지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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