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복음 전하러 발을 내딛는다
우리는 오늘도 복음 전하러 발을 내딛는다
  • 글 | 이한솔 (아이티, 기쁜소식레카이교회 선교사)
  • 승인 2019.12.0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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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기쁜소식
기도해주세요 | 아이티

이한솔 선교사는 아이티 수도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레카이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 때문에 수도로 가는 하나밖에 없는 도로가 막혀 3개월째 전기도 기름도 없는 악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드림’ 대안학교를 시작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가 되었다. 나라가 정상화되어 그곳에서 복음의 역사가 힘있게 일어나기를 기도 부탁드린다.  

10월 25일 #총상
흉흉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것이 우리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피범벅이 된 채 집으로 들어오는 디모데를 보며 손발에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총에 맞았다. 조금 전 울린 총성이 그의 몸을 관통하는 소리였을 줄이야.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이미 두 달째 전기가 끊어지고 약 조달이 끊어진 이 도시에서 병원이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며칠 전 간호사 자매가 울며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병원에는 환자가 넘쳐나는데 약과 전기가 없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고,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너무 괴롭다는.
그를 병원에 보내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휴대폰을 열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지금 잠시만 이 형제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목사님들과 동역자들이 함께 기도하겠다며 힘이 되어 주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 한숨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의사는 다행히 총알이 몸통이 아닌 팔에 맞았고, 파편이 전혀 남지 않은 채 그대로 통과했으며 뼈를 건들지 않아 수술할 필요가 없어 금방 회복될 거라고 했다. 게다가 이렇게 깔끔하게 총에 맞은 건 기적이라는 말과 함께. 감사하게도 디모데는 이틀 만에 퇴원했다.
오늘은 한국 시간 새벽 세시 반에 박옥수 목사님으로부터 페이스톡이 왔다. 디모데의 안부도 물으시고 교회 식구들과 인사도 하셨는데, 우리 식구들이 무척 행복해하며 교회의 사랑을 느끼는 걸 볼 수 있었다. 아이티는 지금 현지인들조차도 처음 겪는 혼란을 겪고 있다. 9월에 개학해야 할 학교가 두 달째 문을 못 열고, 수도에서 한 통에 만원하는 석유가 여기서는 4만원에 팔린다. 구걸하는 사람들과 도둑질과 강도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급증해 거리는 더욱 불안정하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기적을 보았다. 디모데와 형제 자매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선명히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복음을 전하러 발걸음을 내딛는다.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린다.

10월 28일 #자랑
물가는 몇 배나 더 치솟았고 치안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심지어 어제는 경찰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현지인들조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사태에 점점 불안해하며 외국인들은 하나 둘 이곳을 뜨고 있다. 각종 언론에서는 아이티가 붕괴 직전이라고 한다. 우리도 분명 더 어려워져야 하는데, 함께 사는 아이들이 내게 찾아왔다. “사람들을 초대해 소망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아직 이 나라에 소망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악보는 볼 줄도 모르고 합창은 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모여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재잘재잘 연습한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녀석들이 왜 이렇게 기특해 보이는 걸까? 하나도 안 맞는 화음으로 하루종일 불러대는데 나는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듣기 좋은지….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10월 29일 #지도
구글맵에서도 안 나오는 길이었다. 곳곳에 세워진 바리케이트와 위협 때문에 평소 4시간이면 가는 길이 10시간이나 걸렸지만, 8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길을 달리며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길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알지 못했을까? 내 인생에도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 위 모든 도로는 막혀 있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내 사역 속에는 유독 고난이 많을까? 혹시 내가 운전을 잘못한 건 아닐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성경은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길 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주님은 내게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이 많지만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삶을 가르쳐 주길 원하셨다. 가능하면 고난 없이 사역하길 원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니 어려울 때마다 나는 더욱 선명히 주님을 만났다. 아내가 병원비도 없이 유산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 양식이 떨어졌을 때, 풍토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을 때, 권총강도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내 지도에 없는 많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값진 순간들이었고 돈 주고도 못 살 평안과 행복을 덤으로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발을 내딛는다. 그분에게는 내게 없는 길이 있으니까.

