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불행했던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로
가장 불행했던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로
  • 글 | 조수연 (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9.12.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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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외로움과 슬픔뿐이던 어린 시절, 남편의 폭력, 악령에 잡혀서 보낸 수년.
행복이라는 단어는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어왔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요 값없이 주는 은혜였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나는 어머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나는 앞을 못 보시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외출하실 때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지팡이 삼아 다니셨고, 나는 할머니의 눈이 되었다. 할머니와 늘 같이 다니는 나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내 주위에는 친구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할머니가 시름시름 아프더니 갑자기 돌아가셨다. 너무 슬펐다. 내 인생의 전부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기댈 곳이 사라졌고, 나는 왜 태어났는지 허무했다.
갈 곳이 없어서 고모 댁과 삼촌 집을 전전하다가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살고 계셨다. 새어머니는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계모처럼 아버지가 계시면 나를 예뻐했다가 아버지가 안 계시면 밥도 안 주고 구박하고 저주했다.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너는 죽었으면 좋겠어.” 고통스러웠지만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수학여행을 갔다 오니 집이 이사해서 아무도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에 길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울다 보니 날이 저물었고, 고모가 나를 찾으러 와서 고모 댁에서 다시 살았다. 나는 두 다리를 뻗고 마음 편히 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긋지긋한 생활이 이어졌다
스무 살이 되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가족이 생기고 단칸방이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그런데 남편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중학생 때부터 혼자 살다 보니 결혼은 했어도 우리 부부는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부모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학창시절부터 술을 마셨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친구와 술을 의지하며 살았다.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퇴근하고 오면 맥주부터 시작해 소주, 막걸리, 양주 등등 술이라는 술은 다 마시고 험한 말을 하고 협박했다. 아이들과 나를 무릎을 꿇게 하고 술이 깰 때까지 협박했다. 의처증도 생겨 남편의 폭력은 심해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긋지긋한 생활이 이어졌다. 남편을 피해 거의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자동차 안에서 지내기도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한번은 소주에 농약을 타서 먹고 잠들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던 딸이 집안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이웃집에 알려 병원에 실려 갔다. 자살 소동이 몇 차례 있었지만 남편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 없이 자랐기에 이혼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 안에 귀신이 들어왔다
나는 성격도 소극적이고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당해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살았다. 내 인생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나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결혼하고 십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내 안에 귀신이 들어왔다. 하루 종일 귀신과 이야기하고 귀신에 잡혀서 내가 아닌 귀신으로 살았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뚱뚱하게 부어서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집에서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소파에 앉아 귀신과 대화하며 일주일을 지내기도 했다.
‘죽어라. 죽어. 네까짓 것이 이렇게 살아서 뭐할 거야?’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한번은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면 멋지게 착지할 거야.’라는 음성이 들렸다.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순간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뭐하는 거야!” 하고 나를 잡아당겨서 다시 살았다. 귀신과 살며 여러 이적도 경험했고, 그 세계 안에 사는 동안 누구도 필요하지 않았다. 십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귀신을 빼내고 싶어서 교회에도 가고 절에도 갔다. 귀신은 계속 이야기했다. ‘나를 버리고 어떻게 살려고? 웃기지 마!’ 귀신을 버린다는 것은 마치 애인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귀신을 버리고 살 자신이 없었다. 너무 두려웠다. 잠을 잘 때도 악령이 내 옆에서 이야기했다.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어느 날, 갑자기 장을 보러 가고 싶었다. 남편에게 맛있는 것 좀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슈퍼에 갔다가 감자를 두 봉지 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할머니가 계셔서 “할머니, 감자 좀 드릴까요?” 물었다. 할머니는 감사하다며 잘 먹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나는 406호에 살아요. 우리 집에 놀러 와요.”라고 하셨다. 무척 다정하신 모습이었다. 나는 아는 사람도 친구도 없기에 가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시간이 되면 할머니 댁에 가보았다. 그런데 몇 번을 찾아가도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나에게 친구는 무슨 얼어 죽을 친구’ 하며 실망했다.
그러다가 남편과 또 싸움이 벌어졌다. 새벽 1시에 쫓겨나니 갈 곳이 없어서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두 분은 놀라지도 않고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재워주셨다. 다음날에는 우리 집에 오셔서 이곳저곳을 치워주셨다. “내일은 운동장에서 만나요.”라고 하며 두 분은 내려가셨다.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다음 날 운동장에 가자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같이 운동하자고 하셨다. 사람들은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데 보통 15분 정도 걸리는데 나는 몸이 아파서 한 바퀴를 도는 데 2시간이 걸렸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챙기고 돌봐주셨다.

