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음을 넣어 준 압살롬
옳음을 넣어 준 압살롬
  • 글 | 김재홍 (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19.10.1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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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제5편

옳음이 불신으로, 불신이 대적하는 마음으로
‘옳음이 내 삶을 병들게 하고, 내 인생을 불행 가운데로 이끌어 가며,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누구든지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마음에 옳음이 생길 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기 전에 제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옳음을 마음에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옳음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지키고 세워 나가려고 합니다.
옳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똑같이 작용합니다.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면, 이 옳음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커지면서 마음에 불신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불신은 다시 대적하는 마음으로 바뀝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교회 안에서 불신을 갖거나 교회를 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전부 마음에 옳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신하고 대적하기 전에 반드시 사탄이 넣어준 옳음이 마음에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믿기 때문에 옳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음에 옳음이 심기면 그 옳음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옳은 주장이 관철되지 않거나 무시당하면 그렇게 한 교회를 향해 불신이 생기고, 불신 가운데 있으면 잠시 후에 대적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준 압살롬
성경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다윗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압살롬이 옳음을 넣어 주는 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것은 억울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왕 앞에 서려는 것이지, 자신이 잘못된 것을 밝히려고 왕의 재판 자리에 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옳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에 그 옳음을 나타내려고 재판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압살롬이 만났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누이동생을 범한 이복형 암논을 죽였기 때문에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반역을 하려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섬기고 다윗 편에 속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에게서 돌아서게 하고 다윗을 대적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압살롬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람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냥 다윗을 대적하라고 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종을 대적해?’라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다윗을 대적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자신이 먼저 나가 맞으면서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너의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라고 했습니다. 압살롬이 사람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어 그들 마음에 옳음이 자리 잡자, 자연스럽게 옳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관리를 세우지 않은 다윗을 불신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다윗을 대적하라고 하지 않아도 대적할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는 일을 4년 동안 합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에 반역을 시도합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압살롬을 쫓아갔습니다.

마음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주위에서 자신이 옳다고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옳음을 세워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압살롬처럼 “네가 옳고 바르다.”라고 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억울한 일이 있어서 이야기할 때 “네가 잘못했네.” 하며 옳음을 버리게 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옳다고 여기는 바가 있는데, 그에 대하여 ‘네가 잘못했고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네가 잘했고 네가 옳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겠습니까? 거의 다 자기를 인정해 주고 옳다고 해주는 쪽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적하는 마음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셨고, 다윗을 통해 역사하셨으며, 다윗을 들어 힘있게 사용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마음에 옳음이 자리를 잡자 다윗을 불신하고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을 몰아내려고 반역을 일으키자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반역에 동참했습니다.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너의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이 말 한 마디가 이스라엘 땅에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왔는지 모릅니다.