10월 31일 #하나
밤마다 총소리가 울린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뜬눈으로 동이 트길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병원비와 양식을 살 돈을 빌려 달라고. 가슴 아픈 사연과 간절함에 마음이 저려온다. 다 교회로 오라고 했다. 모두에게 돈을 줄 만큼 여유가 없지만 교회에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기도하자고 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어려울 때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같이 먹고 자며 성경 이야기를 하고 기도한다. 낮에는 그들의 집에 찾아가 복음도 전하고 아이들 공부방도 운영한다.
오랜만에 열린 칠일장은 시위대의 습격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덕분에 고기나 야채를 사려면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평상시 반찬 투정하는 녀석들도 요즘은 투정하는 걸 보기 힘들다. 마냥 철없던 아이들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희한한 일이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몸이 하나이고 머리가 둘인 아이가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때 랍비가 말하길,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다른 쪽 머리도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다. 매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고 있다. 아이티 사람들조차도. 나는 떠날 능력이 없어 남아있는 사람들의 불안과 절망, 슬픔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 하나 여기 있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오히려 총이나 안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선교를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생각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며칠 전 소식을 들은 목사님이 한국 시간 새벽 세시 반에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주셨다. “한솔아, 우리가 다 기도하고 있다. 어렵겠지만 같이 기도하며 견뎌보자.” 그리고 최근 며칠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고 가슴 아파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격려를 받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꺼이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 주는 그들은 바로 곁에 있었다.
양철 지붕 아래 땀이 비오듯이 흐르지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우리는 그렇게 복음을 전한다. 부족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는 아이티를 위해 아낌없는 격려와 기도로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1월 6일 #역주행
모두가 떠났다. 아쉽게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안정은 아직인 것 같다. 여전히 교복을 입는 게 소원인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으니.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은 차도 끊긴 도로를 한참이나 걸어 교회에 매일 찾아온다. 대문에 들어설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무사히 당도했다는 안도의 미소를 짓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녀석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 시국에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회의하면서 우리는 너무 행복했고 지금 글을 쓰는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래, 감사를 드리고 사랑을 드리며 꿈을 그리는 아이티 ‘드림’ 대안학교를 개교하려고 한다. 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베풀고 나누는 기쁨을 알려줄 것이다. 잘못된 토속신앙으로 고통하는 많은 이들에게 참된 신앙을 가르치고 올바른 교육을 할 것이다. 우리는 온 몸으로 이 끝없는 절망에 맞서려고 한다.
2년 전 10명도 채 안 되는 성도들과 이곳에서 교회를 시작한 순간이 기억난다. 한 달에 1달러도 헌금하는 사람이 없어 막막했지만 한 번도 누구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한 끼도 굶지 않았다. 성도들을 불리기 원하지 않았다. 그저 원 없이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어디든 다녔다. 그런데 어느덧 성도가 60명으로 불어났다. 마음으로 함께해 주는 식구들이 생겼고, 그들은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다.
이제는 가족이 된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아직 아이들 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마음은 새로운 꿈으로 넘쳐난다. 아이티를 뒤집을 ‘드림’ 대안학교 개교라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하루다.

11월 8일 #새로운 도전
리코더를 줬더니 밤새도록 리코더를 부르고, 싸구려 전자 피아노를 샀더니 눈뜨자마자 피아노부터 치고, ‘아이엠그라운드’를 가르쳤더니 하루 종일 그것만 할 정도로 순수한 아이들. 뭐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녀석들이 현재 반정부 시위로 갈 수 있는 학교가 한 군데도 없다.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하니 희망이 보일 리 없다. 가슴 아프게도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건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들이다.
우리는 정식 학교가 아니다. 관공소가 일을 안 하니 당장 인가를 받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아직 정식 교사도 없다. 정부가 월급도 주지 않는데 누가 이 위험한 시국에 저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서겠는가? 교실은? 책과 책상은? 비용은? 못 한다고 할 조건은 많지만 하나는 확실히 안다. 이 아이들을 더 이상 이렇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을.
뜻있는 현지 형제들과 한국에서 해외봉사를 온 다혜를 1기 선생님으로 하여 ‘드림’ 대안학교를 연다.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드리고 나누고 베풀어 훗날 이 아이들이 다시 드리고 나누는 꿈을 꾸며, 우리는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배울 마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글을 못 읽어도 돈이 없어도 괜찮다. 우리는 문 닫지 않을 거니까.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너희들이 얼마나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줄게.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건지 느끼게 해줄게. 거짓말이 아니야. 여기 사진에서 다 보이잖아. 너희가 얼마나 행복하게 웃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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