네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네 안에 있는 죄 때문이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를 혼자 두지 않고 저녁마다 나를 불러서 저녁을 먹게 하셨다. 그리고 성경 말씀도 전해주셨다. 할머니는 “네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네 안에 있는 죄 때문이야.”라고 하셨다. ‘맞아. 죄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이 죄를 벗으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씀을 들었다. 할머니가 전해주시는 말씀을 듣다 보니 내 죄는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흘리신 피로 다 씻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이 없고 이 사실을 믿기만 하고 받아들이면 되었다. 그 사실이 좋았다. 감사하고 행복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하나님을 떠나면 너 죽어. 떠나면 안 돼.”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까지 귀신이 친구가 되어 귀신과 늘 대화하며 살았기에 하나님을 택하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지 막막하고 두려웠다. 고민하던 내 마음을 바꿔 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고 한 달 뒤쯤 나처럼 귀신들린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같이 초대했다. 어느 날은 그가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문을 열어 보았다. 그가 할아버지의 양치 컵 속에 변을 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귀신이 저렇게 사람을 추하고 더럽게 만드는구나. 저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구나.’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 귀신과 다시 놀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을 떠나면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 했다.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껏 나는 좋은 시절이 없었다. 냉정하게 선택해야 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길을 갈 것인지, 귀신을 믿고 불행하게 살 것인지.
어두운 날들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으로 나는 하나님을 선택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전해주신 히브리서 말씀이 내 마음에 큰 힘이 되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구원받고 나니 나는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시편 23편 말씀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할아버지(박순권)와 할머니(선병임)는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부부는 나를 항상 챙겨주시고 교회에도 데리고 가셨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갔고, 죄 사함을 확신할 수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좋았다.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 상담도 받고 안수기도도 받았다. 주일 예배를 마치면 박 목사님은 형제 자매들과 인사를 나누셨는데, 내 손도 잡아 주며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교회의 사랑을 받으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히브리서 말씀을 되새겼다.
구원받은 후 가정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무슨 일이든 꾸준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달 이상 하지 못하고 금방 시들하게 느꼈다. 그런데 교회는 한 달이 넘게 다녔다. 교회에 나간 지 6~7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남편과 밥을 먹으려고 앉아서 내가 기도하자 남편이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하나님을 믿냐?’고 비웃으며 밥상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교회만 갔다 오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시편 23편 말씀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1~4) 밤에 다녀도 무섭지 않았고 말씀 속에서 늘 기쁘고 행복했다.

아들과 남편에게도 일하셨다
아들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사람을 때리고 싸우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정말 속을 많이 썩였다. 유치장 신세도 지고 소년원에도 갈 뻔했는데 그때마다 피해자와 합의하여 상황을 모면했다. 그날도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구속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들과 함께 문제를 들고 교회에 찾아가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 상담을 받았다. 그때 아들은 교회의 인도로 해외봉사를 갔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귀국한 후에는 군대에 가서 그동안 하지 못한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도 들어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며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아들로 변했다.
내가 구원받고 1년 후에 남편도 구원받았다. 박순권 부친님은 남편에게도 기회가 되면 예배나 집회에 가자고 하셨다. 그때마다 남편이 “술 마시는데 제가 어떻게 교회에 갑니까?”라고 했고, 부친님은 술을 마셔도 괜찮으니 가자며 데리고 다니셨다. 그리고 문제아인 아들을 교회에 맡기면서 남편이 교회에 나오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기쁜소식인천교회에서 있었던 집회에 갔다가 마음이 열려 남편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우리 교회에 와서 교제하며 구원을 확신하고 무척 행복해 했다. 하나님은 남편이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남편은 그동안 술을 끊으려고 수없이 각오하고 결심했지만 끊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니 쉬웠다. 지난날 하나님을 몰라서 세상에 끌려 살았지만 남편이 구원받은 후 교회와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무척 행복하다.

세상에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구원받은 후에 나만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착각 속에 빠졌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나만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목사님들과 상담할 때에도 목사님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을 늘 판단하고 기세가 등등했다.
어느덧, 구원받았으니 세상에서 살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찾아왔다. 세상이 아주 좋아 보였다. 자매님들이 나를 인도하려고 부인회에 오라고 하고 성경도 읽으라고 말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교회와 점점 멀어졌다. 그때 다시 귀신이 말했다. ‘그것 봐. 날 버리니까 네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 그래, 구원도 받았겠다 가정도 좋아지고 아이들도 다 좋겠다, 이 좋은 세상을 어떻게 버리려고?’ 이 소리를 받아들였다. 교회가 나를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해주려는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았다.
내가 정상적으로 살 수 있고 직장도 다닐 수 있으니까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이 좋았다.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놓고 언제든지 교회를 떠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지내다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향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앞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귀는 어렸을 때 다쳐서 잘 들리지 않았는데, 오른쪽 귀에서 갑자기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내 귀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고 위층에서 소란을 피우는 줄로 알아 밤 12시에 위층에 올라가서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소음이 심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수면제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날 것 같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귀신에 잡혀 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복음을 듣게 하시고, 교회에서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안수해 주고, 아들을 데리고 찾아갔을 때 인도해 주신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박 목사님을 만났을 때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명함을 주시고, 생각나실 때 전화해 주셨던 일이 생각났다. ‘맞아. 내게 하나님이 계시지. 하나님의 종이 계시지.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많이 입혀 주셨는데 이 문제도 하나님에게 맡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박 목사님을 찾아가서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문제를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자매야, 고생 많았어.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하면서 내 두 손을 꼭 잡아주셨고, 로마서 말씀을 전해주셨다. 로마서 8장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만나는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은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고 하셨다. 말씀이 내 마음에 심겼다. 얼어붙었던 쉰 넷의 마음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무너졌다. ‘그래, 이 문제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겠구나. 나는 행복한 여자구나.’ 고생과 고통과 아픔이 다 끝났다.
얼마 뒤 귀도 들리고 눈도 보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눈과 귀만 뜨인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완전히 옮겨졌다.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지 모른다.

불행했던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로
사탄에게 속아서 불행했던 우리 부부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서로 따뜻하게 품어주고 대화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제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다. 남편은 수양회 기간에 식당 봉사도 하고 올 3월부터는 새신자반에서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남편이 교회와 함께하는 것을 보니 나도 남편을 따라서 교회와 함께하고 싶다. 요즘은 남편과 함께 매주 예배에 참석하여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꿈만 같다. 가장 불행했던 부부가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
귀신들린 나를 불쌍히 여겨 따뜻하게 돌봐주고 복음을 전해주신 박순권 부친님과 선병임 모친님, 우리 가정의 문제를 말씀으로 벗어나게 해주신 박옥수 목사님, 강도 만난 자를 지나치지 않고 상처를 감싸고 주막에 맡겨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를 교회로 인도하신 예수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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