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아내, 지혜로운 성도
지혜로운 아내, 지혜로운 성도
  • 글 | 홍오윤(기쁜소식강릉교회 목사)
  • 승인 2019.12.1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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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기쁜소식
신앙과 마인드 (3편)

 

하나님은 성경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섭리를 전해주신다. 그런데 이러한 섭리들은 신앙의 세계에서만 아니라 실제 부부 사이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
부부가 살면서 남편이 가장 힘든 경우는 아마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들었을 때일 것이다. “제대로 좀 하세요. 당신은 그것도 못 하세요?” 이런 말들은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화가 나게 한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에게 부족한 면이 보일지라도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문제를 남편에게 맡긴다. 그러면 남편은 지나칠 정도로 바보가 되어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고 판단하면서 사사건건 잔소리하면 남편은 아내에게 냉정하게 되고, 나아가 모든 면에서 인색해지고 과격해지는 것이다. 훌륭한 아내는 남편이 부족한 듯해도 남편의 장점을 보며 나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모든 문제를 맡긴다. 이런 것은 부부 사이에서만 아니라 학교나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을 마셨을 때
민수기 5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럽히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울지라.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주거리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 5:11~28)
이 말씀은 다소 섬뜩해 보이지만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남편 마음에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심이 생기면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 가고, 제사장이 만든 저주의 쓴물을 마시게 한다. 만일 아내가 실행失行하였으면 그물이 여자에게 독이 되어 배가 붓고 넓적다리가 떨어지면서 그 여자가 저주거리가 되지만, 실행하지 않은 아내는 오히려 잉태하여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의심하여 제사장에게 가는 경우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여자를 절대 해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잉태한다고 했기에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저주가 되게 하는 물 자체가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실행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물이 해를 주기도 하고 생명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은 여자의 어떠함과 반응한다는 것이 이 말씀에 담겨 있는 중요한 사실이다.
정신병자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국내에서 제일 큰 국립정신의료원에 간 적이 있다. 한 의사와 함께 환자를 면회하고 난 뒤 그분이 내게 해준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남았다.
“여기 들어온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선생님,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저는 치료를 받아야 될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95%는 나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고, 분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만날 때면 형편을 탓하거나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마음에 원한을 쌓아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대부분 형편이 바뀔 때까지, 형편이 자기 마음에 맞을 때까지 한을 풀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신병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연결된 상태를 정결한 상태라고 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실행한 것으로 영적 간음이 된다. 후자에 속한 사람의 경우에는 삶에서 만나는 문제를 이길 수 없다. 문제와 만날 때마다 그것이 저주가 되고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연결되어 말씀을 신뢰하면, 그 사람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문제로 말미암아 오히려 생명을 얻고 감사와 기쁨을 얻게 된다.

창세기 1장 1절, 2절, 3절에 담긴 의미
창세기 1장 1절과 2절과 3절은 성경 전체를 축약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에 문제가 있거나 고장난 것이 있다면 그분이 고치고 수리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2절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절에는 심각한 땅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창세기 1장 1절과 2절과 3절을 확대한 것이 성경 전체에 담겨 있다.
열왕기하 7장에서 사마리아 성은 아이를 삶아 먹을 정도로 기근이 심각했다. 마치 창세기 1장 2절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때 창세기 1장 3절에 계신 하나님이 그곳에도 계셨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왕하 7:18)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 썩어서 냄새가 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역시 창세기 1장 3절에 계신 하나님이 계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 11:23)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기 직전이었다. 그곳에도 창세기 1장 3절에 계신 하나님이 계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 8:11)

창세기 1장 3절에 계신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민수기 5장에서 저주하게 하는 물이 실행한 사람의 마음과 반응하면 고통이요 저주가 되고, 실행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과 반응하면 생명이요 복이 된다. 저주하게 하는 물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을 마신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물이 반응하는 것이다. 저주하게 하는 물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고스란히 영향을 주어 저주거리 비방거리가 되게 하고, 같은 물인데도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된 사람에게는 생명이 잉태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놀라운 사실이 담겨 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워하는 것은 창세기 1장 2절 상태에서 3절로 옮겨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마음이 높고 거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쉬지 않고 나에게 하시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마음의 교만을 꺾고 낮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일이다. 창세기 1장 3절의 하나님만 계시면 아무 문제가 없다. ‘빛이 있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둠이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민수기 5장 말씀이 담고 있는 다른 한 가지는, 정결한 아내는 남편 되신 예수님 외에 다른 생각이나 방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다가 환난이나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고스란히 고통과 부끄러움으로 연결되는 사람이 있다. 그와 달리 어떤 사람은 실행한 적이 없는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찾아와도 하나님이 일하셔서 그 일이 오히려 감사가 되고 노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능력이 있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끝내고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해주신 분’으로 믿고 구원을 확신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원죄는 해결했지만 앞으로 짓는 죄는 우리가 날마다 회개하여 씻어야 하는 실력 없는 무능한 분’으로 믿는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데에서 오는 생각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완벽하게 씻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마음이 말씀을 믿는 믿음과 바르게 연결되지 않아서 저주를 불러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바르게 연결만 되면 어떤 문제나 형편도 저주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려움과 문제가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한다. 눈에 보이는 어렵고 힘든 형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고통과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남편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크게 여길 수 있다면
부부 사이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 안에서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할 때 행복하다. 부부가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아내가 자기 시각으로 남편을 무시하거나 멸시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문제 앞에서든지 남편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크게 여길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복이 될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저주도 들어올 수 없다. 어두울수록 별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어려운 일들이 우리 안에 계신 빛 되신 예수님을 더욱 드러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실행한 여인의 마음과 같은가? 아니면, 예수님 외에 어떤 생각이나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정결한 여인의 마음과 같은가? 여러분 모두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바르게 연결되어서,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일이 기쁨과 생명을 잉태하는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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