압살롬의 마음에 들어온 옳음
압살롬은 왜 반역을 일으켜서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 역시 어느 날 그의 마음에 옳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무엘하 13장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다. 압살롬에게 다말이라는 누이동생이 있고, 배다른 형 암논이 다말을 사모해서 상사병에 걸립니다. 그로 인해 왕자가 몹시 괴로워하자 암논의 친구인 요나답이 어떻게 하면 그 여인을 취할 수 있는지 꾀를 가르쳐 줍니다. 암논은 요나답이 가르쳐 준 대로 하여 다말과 억지로 동침했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납니다. 암논이 다말을 범한 뒤에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연애하던 것보다 더한 마음으로 돌변하여 다말을 자기 집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그 일이 다윗 왕에게 보고되었습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암논을 향해 심히 노하고 암논을 책망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에서는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자기 누이동생 다말이 인생을 망친 것에 비하면 암논에게 내려진 다윗의 처벌이 공평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암논으로 하여금 다말과 결혼하게 하든지 암논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든지 해야 하는데, 그냥 내버려둔 것입니다. 그때 압살롬 안에 자신이 옳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눈으로 다윗을 보니까 다윗이 잘못하고 있다는 불신이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생각해 보니, 그 전에 다윗이 암논과 비슷한 죄를 지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그 죄를 가리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은 적이 있으니까 암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구나. 내 동생의 인생만 망가졌고, 내 동생만 불행해지는구나!’ 압살롬의 마음에서 이런 불신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나타냈지만, 마음에 옳음이 자리 잡은 압살롬에게는 그것이 불의하게 보였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잘못을 한 뒤의 삶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자를 베풀었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을 때 압살롬에게도 인자를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품고 있었던 마음은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마음인데, 압살롬 안에 옳은 마음 하나가 들어오니까 그것이 불신할 조건이 되고 대적할 조건이 되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범한 일이 일어나고 2년 뒤에 압살롬의 복수가 시작됩니다. 압살롬이 양털을 깎을 때 잔치를 준비하고 암논을 비롯해 왕자들을 청한 뒤 암논을 죽입니다. 다윗이 암논을 치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이 직접 자신의 옳음대로 암논을 처단한 것입니다. 압살롬의 마음에 생긴 옳음이 다윗을 불신하게 했고, 그 옳음이 암논을 죽이게 했습니다. 성경이 아주 정확한 것이, 마음에 옳음이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서는 항상 이처럼 사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옳음을 세워 주는 거짓된 인도자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뒤 그술 땅으로 도망을 가고, 그 후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여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합니다. 다윗은 암논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압살롬에게 인자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마음에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옳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상황을 살피며 자신이 왕이 되기는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러 가지 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왕으로 세워지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마음에 옳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반역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때부터 압살롬은 반역을 준비했습니다.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 옳음을 넣어 주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마음에 ‘네 일이 옳고 바르다’며 옳음을 넣어 준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지금 옳음만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불신을 넣고 반역하게 만들려는 짓이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옳다고 인정해 줄 때 좋다 하고 넙죽 받아먹을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반역의 길에 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 하나님의 참된 인도자는 우리에게서 옳음을 제하는 일을 합니다. 반대로 거짓된 교회와 잘못된 인도자는 옳음을 넣어 주는 일을 합니다. 사람을 인정해 주고 세우고 높입니다. 반역하려는 마음을 품고 사람들을 대한 압살롬이 참된 인도자입니까?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인정하고 세워 준, 잘못된 인도자입니다.
그런데 반역하려는 마음을 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대하는 압살롬의 겉모습은 얼마나 겸손하지 모릅니다.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공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니,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삼하 15:4~6)
자신이 옳다고 인정해 주고, 높은 자리에서 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손을 내밀어 자기를 붙들고 입을 맞추고, 사람들이 그런 압살롬이 너무 고마워서 ‘이런 인도자가 다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해 주고 높여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압살롬이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기 위해 행한, 거짓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옳음을 넣어 주고 우리를 높이고 세우는 교회나 인도자는 잘못된 교회요 잘못된 인도자입니다. 우리 영혼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옳음을 제해 주는 참된 인도자
다윗은 참된 인도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형성되는 옳음을 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부분 또한 성경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상 30장을 보면, 다윗이 머물던 시글락 성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성을 불태우고 여자와 아이들을 다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윗이 남자들과 함께 전쟁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그 상황을 보았고, 다윗을 따르던 육백 명이 울 기력이 없도록 울다가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상황이 몹시 급박했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기에서 벗어난 뒤,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이 “쫓아가라.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다윗이 이 말씀을 의지해서 아말렉을 쫓아갔습니다.
쫓아가던 중에 브솔 시내를 만나, 육백 명 가운데 이백 명은 머물고 사백 명만 시내를 건넜습니다. 남은 이백 명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끝났어. 사로잡혀 간 처자식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고 쫓아가? 쫓아간들 그들이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되찾아 와?’ 그들은 몸도 마음도 지쳐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브솔 시내를 건넌 사백 명은 다윗과 함께 가서 아말렉을 치고 잃은 것을 다 되찾았으며, 양떼와 소떼를 비롯해 많은 탈취물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싸우러 가지 않았던 이백 명을 향해 옳은 마음을 품었습니다.
“처자식이 사로잡혀 갔는데도 싸우러 가지 않은 저 녀석들, 우리가 싸워서 얻은 탈취물을 저들에게 나눠줄 이유가 어디 있어? 처자식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자!”
시글락이 불타고 모든 것을 탈취당했기 때문에 처자식만 데리고 떠나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다윗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 하리라.” 하며, 싸우러 갔던 자들이나 머물렀던 자들이나 똑같이 나누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싸우러 갔던 사람들의 마음에 형성되는 옳음을 제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인도자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옳음을 제하는 일을 합니다. 옳음은 불신을 불러오고, 불신은 대적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형성되는 옳음을 그냥 두면 처음에는 그냥 옳음으로 존재하지만, 잠깐 후에 불신이 일어나고 다시 대적하는 마음으로 변할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잘라 주는 것입니다.

연합을 방해하는 옳음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에 옳음을 넣어 주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나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거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가야 했습니다.
연합은 하나님이 보실 때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하나님은 연합이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압살롬은 뛰어나고 용모가 빼어난 자였는데, 평소에 다윗이 압살롬과 연합하려고 해도 안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에 들어 있는 옳음이 다윗과의 연합을 방해하고, 다윗을 거스르고 대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옳음은 연합을 방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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