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
  • 김기성(기쁜소식부천교회 목사)
  • 승인 2019.09.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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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호 기쁜소식
성경과 마인드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출 32: 25~28)


출애굽기 32장에는 레위 자손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금송아지를 섬겼는데, 그런 그들이 어떻게 복을 받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날마다 죄를 짓는데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레위 자손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었을까?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십계명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올 때 이스라엘 진영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다’ 하면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모세는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서 깨뜨려버렸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오라’고 하자 레위 자손이 제일 먼저 나왔다. 레위 자손과 열한 지파가 두 편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열한 지파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저 놈들 진짜 나쁜 놈들이야. 방금 전까지 금송아지를 섬기고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는데 자기들이 여호와의 편이라고? 말도 안 돼. 레위 자손의 아론이 금신상을 만든 장본인이고 하나님을 가장 많이 대적하는 일을 했는데 여호와 편이라고? 하나님이 저놈들을 심판하실 거야.’
그런데 모세는 레위 자손을 무척 기뻐하며 그들에게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다 도륙하라고 했다. 그날 레위 자손이 삼천 명 가량을 도륙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레위 자손의 손에 죽었다. 레위 자손은 과연 뭐라고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도륙했을까? ‘야! 이 놈들아. 왜 금송아지 섬겼어? 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어?’라고 했을까? 결코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송아지를 섬기고 대적했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레위 자손이 제일 먼저 죽어야 할 것이다. 레위 자손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는 왜 하나님 편에 설 수 없었을까?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민 23:13)
 
발락이 발람 선지자를 데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갔다. 그는 발람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진영을 보여 줄 때 뒤 쪽 끝만 보여주었다. 왜 끝만 보여주었겠는가? 발람 선지자에게 그가 본 대로 이야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본대로 이야기한다면 이스라엘을 저주해야 한다. 예전에 중학교에 다닐 때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서 조회를 했다. 그때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반 별로 줄을 서는데, 각 반의 인원 수가 다르기 때문에 앞에는 줄이 잘 맞는데 뒤에는 줄이 안 맞아 들쭉날쭉 했다. 그리고 맨 뒤에는 반에서 문제 있는 아이들이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서서 다리를 떨고 건들건들했다. 끝에 서 있는 학생들을 보면 소망이 안 보인다. 자동적으로 ‘에이 저놈들이 인간 되겠어?’라는 마음이 든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진영의 끝을 보면 소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발람 선지자는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말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민 23:2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을 돌이킬 수 있는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발람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축복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민 23:21)
하나님은 성도를 향해서 마음을 정하셨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허물을 보고 패역을 본다면 우리 가운데 천국에 갈 사람이 있겠는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고 싶으셨고 천국에 보내 주고 싶으셨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민 23:23)
발람 선지자가 아무리 눈을 씻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저주할 조건을 찾아봐도 저주해야 할 조건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저주받아야 할 조건이
1퍼센트도 없다는 것이다. 레위 자손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았다. ‘하나님은 내 허물을 보지 않아. 내 패역을 보지 않으셔.’ 그래서 여호와  편에 설 수 있었다.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다. 열한 지파는 자기 행위를 보니까 도저히 나갈 수 없었다. ‘우리가 무슨 여호와 편에 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여호와 편에 설 자격이 없어.’ 
신앙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형편을 바라보지 않은 것이다. 지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돕겠는가? 죄 짓고 잘못하고 실수했는데 내 기도를 들으시겠는가? 나 같은 죄인이 천국 에 가겠는가?’ 하며  “주여. 죄인입니다.”가 자동적으로 나온다.
레위 자손들은 자신의 행위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 편으로 뛰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레위 자손이 이스라엘 백성을 도륙할 때 뭐라고 이야기했겠는가?
“이놈들아, 왜 네 모습을 봤어? 여호와는 우리 허물을 보지 않는다고 하셨잖아. 우리 패역을 보지 않는다고 하셨잖아. 왜 네 모습을 봤어?”
그렇게 자신의 행위를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이 도륙을 당했다.

네 아이는 정상이야
우리 아들은 열두 살 때까지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의사는 아들이 발달 장애라고 했다. 한번은 박옥수 목사님에게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들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받치고 건방진 자세로 있었다. 박 목사님이 일어서라고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일어서라니까!” 그래도 말을 안 들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점심을 먹고 다시 보자며 “오늘 내가 김 목사 엉덩이 좀 때릴 거니까 애들 보는 데서 좀 맞아.” 하셨다. 점심을 먹고 가자 목사님은 아들에게 앉으라고 하셨다.  아들이 말을 안 듣자 내게 “엎드려!” 하더니 종이로 만든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셨다. 나는 “목사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 아들은 픽하고 웃을 뿐, 여전히 말을 안 들었다. 이어서 박 목사님은 아들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셨다. 아들이 울면서 나왔다. 목사님이 “너 목사님 말씀 들어야 돼.  앉아.” 하자 요동이 없었다. 목사님은 다시 아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가셨고, 아들은 다시 울면서 나왔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화장실에 갔다 오자 말을 듣기 시작했다.
“김기성 목사, 이렇게 하는 거야! 싸워야 해. 부모가 아이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키우면 비정상이 되는 거야. 자네 아이는 정상이야. 정상적인 아이하고 똑같이 키워야 해!”
아들이 나와 있을 때에는 변하지 않았는데 목사님과 같이 있은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변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목사님은 우리 아들이 정상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바지에 똥을 싸면 치워주고 세수를 시켜주고 양말을 신겨주었다. 그런데 아들이 정상이라고 믿으니까  정상인 놈이 양말도 못 신고 바지도 못 갈아입고 침대에서 소변 대변을 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상이라고 믿으니까 싸워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그날 아침 아들이 깊이 생각한 것이다. ‘전에는 침대에서 소변을 보면 엄마 아빠가 치워줬는데 이제는 아빠한테 맞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은 우리 집의 광복절이었다. 모든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전도자다
아이를 키우면서 교회와 박옥수 목사님의 마음을 많이 발견했다. 목사님은 우리를 세계  최고의 전도자요 복음의 일꾼으로 믿고 계시는데, 우리는 ‘내가 무슨 최고의 목사야? 우리가 무슨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야? 우리는 박 목사님과 달라. 그러니까 목사님처럼 안 살아도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비정상이니까 침대에서 소변을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는 아들이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어도 저렇게 살 것을 생각하니까 부모는 마음이 아픈 것이다. 하지만 정상이라면 아들과 싸워서 고치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계의 복음의 일꾼으로 만드셨다. 우리 속에는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박옥수 목사님은 그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와 싸우셨다. 우리는 부담스러운 일이나 힘든 일을 피하며 무기력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레위 자손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은 ‘내가 죄를 지었어. 그래서 지옥에 갈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죄를 지었다고 지옥에 가라고 하겠는가? “너 죄 지었잖아. 금송아지 섬겼잖아. 그래서 너의 기도는 안 들어. 너, 지옥 가야 돼.’ 그런 아버지가 있겠는가?  우리가 어떤 잘못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7)

레위 자손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보았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섬겼지만 여호와 편에 설 수 있었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힘든 일이 있고 어떤 섭섭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거기서 건져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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